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 필자가 작가 이완을 관심 있게 보게 된 계기는 2010년 방영되었던 《SBS 특집 다큐-미디어 아트, 상상의 세계를 날다》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완을 신세대 작가로 소개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비디오 작품 〈다음 생에 꽃이 되어 그대 곁에 I Will Become a Flower and Be with You in the Next Life〉(2009)에 나타나는 것처럼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들이었다.

2010년, 필자는 작가를 직접 만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였다. 그때, 이완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가 시스템과 불가항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의 전시 《이완: 아아, 순정》에 관한 기사를 보고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 인연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완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주제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형성된 것이라 믿어지는 사회 질서, 규범, 전통과 금기처럼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 온 문명 전반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과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진부해 보여도 이 표현이 제일 적합한 것 같다. 이것이 취향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미술 관계자들이 이완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된 주된 이유라 생각된다.


LW : 나의 작업에 많은 분들, 특히 이론을 하시는 분들이 선호하는 이야기나 코드가 발견되어 그런 것 같다. 미술사와 연결되는 지점, 혹은 그것과는 구별되는 지점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우선 형식적인 면을 보자면 내가 오브제를 발견하고, 거기에 메시지를 투영하고, 해체 혹은 조합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구조적이고 입체적이라 많이들 이야기해 주신다. 시스템이라는 주제에 주목할 경우,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분들이 많다. 꺼내 먹을 것이 많은 작가란 말을 듣는다.

LEE : 형식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모더니즘적 담론을 연결시켜 해석할 여지를 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들과 일치하는 것도 강점이다.

시스템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정치적인 이슈들을 다루게 되는데, 대부분의 작업들이 사회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어서 생각들이 여러 갈래로 전개될 수 있도록 돕는다. 본인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고 하지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목소리 내기 및 사회 참여로도 보인다.


LW : 어려서부터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유추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굉장히 어릴 때부터 ‘나는 왜 태어났지? 이 세상은 왜 있지? 나는 왜 나지?’와 같은 고민을 했다. 인간의 숙명에 관심이 많았던 거다. 어릴 때 자를 대고 선을 그리면서 자를 달력에 대응시켰다. ‘1cm는 1년, 30cm는 30년, 1mm는 한 달’, 이런 식으로 기준을 세워 놓고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인간은 왜 이만큼밖에 못 살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애썼다.

때로는 나의 엄마를 바라보면서 ‘나는 왜 이 분을 엄마라 부르지? 다른 사람을 엄마라 부를 수는 없나? 엄마라 부르는 이유는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인가? 모든 사람은 낳아지는데 다른 누군가를 낳아준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되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첫 작업이라 부를 만한 것은 12살~13살 때쯤 카메라로 집 밖의 풍경을 찍은 것이다. 당시 3층에 살았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파트가 별로 없어 3층에 살면 많은 풍경들이 내려다 보였다. 멀리 있는 산도 잘 보였다. 그런데 아파트가 생기면서 산이 점점 가려 안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약 4~5개월에 걸쳐 같은 장소에서 점점 산이 안 보이게 변해가는 풍경을 사진 찍었다. 그걸 보면서 ‘왜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궁금해했다.

그러던 중 여태까지 내가 궁금해했던 모든 것들의 이유를 처음으로 명확히 설명해주는 친구를 만났다. 지금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친구는 기독교적인 관점을 나에게 전하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해줬다. 신의 창조.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완성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논리적 사고로는 이해 안 가는 부분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안 나갔다. 대학교 때에는 불교에 심취했다. 불교 재단의 학교를 다닌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절대적 신이 존재하지 않는 불교는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미술 서적 못지않게 과학이나 철학 서적 읽는 것을 즐긴다.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추론의 과정을 즐긴다. 철학은 논리의 구조를 생성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고, 과학은 물질을 토대로 유추할 때 사용된다. 책을 읽으며 내 나름대로 이론을 세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결합되고 만들어지는 논리를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특히 사회 현상이나 역사적인 관점을 작업에 끌어들여야 할 때에는 사회과 학적으로 예리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작업 안에서 감성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인 편향 혹은 근거를 알 수 없이 등장하는 미적인 부분들이 생기면 빼려 노력한다.

