이세준(b. 1984)은 강렬하고 과감한 색감을 사용해 회화의 구상과 비구상적인 형상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비일상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요소들, 이미지와 물질의 병치 등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개성적인 회화를 구현한다.


이세준, 〈떠내려오는 것들〉, 2015, 캔버스에 유채, 145.5x336.3cm (3점) © 이세준

다양한 사물과 풍경으로 채워진 이세준의 화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모습과 구조를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에서 출발한다. 그가 정의하는 세계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여러 주제와 소재를 구상과 비구상의 형식을 모두 빌려 하나의 화면 안에 그려낸다. 여러 사물과 이야기가 중첩된 화면은 동시적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그의 불가능한 열망을 역설한다.


이세준, 〈우리는 무엇을 불태웠는가〉, 2015, 캔버스에 유채, 324.4x521.2cm (8점), 《무엇을 불태울 것인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세준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져오며,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리기의 형식을 세계의 구조에 대입하는 방법을 표현해 왔다. 그리고 2014년부터 작가는 관객을 대상으로 개개인의 세계관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이미지를 수집해 왔다.
 
그렇게 수집한 다양한 세계관의 이미지들은 여러 개의 캔버스 위로 옮겨져 연결되는 방식으로 제시되어 왔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일종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고 보며, 서로 다른 그림을 이어 붙여 크기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개개인이 하나의 세상을 이루는 모습을 은유한다.


《세계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를 바탕으로 진행된 2019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의 개인전 《세계관》은 미시적인 풍경으로부터 단서를 찾아가며 각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즉 각자의 세계관을 수집해 서로 충돌하거나 유사한 관념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구성해 보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에서 출발한다.
 
전시명인 ‘세계관 (世界觀)’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인지하는 관점 혹은 틀을 뜻한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각 개인의 삶을 통해 형성되는 주관적인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하나의 세계에서 개인의 세계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작가 스스로의 끊임없는 질문은 단순히 단편적인 도상을 인식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만의 렌즈를 통해 수집한 이 세상의 구조와 모습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게 이르렀다.


《세계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세준은 이 전시를 통해 종교, 신화, 장르 소설이나 영화 등의 매체에서, 혹은 개인이 만든 설정 등 다양한 우주관, 세계관을 수집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똑같은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을지라도 각자의 세계를 다르게 인식하고 정의하며, 그 인식에 따라 행동양식과 태도, 삶의 목적 또한 변해 지향하는 것들이 달라지는 개개인의 모습에 흥미를 가졌다. 이에 그는 그러한 장면들을 수집하고 축적하여 다시 하나의 세계관으로 캔버스 위에 펼쳐 놓았다.


《세계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그렇게 만들어진 124개의 그림들은 〈77억 가지 신의 이름〉이라는 타이틀로 하나의 회화 설치 면을 이루었다. 각각의 화면에는 일상의 모습을 구현한 듯 보이는 구상적 표현과 붓자국과 강렬한 색채만이 남은 추상적 표현들이 함께 하거나, 점차 일그러지거나 혹은 알 수 없는 흔적만이 남겨지기도 하였다.
 
또 어떤 장면에는 스티커가 그려져 있거나 실재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는 특정 장소로서 묘사된 평면 속 환영적 공간을 분리시키는 일종의 ‘겹’으로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림에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무언가에 붙은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다른 작업들의 느슨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세계를 향한 작가의 질문은 또 다른 방법론으로도 구현되어 나타났다. 전시작 중 하나인 〈악어와 함께〉는 캔버스에 그린 후 자르기를 반복하여 겹겹이 붙여서 하나의 장면을 만든 작품이다. 각 레이어의 이미지를 따라 잘려진 모양은 레이어 간의 간격을 두고 작품의 두께를 만들어내면서 밀도와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캔버스를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넓게 확장해 나가는 영역을 보여주면서 화면 속의 복잡한 이미지들의 혼재를 보여주었다면, 이러한 작업은 이미지와 레이어가 서로 가려지는 동시에 서로가 드러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평면으로서 가지는 한계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방법론을 취한다.


《세계관》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처럼 서로 상충되고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세계관들은, 그의 회화와 설치 작업의 레퍼런스가 되어 보는 이들에게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한 소설같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세준, 〈안티 플롯_스페이스 아케이드〉, 2019-2023, 린넨에 유채와 아크릴, 형광안료, 246x1821.1cm (13점), 《마침내 너와 내가 만나면》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3)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0년 이후로 이세준의 다층적인 세계관을 담은 그림들은 공간의 일부를 차지해 관객의 동선을 가로지르며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중간에 새로운 모양의 캔버스를 끼어 넣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이동하는 듯한 풍경을 만들거나, 그림의 위치를 계속해서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러한 형식적인 실험들은 캔버스의 틀 바깥에서 복잡하게 작동하는 여러 구조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회화가 가진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도로 읽힌다.


