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Fluide (Incheon] Fluide)- 'An elephant lived in Incheon'》 (Incheon Art Platform, 2022). Photo: Dongkyung Kwak. © Incheon Art Platform

SEOM: (섬:)의 지역연구 오픈랩 프로젝트 《[Fluide (Incheon] Fluide)-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 연계 워크숍과 그 과정에서 수집된 이미지와 소리를 활용한 관객 참여형 설치 작품 및 영상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서하늬와 엄예슬 두 작가가 SEOM:이라는 팀명으로 함께 선보이는 첫 프로젝트인 이 전시는 회화 및 설치 작업을 통해 공간의 맥락에 대해 연구하는 서하늬와 일상의 소리를 활용한 사운드 설치 작업을 주로 하는 엄예슬이 프로젝트의 얼개를 짜고 인천지역의 아동과 작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거쳐 만들어진 전시로 인천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동시대 예술 콘텐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관객은 곧바로 거대한 회보라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전시의 중심축을 이루는 작품 〈소리벽〉(2022)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상단에서 헤드셋을 길게 늘어뜨려 관객들이 벽을 따라가며 인천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설치한 작품이다. 짤막하게 반복되는 소리들은 어떤 이에게는 친숙하고 어떤 이에게는 수수께끼 같아서 같은 소리를 듣고도 사람마다 머릿속에 다양한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전시실 중앙에는 희고 커다란 조형물들(〈Figure I-IIII〉, 2022)이 가구처럼 놓여있고 그 위에 흰 분필을 놓아 관객들이 소리를 듣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벽에 직접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은 별다른 안내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소리를 듣고 빈 벽을 찾아 그림을 그린다. 어떤 이는 먼저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며 소리를 유추해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음원을 확인하며 나와 타인의 감각을 비교하기도 한다.

정답은 끝내 주어지지 않고 소리와 이미지 사이에서 무수한 이야기의 가능성만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전체를 둘러보면 전시장은 영락없이 아이들의 놀이방을 닮았다. 폭신한 속지를 대고 천을 씌운 덩어리 조각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천진난만하게 실력을 뽐낸 벽화도 모두 ‘놀이’의 형식을 빌려 자유로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공동의 창작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벽은 그림으로 가득 차고 이야기는 점점 촘촘하고 흥미롭게 진화한다.
 
〈소리벽〉이 인천의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만들었던 1차 워크숍을 공동 작품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라면, 전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영상 작품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 (2022)는 동료 작가들과 함께 2차로 진행한 〈런타임 워크숍〉을 정제하여 작품으로 발전시킨 형태이다.

본래 이 워크숍은 아이들이 그린 다양한 소리 그림을 보며 추출해 낼 수 있는 서사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였으나 단선적 이야기를 도출해 보려던 초기의 시도는 아이들의 상상력 앞에 일찌감치 무산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림의 시각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공통 감각과 일상성을 벗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미지를 토대로 한 열린 서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선에서 워크숍은 일단락된다.

SEOM:이 시도하는 6분 40초짜리 단채널 영상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는 아이들의 그림 중 일부를 발췌하여 소리와 함께 화면 속에 재구성하고 움직임을 부여하여 어디에서도 보고 들은 적 없는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를 펼친다.

화면 속에는 비가 쏟아지는 날 파도 위를 찰박찰박 걷는 코끼리가 클로즈업되었다가 서서히 멀어지고 우주에 떠 있는 구름에서 비가 내리면 하나로 보이던 바다가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다 모인다. 코끼리는 활주로를 달리는가 하면 우주 속에서 유영하거나 배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조각배들, 은하수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 어둠 속으로 팝콘처럼 튕겨 나가는 색색의 별들… 기승전결도 없이 신비롭게 이어지는 영상 속의 소리와 이미지는 감상자에게 열린 해석을 제안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Installation view of 《[Fluide (Incheon] Fluide)- 'An elephant lived in Incheon'》 (Incheon Art Platform, 2022). Photo: Dongkyung Kwak. © Incheon Art Platform

SEOM:은 결성 시점부터 공감각적 예술경험을 추구하며 공간성과 시간성을 담은 작업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였고 인천이라는 구체적인 위치 값을 대입한 후에도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가 놓치기 쉬운 보편성과 확장성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인천이라는 지역을 떠올렸을 때 쉽게 연상되는 관습적 이미지와 상징을 차용하는 대신 지역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살아남은 이야기의 속성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뱃고동 소리, 엿 자르는 소리, 디스코 팡팡 소리, 게임기 멜로디, 지하철 도착 음, 선박들이 부대끼는 소리 등은 기존의 상황적 맥락을 벗어나 아이들의 스케치북 속에서, 전시실의 소리벽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며 인천에 사는 코끼리의 존재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

‘장님 코끼리 말하듯 한다.’ 는 말이 있다.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부분적 경험만으로 전체를 해석하는 경우를 빗대는 속담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전설과 설화들은 우리 주변의 조금 특별한 현상에 대한 부분적이고 사사로운 상상과 해석에서 시작된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전 동화나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성덕대왕 신종 설화를 비롯해 지역마다 내려오는 수많은 지명 전설 들은 색이나 소리 등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현상적 실체 위에 덧입혀진 사람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렇게 형성된 비일상적 서사들은 시간이 지나며 윤색되고 생명력을 얻어 우리에게 오래 깊은 인상을 남긴다.

구술 문학을 비롯해 창작 단계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여러 사람의 개입을 거쳐 형성되는 참여형 작품에서는 원작가와 참여자, 참여자와 참여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품의 질서와 균형을 찾아내는 관계의 미학이 만들어진다. 소리벽의 관객들이 암묵적으로 반복되는 이미지를 피해 그림을 그린다거나 전체 화면의 구성을 고려해 자기 그림의 크기를 조절하고 포인트 지점을 만드는 등의 창작 과정은 작가들이 기획 단계부터 드러내고자 했던 서사의 생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지점에서 SEOM:의 《[Fluide (Incheon] Fluide)-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는 지역 연구와 예술을 결합시킨 프로젝트들 중 보편성과 고유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놓치지 않은 드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의 서사가 형성되는 고전적인 진행방식을 따라가며 알기 쉬운 언어로 참여자와 관람객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더불어 공감각적 예술 경험을 이끌어 낼 줄 아는 작가들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여 관객의 동선을 유도하고 음향을 통제해 전시장 환경을 놀이터로 연출하는 동시에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와 같은 완성도 있는 이야기 샘플을 전시장 안에 배치하여 이야기의 확장성을 제시하는 구성을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 작가가 프로젝트 기간 동안 나눈 많은 대화와 다각적 고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인천에 코끼리가 산다” 로 시작하는 인천의 이야기와 함께 작가 SEOM:의 이야기도 세상을 향해 이제 막 시작을 알렸다. 글쓰기에서 가장 어렵다는 흥미로운 첫 문장을 완성했으니 이들이 어떤 사람들과 사건들을 겪으며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