작업을 계획하기 위한 드로잉을 하지는 않는다. 글로 정리해본 적도 없다. 모든 시뮬레이션은 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시각적인 부분에 관심을 덜 갖는다기보다 작업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완성하는데 집중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다음 작업에 서양 미술의 한 부분을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인상주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미니멀리즘적인 조각을 선보일 수도 있다. 영상이나 사진 작업을 할 수도 있으며 아주 대중적인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만간 소설을 출판할 거고 영화도 발표할 거다.

여태까지 내가 사용했던 매체와 형식들은 그냥 내가 선택한 하나의 도구(tool)일 뿐이다. 나는 특정한 형식에 함몰되고 싶지 않다. 나는 이것이 내 작업의 특징이자 강점이라 생각한다.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작업을 해나가는 방식이 매우 특이해 보일 수 있다. 전통적인 서양 미술의 규칙을 지닌 사람들에게 나는 마치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작가처럼 보일 것이다. 형식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내 전시를 볼 때마다 또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념에 집중해서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은 계속 실험하고 있으니 좋다고 말해준다.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아주 반항적인 작가로 본다. 나를 민중미술 계열 작가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를 규정하려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한 작가가 여러 가지 형식들을 동시에 보여주니 모두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익숙한 것만을 발견해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의 느낌과 생각을 관찰하는 게 굉장히 즐겁다.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이 같은 작품을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는 점이 또 다른 작업을 위한 흥미로 연결될 때가 있다.


이완, 〈Riding Art - See-Saw〉, 2005, 혼합 매체, 300 x 120 x 80 cm © 이완

LEE :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이 세상은 하나의 놀이터와 같아서 대학을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놀이기구 제작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 세상이 놀이동산 같고, 그 시스템에 우리가 순응하고,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끌려간다면 그 시스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가? 시스템을 처음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또한 시스템 스스로든, 그것에 끌려가는 존재들과 반응하면서든 시스템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완결된 채로 끝없이 작동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LW : 시스템과 연결된 인과 관계들의 근원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모든 것은 수요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생존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데에 있어 특정한 집단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고안된 넓은 의미의 정치적 방식의 결정들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예를 들어, 원시 인류의 정치 구조가 지금의 구조로 진화한 과정을 상상해 본다거나 봉건군주제 시절의 한국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어떨까?

조선 시대를 지금의 기준으로 들여다보면 경제 성장률 0%, 인구 증가율 0%일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왕과 신분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것이라 판단되었을 것이다. 이후 봉건제도가 무너졌고 모두가 법적으로 평등한 시대가 도래했다.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생겼고 세상이 출렁였다.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수요가 요구하는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엔진이 발명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자들은 더 많은 원자재와 소비자가 필요해졌다. 세계 인구 증가율 그래프를 보면 석유 사용량과 거의 같은 증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구의 제국주의는 아시아의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적 경험이 심어놓은 강자에 대한 동경심 때문에 아직도 아시아는 서양처럼 되길 갈망한다. 유럽에서 한국의 백반집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시아엔 파스타와 피자집이 정말 많다.

가장 성공적으로 서구화된 한국과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1900년대는 전송 속도 발달의 세기라 부를 수 있다. 모든 것이 속도 경쟁이었다. 화살에서 미사일로, 전보에서 위성 통신으로. 이동 속도의 경쟁은 자연스레 대형 유통 시장을 낳았고 세상은 더 많은 노동자, 소비자, 시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양에 의해 근대화를 이룬 아시아 국가들이 전 세계의 공장이 된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인 오늘날엔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인력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샌드위치를 먹는 아주 흔한 일상적 행위도 이런 시스템 안에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자유롭게 동의하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방식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한다. 이렇게 전략적인 구조 안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건 마치 놀이동산에 간 사람들과 같다. 놀이동산에 가면 설렌다. 그러나 동시에 무섭다. 내가 사회를 마주하고 느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놀이기구에 타서 그것이 작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세상은 이미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 세상이 작동시키는 기구에 올라탄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인과 관계에 의해서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이 세상(시스템)에 갑자기 출현했다. 과연 내가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동안 얼마나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을까?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절대 본질을 앞설 수 없다. 나는 세상에 제일 처음 출현했던 생명이 번식하고 환경에 의해 다양하게 진화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결과로 태어난 하나의 생명체다. 나의 머리카락 색, 피부색을 비롯한 내 유전적 특징 등,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선택할 수 있을까? 만약 부모님의 만남과 선택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다시 놀이동산으로 돌아와서, 놀이동산의 입장에서는 내가 가든, 다른 그 누가 가든 중요하지 않다. 몇 가지 신체적 조건이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몇 가지 조건에 맞는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고 타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회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나는 돈을 내고 놀이기구-기계 구조-에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나는 즐거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환호성도 지른다. 그런데 같은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지점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같은 지점에서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나는 이것이 신기했다. 그것은 그저 기계 구조가 만들어준 것인데 어째서 서로 다른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구조 안에 들어가 거기에 모두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만약 2만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한 가족일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 나에게 온 모든 것들, 예를 들어 기술이나 관습,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에서 흘러내려 온 것이다.


