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윤, 〈모닥불〉, 2022, 리넨에 유채, 27.3 x 22 cm © 구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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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Henry Bergson)은 그의 저작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에서 생명의 경이로운 힘이 자연의 창조와 생존, 그 지속을 가능케하는 힘이라고 주장했고, 이 힘을 생의 약동(elan vital)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힘은 사실 베르그송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서양사상에서 오래 전부터 이 것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의미를 재생산해내고 있었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Conatus),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라는 개념의 베르그송적 재해석 개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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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꿈틀거리는 이미지는 결국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élan vital(생의 약동)의 흐름으로 보인다. 동시에 우리는 이런 물음을 갖게된다. 무생물로부터 생명의 힘이나 에너지를 느낀다면 단지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지기에 무시해야하는가. 이 물음은 현대 과학의 발전과 예술의 병행적 구조를 되묻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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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물음을 상기하면서 기본적인 물음을 꺼낼 수 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는 오래전의 주제이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적으로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는 대사 작용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생물은 생명의 기초대사작용을 하지만, 무생물은 이 대사작용을 스스로 할 수 없기에 외부의 힘이나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설명은 자연의 과학적 법칙, 즉 물리화학적 법칙에 의거한 것이지만, 예술과 철학은 종종 이 설명을 뛰어넘는 메타피직한(말 그대로 Physics의 다음으로 넘어가는) 철학적 사유와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가의 통찰이 하나의 예술적 표현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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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무기물의 유기물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불에는 생명이 없지만, 마치 생명을 간직하는 듯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불은 산소와 가연성 물질이 만나면서 연소되는 화학적 과정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생명과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불은 하나의 자연과 생명의 기본 원소로서 주목받았다. 동양에서 생명의 기본원소로 목화토금수가 있고, 이 때 불은 오행의 일원이며, 그리스 자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생명의 근본 원소로서 불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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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적 미학론에 의하면, 예술은 자연과 사물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 즉 반성적 해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예술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 작가가 모닥불을 어떻게 그리는가가 아니라 사물(모닥불)을 어떻게 반성적으로 해석하는가를 주목하게 된다. 이 반성적 해석이란, 결국 작가 자신이 외부 대상과 자신과의 상호주관적 소통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반성적 해석으로 통한 해석 작업이 하나의 유형화된 이미지로 표출될 때, 그것은 예술가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 작가는 무생물과 무기물마저도 이러한 생의 약동과 생명성의 흐름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것은 비과학적인 정념이나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사물과 환경의 다이나믹한 유기성의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개별적인 구체성의 한계 밖에 있는 보편적 우주의 일관된 구조에 대한 들여다 봄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닥불은 우주의 보편적 관점에서 보면, 그저 산소와 가연소재의 만남으로 인한 물리작용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 법칙의 활동 안에서 살아 숨쉬는 무엇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 세계의 운행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가진 철학자는 스피노자인데, 그는 저작 『에티카』에서 이러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자연의 법칙을 곧 신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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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작품 속의 이러한 메타피직한 성향은 결국 생물과 무생물, 유기물과 무기물, 현상과 관념, 추상과 구상의 획일적 경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보는 현상이면서 현상 너머의 초월적 원리, 그것에 대한 작가의 꾸준한 자기 반성적 물음- 과연 현상 너머의 보편적 원리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칸트를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작가가 칸트의 반성적 미학이 주는 보편적인 미학적 틀을 감지하고 있음을, 또한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예술의 해석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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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의 AI의 출현은 생명을 유지하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대사작용이나 외부로부터 가해진 어떤 힘의 작용 뿐만 아니라) 자기복제적 학습과 확산에 의한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알고리즘을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기계는 생물인가 무생물인가, 기계적 프로그램으로 지능을 구축하고 그것으로 유기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과연 유기물인가 무기물인가. 이런 대답 앞에서 다시금 생명의 약동이란 철학적 개념은 새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판단은 언제나 늘 미래에 관한 선견(즉,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예술가의 직관적 통찰과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 이루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들의 미학적 도전을 보며 다시금 이 신비로운 불의 에너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