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나의 작업은 어린
시절의 기억, 특정한 사건 이후 오래 남아 있는 감정,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진 인물과 풍경을 회화로 다시 불러오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상황
속 목소리, 체온, 냄새,
빛, 색감처럼 선명하게 설명되기 어려운 감각들을 화면 위에 남긴다.
유년 시절 바닷가에서 안경을 벗고 바라본 흐릿한 풍경, 동해와 부산에서
보낸 시간, 해안가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러시아 선원들의 기억은 그의 회화 안에서 반복적으로 되돌아오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기억들은 구체적인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남아 있는 감정의 덩어리로 나타난다.
초기 작업에서 함미나는
흐릿한 얼굴과 불분명한 표정, 뒤틀린 몸의 감각을 통해 기억의 불완전성을 다루었다. ‘Node of Sleep’(2018) 연작은 수면장애와 피로,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트는 행위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의지와 무관하게 꺾이고 눌리는 신체의 상태를 인물 형상으로 옮긴다.
이 시기의 화면에서 인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지 않으며, 감정
역시 명확하게 읽히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의 눈과 표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흐릿한 색, 구불거리는 붓질, 덩어리진
형상을 통해 관람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개인전 《Where Would I Be》(갤러리 이알디, 부산, 2020)와 《Backwater》(갤러리 이알디, 서울, 2022)를
거치며 작가의 인물들은 보다 분명하게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향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성별, 국적, 출신이 모호한 아이들은 작가의 기억 속에 고립되어 있던 형상들이자, 아직
정착하지 않은 정체성과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겹쳐진 존재들이다.
특히 Trigger(2021)에서 총은 위협이나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 용기, 희망의 장치로 제시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연약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불확실한 환경 안에서 방어하고 버티며 스스로의 방향을 찾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2023년
개인전 《ID Picture》(갤러리 이알디, 부산) 이후 함미나의 작업은 인물의 정체성과 기록의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다룬다. ‘ID Picture’ 연작은 증명사진, 졸업앨범, 실종 포스터, 무인 사진기 이미지처럼 한 사람을 특정한 순간에 붙잡아두는
형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2024년 개인전 《은신처》(갤러리 이알디, 서울)에서는
산딸기를 따던 기억, 외할머니의 토마토밭, 토마토와 레몬
숲을 지키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환상과 현실, 욕심과 무욕이 섞인 유년의 장면을 펼친다.
최근 개인전 《바다위 Badawi》(피비갤러리,
2026)에 이르면 이러한 관심은 이동, 표류, 세대의
계승, 상처와 회복의 문제로 확장된다. ‘인간 번데기’(2025) 연작, ‘바다위’ 연작, ‘날개짓’ 연작은 한 존재가 고정된 이미지로 기록되는 순간과, 그럼에도 계속 이동하고 변화하는 삶의 감각을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