LEE : 대화를 하면서 작가 이완의 표현법과 나의 표현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예를 든 조선 시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답변을 듣다 보니 이완이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은 최소 두 개의 시스템, 이미 만들어져 있어 누가 들어와도 상관없는 놀이기구와 같은 시스템과 필 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것 같다.

전자는 이 사회를 작동하게 하고 우리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시스템이며, 후자는 이완이 태어나기 위한 조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특별한 고유성이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 둘 모두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작가의 설명대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운명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는 것부터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LW : 그 두 개는 분리되기 어렵다. 나는 한국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내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을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이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조건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충돌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에 내가 태어난 거다.

1979년의 시스템이 이리저리 혼합되면서 이완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난 이게 맛있어, 난 이게 좋아.’라는 식의 취향 문제도 모두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 나의 취향이나 성향, 말투, 생각까지 모두 내가 살아온 환경의 영향 아래에서 배운 것이다. 나는 배우지 않은 것을 욕망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LEE : 예술은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체제 안에서 해석되고, 금기를 깨면서도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획일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정한 범위 안에서 금기를 깨뜨리는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규범 혹은 전통을 벗어나는 행동을 기대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면 외면하거나 비난한다. 시스템을 연구하니 잘 알 것이다. 이완이라는 예술가가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결국 이완의 작품(생산품)도 사회 구조 안에서 존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예술의 저항적이고 일탈적인 행위가 사회를 완전히 벗어나 버리면 무의미한 발화가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사회의 시스템과 매뉴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잘못하면 블랙홀과 같은 시스템에 흡수될 수도 있다.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생길 수 있는 딜레마나 한계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중의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인가?


LW : 나의 경우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나의 작업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진행된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발견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대상을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금방 감지하고 실행하는 편이다. 내가 지금 왼손에 들고 있는 고리대금 5분 대출이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과격한 정치 선동 메시지가 적혀 있는 전단지는 모두 오늘 작업실로 오는 길에 발견해 주워 온 것이다.

내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빨간 글씨로 적힌 거의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이 두 전단지의 내용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참 재미있는 지점이다. 나는 이 두 개의 전단지만으로도 이 세상을 블랙 코미디로 표현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해본다. 물론 나는 전시에 이 작업을 출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작업 노트에 적힌 단어들을 풀어내고 인물을 등장시켜 설명하면 소설이 되고, 조금 더 줄여 함축적으로 쓰면 시가 된다. 이 노트의 내용을 매뉴얼 삼아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다큐멘터리가 되고 한 컷으로 함축시키면 사진 작업이 된다. 나는 항상 코어(core)에 집중한다.


LEE : 모든 것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표현처럼 다양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중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니 진부하고 쉬워 보이지만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놀이기구 중에 〈미끄럼틀 Slide〉(2005)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나 깜짝 놀랐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놀이기구를 그대로 재현해도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텐데 그렇게 변형시킴으로써 고정된 의미의 한계를 깨뜨리고 양가적 사유를 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다. 여담인데 놀이기구를 만들었을 때 안전상 문제는 없었는지, 실제로 관객이 타거나 작동하는 것들이었는데 안전사고가 난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LW : 위험할 수 있다. 한 명, 어른이었는데 빠르게 올라가다 넘어진 적은 있었지만 실제 사고는 안 났다. 〈미끄럼틀〉의 경우 작품 밑 부분에 유압장치를 만들어 설치했다.