이세준, 〈안티 플롯_스페이스 아케이드〉, 2019-2023, 린넨에 유채와 아크릴, 형광안료, 246x1821.1cm (13점), 《마침내 너와 내가 만나면》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3)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예를 들어, 2023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개인전 《마침내 너와 내가 만나면》에서 선보인 〈안티 플롯_스페이스 아케이드〉는 13점의 회화가 하나의 장면처럼 연출되는데, 이는 2018-2020년도에 그렸던 서로 다른 장면들 사이에 마름모 형태의 ‘간격’ 시리즈가 개입되어 마치 이어진 풍경화처럼 보이게 한다.
 
공간 전체를 거대한 벽화 구조물처럼 보이게 하는 이 작품은 하나의 작업이지만 한 번에 볼 수 없게 만든다. 즉 이세준이 그리는 화면 속에서 다양한 형태들과 사물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듯이, 이 작업 또한 전체를 한 번에 인식하기 어려운 포맷을 만들어낸다.
 
이는 작가가 이 세상 모든 것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이세준의 경험이 다른 모든 존재들의 경험하는 모든 것을 감각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가 바라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리기’는 도달하기에 필연적으로 불가능한 열망임을 은유한다.


《메타픽션》 전시 전경(공간 황금향, 2023) © 공간 황금향

또한 작가는 과거에 그렸던 두 점의 그림을 양쪽에 두고, 이와 연결되는 가운데 이미지를 새롭게 그리는 일련의 방식을 ‘브릿지’ 작업으로 일컫는다.
 
기존의 그림 두 점 사이에 캔버스를 두고 양쪽에서 오는 이미지를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서 이미지가 섞이게 하고, 다른 방향에 있는 이미지를 추출해 와서 가운데 섞여 있는 이미지를 그리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브릿지’ 시리즈는 ‘시간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시각화한다.


이세준, 〈Painted Painting〉(2023), 〈Beyondscape〉(2023),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 전경(송은, 2023) © 송은

그리고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3)에서는 전시 기간 중 그림의 위치를 변경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각 4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대형 회화 작업 〈Beyondscape〉(2023)와 〈Painted Painting〉(2023)는 전시 중 위아래, 좌우로 위치가 변경되며 설치되었다. 이는 전시를 관람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제안하여 매번 색다른 모습으로 감각하고 기록되도록 한다.
 
그 중, 〈Beyondscape〉는 ‘풍경화’라는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풍경화가 여러 장면의 그림 같이 생생한 요소들을 간직한 채 재조합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한편 〈Painted Painting〉은 장르적 구분으로서의 풍경화에서 확장되어 회화라는 매체 자체를 작품의 대상으로 삼는다.
 
표면적으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를 표현하면서, 회화 매체가 가진 상징, 환영, 물질성, 서사, 장식성 등의 특징을 통해 회화의 다양한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질문한다.


《Picturescape》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이러한 작업의 심화이자 전시로의 확장으로서 열린 개인전 《Picturescape》(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5)은 풍경화와 풍경화 사이를 넘나드는 틈에 보이는 풍경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세준은 그림을 보고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 순간 완벽하게 변환되지 않은 전환 작용은 앞서 포착한 풍경을 약간씩 머금은 채 다음 장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은 각각의 신체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가질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Picturescape》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작가는 이러한 전환의 미세한 지체가 가진 시각성이 고유한 리듬을 가질 것이라고 가정하며, 이미지 간의 공명에서 발생하는 리듬에 집중하였다.
 
따라서 전시를 이루는 풍경화들은 단순히 자연 풍경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화’이기보다는, 하나의 화면 속에서 중첩되거나 병렬된 이질적 이미지들 간의 시각적 공명이 만들어내는 감흥을 통해, 회화를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종의 가설로 작동한다.
 
전시 공간에 설치된 각 캔버스는 고유한 개체로서 자율적으로 형성되고 증식하며, 그 안에서 이미지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세준, 〈가능세계의 그림_랍스터 편지〉, 2024, 린넨에 유채, 아크릴, 형광안료, 112.1x145.5cm © 이세준

이렇듯 이세준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회화라는 장르가 지닌 형식적·개념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그는 비선형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회화를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평면 이미지로서 회화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회화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질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세계처럼, 그의 회화 역시 관람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각자의 경험과 세계관을 작품에 투영하며 저마다의 서사와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나는 다양한 이야기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서로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보조적으로 작동하는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여러 점의 그림으로 구성된 대형 회화 작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나는 내 작업에 우주의 탄생과 소멸, 삶과 죽음처럼 거대한 서사부터, 계절의 변화와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같은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부분까지도 담아내고 싶다." (이세준, 작가 노트)


이세준 작가 © 키아프 서울

이세준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Picturescape》(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5), 《가능세계의 그림들》(평택 북부문화예술회관, 평택, 2024), 《마침내 너와 내가 만나면》(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3), 《메타픽션》(공간 황금향,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풍경을 이루는 순간들》(OCI미술관, 서울, 2026), 《그날의 이야기》(벗이미술관, 용인, 2025), 《Euphoria》(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2025),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고양시립 아람미술관, 고양,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 《이것은 나(너)의 그림이(아니)다》(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2) 등의 단체천에 참여했다.
 
이세준은 금천예술공장(2025),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2022-2024),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0)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었으며,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최연소로 선정된 이후, 제1회 KSD미술상 대상(2019) 등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