LEE : 〈펫-토이 PET-Toy〉(2005)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나? 다른 작업에 비해 덜 알려졌다.

LW : 놀이동산 작업을 한 뒤 장난감 작업을 했다. 어린이들이 밀면 날갯짓하는 장난감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엔 많이 만들었는데 정식으로 전시해서 보여주지는 않았다. 당시에 페트병이나 피자 박스 같은 걸로 악기를 만들고 어린이용 장난감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학습한다. 말을 배우고 숫자나 지식을 처음 배우는 것도 이때다. 사회성을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살펴보면 장난감은 어린이가 사회화되면서 인간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어릴 때 존재하던 장난감은 두 종류로 분류가 가능하다. 하나는 전쟁 무기 형태의 장난감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 역할을 시뮬레이션 하는 장난감이다. 아이는 장난감을 갖고 놀 나이가 되면 제일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배운다. 물론 무기는 방어라는 양가성을 갖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만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인간은 경쟁하고 이기는 것부터 배운다.

그게 아니면 엄마 역할, 의사 역할, 경찰 역할 등을 흉내 낸다. 연극적인 요소가 들어간 장난감들을 보면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역할들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이런 장난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이게 인간 사회를 가장 단순하고 귀엽게 만들어 놓은 샘플이겠구나 싶다. 그래서 귀여운 총 모형과 칼, 창과 방패, 그리고 악기나 소리가 나는 것들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이니 이미 오래전 작업이다.


이완, 〈Dictionary Dumbbell〉, 2006, 혼합 매체, 가변크기 © 이완

LEE : ‘책 운동 기구 Book Sporting Goods’(2006), ‘삶은 그저 따라 울려 퍼지는 핏빛 물결 Life Is Widely Spreading Blood-Red Ripples’(2009), ‘쓸쓸한 기준 Forlorn Standard’(2010) 시리즈처럼 기존에 있던 물건들을 원래의 용도를 벗어난 물건으로 다시 만들어낸 작품들은 이완이라는 작가를 널리 알렸다. 닭고기로 야구공을 만들고, 망치에 광을 내 거울처럼 사용하는 식의 작업은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방식을 따라가기만 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닭고기로 만든 야구공이다. 이 작품들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작가의 설명은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구입하는 것은 그것 혹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동의함을 뜻한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특정한 물건을 구입한 후 정해진 방식대로 사용한다. 너무 익숙하고 일상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어떤 규칙을 지키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는 물건을 구입하고 사용하면서 어떤 것들에 동의해왔고, 어떤 것들에 순응해왔는지를 되짚어본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놀이기구나 장난감 작업들처럼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이러한 태도는 ‘메이드 인 Made in’(2013~present) 시리즈를 시작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건을 구입하고 매뉴얼대로 사용한다는 것을 시스템에 순응한다고 보지 않고 효율성, 실용성을 위한 행동이라 생각할 수는 없는가?

닭고기나 유리잔을 망치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컵은 예전부터 물을 마시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바구니는 무언가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특히 실용품들은 사회의 시스템이 확립되기 이전부터 시대나 지역을 초월하는 고유한 역할을 갖고 있었다.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목적에 맞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던 것들이다. 오랜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가장 훌륭한 방법을 정리해놓은 것이 매뉴얼일 수 있다. 매뉴얼의 의미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LW : 두 가지 답을 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존재는 다 이기적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인다. 존재를 영속하기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과감히 없애기도 한다. 그런 특성이 시스템에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최우선시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이고 높은 품질로 빨리 만들 수 있을까’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그 과정은 굉장히 편리하고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보면, 예를 들어 축구공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정작 자신을 위한 축구공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처럼 시스템이 창출하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위해 부정적 요소가 작동했을 확률이 높다. 물론 평범한 소비자인 우리는 그 부정적 요소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가격이 싸진다는 것은 누군가 그만큼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원가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한다. 닭고기로 만든 야구공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스템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그 효율성이 가져다주는 다른 문제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데이터 밖의 결과를 내는 행동을 한 것이다.

왜 야구공인가 하면, 야구는 미식축구 다음으로 미국에서 많이 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미국 외에 야구를 즐기는 국가들은 미국의 정치적 영향 아래에 있는 국가이거나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기업의 광고를 위한 가장 좋은 행위다. 보통 야구는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되고 대부분 생방송으로 TV에 방영된다.

선수들의 유니폼에 붙어 있는 기업의 로고를 2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마케팅이다. 나는 미국식 유통 시스템에서 구입해온 닭으로 시스템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국의 대표적 스포츠인 야구에 빗대어 표현했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소비자가 아닌 최종 생산자가 될 수 있었다. 마트에서 산 닭을 요리에 사용하지 않고 야구공으로 만들어 미술 작품으로서 의미를 갖게 했고 미술품으로서 유통시켰다.


LEE : 효율성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위해 그 물건이 가진 데이터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순식간에 예술 작품으로 전환됐다. 하워드 리사티(Howard Risatti)는 고유하고 본질적인 속성이나 법칙을 갖는 공예와 달리 순수 미술은 소통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거울이 된 망치, 덤벨이 된 책 등은 원래의 의미로는 쓸모없는 쓰레기가 된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오직 의사소통이 목적인 순수 미술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역으로 이런 전환은 이제 효율성이 제로(zero)가 되었으니 이 물건은 예술 작품이 되었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이는 오히려 시스템이 원하는 예술의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결국 본인도 미술이라는 시스템과 규칙을 철저하게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의 행동이 오히려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매뉴얼을 따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가?


LW : 아까 질문에서 하려고 했던 두 번째 대답을 해야겠다. 나는 어떤 오브제를 갖고 작업을 한 결과물을 작품이라 하지 않고 생산품, 프로덕트(product)라 부르다. 예전에 어떤 사람들은 나의 작업을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나의 작품이 그렇게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했다고 갑자기 그 이전의 용도가 차단되고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관념들을 살짝 바꾸어 놓고 비튼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모순 장치를 설계하고 내 작품을 사람들이 이전에 알고 있던 관념에 맞춰 받아들이도록 함정을 파놓는다. 관람자가 함정에 빠진 것을 눈치 채면 그때부터 내 작업이 작동된다. 관람자는 모순의 경계를 경험하고, 잠시 동안이겠지만 순간적으로 노이로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작업은 모든 것들을 살짝 의심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내 작업을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닭고기로 만든 야구공으로 야구를 할 수 있고, 소고기 막대로 만든 빗자루로 비질을 할 수 있다. 소고기로 만든 십자가는 여전히 종교적 도상으로 읽힌다.


LEE : 예술로서 가치 부여받기를 피한다는 것인가?

LW : 그런 것 같다.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예술 작품인가? 내가 만든 야구공이 예술 작품인가? 그것은 그냥 닭고기로 만든 야구공이다. 이것은 관람자에게 새로운 과정의 사고를 경험하게 만드는 매개가 될 뿐이다. 내 작업 자체에 큰 가치를 직접 부여하지는 않는다.


LEE : 그런데 그것을 왜 미술관에서 전시하는가? 미술관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예술로서의 권위를 갖는 오브제가 된다. 혹시 예술과 실용품의 경계에 놓이길 의도한 것인가?

LW : 나의 생각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만을 통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구공을 인터넷 경매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마가린으로 만든 프로덕트들은 실제 마가린 섹션에 올려 판매했다. 구매자들은 ‘놀이가 가능한가요?’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예술 작품인줄 알고 샀다.

그러므로 나의 생산품들이 ‘예술 작품인가? 아니면 기능이 바뀐 상품인가?’라는 질문에 둘 다라고 답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 작업을 예술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겐 예술 작품일 테고, 여전히 야구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야구를 하면 된다. 물론 기존의 야구공보다 성능은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내 예술 행위의 매개체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행위 예술가에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설치 미술가처럼 행동하는 행위 예술가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설치 미술가처럼 행동하는 행위 예술가를 기획하는 기획자일 수도 있다. 자아를 더 확장시키면 나는 그저 자본가로서 내 모든 행위를 매개로 사업을 하는 사업가이거나 혹은 내 신념을 관철시키는 정치사상가일 수도 있다.


이완,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2012, 혼합 매체, 가변크기 © 이완

LEE :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If Given a Chance, I Do Refuse It〉(2012)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자신의 자리에 있던 사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다음 그것을 감상의 기능만 갖는 수석처럼 만든다. 그러나 이 작품도 상당히 양가적이다. 한편으로 예술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발휘되는 예술가의 막강한 권력을 느끼게도 해서 모순적이다. 무의미한 물건이 이완의 선택과 손길로 인해 작품이 되었다.

LW :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는 인간 사회에서 교환 가치를 상실한 상태에 있는 생산품, 즉 아무 의미가 없는 상태의 물건들을 다룬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물건들은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를 갖는다. 지금 내가 손에 잡고 있는 컴퓨터 마우스도 고장 나서 사용 가치가 사라지면 아무 의미 없는 돌멩이처럼 자연의 상태로 돌아간다.

우리가 열심히 사용하는 물건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 마치 사회의 시스템에서 완벽히 떠난 상태처럼 보였다. 물론 그중 일부는 완전 폐기되기도 하고, 그중 일부는 재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시스템에서 완전히 떠난 물건들을 재생시킨다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동양 철학과 불교의 연기법(緣起法) 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와 물건이 처음 만난 자리, 즉 실용품으로서는 마지막이었고 예술 작품으로서는 첫 시작이었던 장소에 놓여 있던 모습을 촬영한 영상과 감상의 대상이 되어 새롭게 태어난 작품으로서의 생산품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인과의 순환이나 윤회 같은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LEE : 이완의 작업에서 수집은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누군가는 수집의 행위가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수집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또한 수집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LW : 물질로 된 역사적 상징(물건)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정보나 데이터들도 나에게는 똑같은 수집의 대상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 등 사회 현상들과 맞물리는 작업을 많이 해왔었다. 한 개인이 가진 생각과 성향, 취향 등은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에 불가항력적인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

과거의 무명씨들의 사진과 수집품들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시대성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것들이 전시될 때 자연스럽게 타임라인과 내러티브를 형성하게 된다. 언론이나 책 등을 통해 기록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과 파편들로 지도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60년 전 초등학생의 일기장 안에는 오늘날 초등학생과는 너무 다른 하루의 일과가 빼곡히 적혀 있다.

70년 전 누군가가 떨어져 사는 가족에게 쓴 편지 속에는 가난한 삶 속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분열된 정신 상태로 써 내려간 청년의 일기장 내용과 책에 적힌, 역사적으로 기술된 한국전쟁은 정말 다르게 다가온다.

후대는 대부분 거시적인 역사만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수집품들을 통해서는 매우 미시적인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70년 전의 편지와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가려져 있고 쓸려 내려가 버린 미시적인 역사의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때로 보편적 역사라 여겨졌던 것이 과장, 왜곡, 누락, 은폐된 것임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에 객관적 역사라 불리는 것에도 누군가의 의도가 담길 수 있다.

따라서 수집을 통해 얻게 된 파편들이 끼어들면 역사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나는 퍼즐의 빠진 곳들을 찾으려고 계속 노력한다. 어떤 것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사실을 파헤치겠다는 관점에서 수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풍성한 정보들을 만들어 낸다는 부분이 중요하다. 나에게 수집품은 구술이나 문서화 된 역사를 듣고 보는 것과는 다른 역사의 실체적인 증거로 작용한다.

실제로 특정 시대의 상징이나 역사적 파편들을 수집하다 보면 그 시대에 진짜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객관적 역사를 통해 파악하는 사회적 역사도 있지만, 그와 같은 거시사에 적혀 있지 않은 역사도 분명히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무명씨들의 역사 말이다. 완전한 퍼즐은 아니고 비어있는 것이 많은 퍼즐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조각들을 올려놓다 보면 퍼즐이 다 채워지지 않더라도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완, 〈우리가 되는 방법〉(세부), 2011, 수집된 60개의 오브제를 평균 무게인 5.06kg으로 절단 및 결합, 가변크기(5.06kg) © 이완

LEE : 〈우리가 되는 방법 How to Become Us〉(2011)도 대표작으로 이야기가 많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어떤 작품보다 폭력적이라 생각한다.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에는 획일화된 기준이 적용될 때 생기는 폭력성을 느꼈고, 다음으로 무조건적인 평등이 가져오는 폭력성이 떠올랐다.

이 작품을 비롯해 다른 작품들을 보면 매우 직설적이다. 일반적으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하는 작업은 유치하거나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데 교묘하게 촌스러움을 벗어난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LW : 나는 작업할 때 시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시어를 연결시키듯 의미와 의미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태도를 습관적으로 갖는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완성하고 보면, 주로 설치 작업에서 두드러지지만 문학적인 전개를 해 놓을 때가 많다. 설명을 하지 않으면 너무 추상적으로 보여 관객들과 소통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때로는 설치 작품 하나가 긴 소설의 내러티브를 한두 개의 단어로 압축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시구에 어떤 단어들을 조합해야 할지 단어를 찾듯 작업한다. 나는 사물과 사물을 엮을 때 단어와 단어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되는 방법〉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되는 방법〉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모두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가 강제로 평등한 상태를 만들어 놓은 상황을 보여준다. 과학에서 엔트로피(entropy)란 결국 무질서도가 높아지면서 더 안정적인 상황이 되는 개념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우주적 시스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가장 안정적으로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평등을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상황이 펼쳐진다.

절대적 선이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상대적이며 관계 속에서 인과가 발생한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사자를 악마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되는 방법〉에는 사자의 입장과 양의 입장이 모두 담겨 있다. 개인이 추구하는 선과 그것이 모여 만들어지는 집단의 선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적과 가치 기준, 이데올로기에 동의하는가에 따라 평등의 개념, 선과 악의 기준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우리가 되는 방법〉의 생산품들은 모두 같은 무게, 즉 내가 모아 놓은 오브제 60개의 평균 무게인 5.06kg이 되도록 자른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더 많이 가진 자에게로부터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극단적인 사회주의를 실천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기준에 맞춰 공정해지기 위해 개별의 하나하나는 재단된 상처로 가득하다. 민주주의는 51%의 승리가 정권을 쥐고 49%의 패자들은 따라야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대립적이고, 시끄럽고, 충돌이 심하다. 따라서 내 작업은 모두에게 말이 되면서 모두에게 말이 안 될 수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에서 착안했던 〈더욱 밝은 내일을 위하여 For a Better Tomorrow〉(2015)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계몽적인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이런 식의 그림을 사용했다. 양가적 해석이 가능한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두 가지 상반된 편견이 충돌하는 내면의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6년 떠들썩했던 나의 사진 작업 〈한국, 여자 Korean, Female〉(2016)도 그렇다.


LEE : 〈한국, 여자〉는 《레이디 디올 에즈 씬 바이 서울(Lady Dior as Seen by Seoul)》(2016)에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필자는 그동안 이완이 가부장적 태도를 갖는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고 섹슈얼리티(sexuality)를 작품의 중심에 놓는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 혐오 논란에 적잖이 놀랐다.

이 작품이 ‘한국, 남자 Korean Male’, ‘한국, 여자’ 시리즈 중 한 작품이었다고 했는데 작가의 설명을 충분히 듣지 않으면 여성 혐오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 보인다. 사진이어서 더욱 그렇다. 시리즈 전체가 함께 전시되지 않아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인가? 제목에 여자, 남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더욱 신중해야 했던 것 아닌가?

굳이 이분법적인 성 구별처럼 보이는 남성, 여성으로 분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후 오해를 받는 것 도 작가가 감수할 몫이라고 밝혔는데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듣고 싶다.


LW :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에서 전시 의뢰가 들어왔을 때 디올이 요구한 하나의 조건은 디올 가방을 갖고 작업하라는 것이었다. 디올 가방을 경험한 여러 예술가들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보고 싶다는 취지였다. 디올은 참여 작가들에게 1개에 700만원을 호가하는 가방 2개를 보내주었다. 나는 하나의 생산품이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사회적 의미를 담은 물건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한다.

궁극적으로는 물건의 의미를 소유하려는 사람의 본성, 물건의 의미를 소유하려는 근본적 이유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디올의 가방은 내게 아주 좋은 재료였다. 나는 디올 가방에서 사회적 의미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대한 단상을 읽었다. 특히 한국이라는 국가적 특수성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역사, 정치, 사회, 경제적 특수성까지 담기에 프랑스산 럭셔리(luxury) 가방은 너무나도 좋은 재료여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럭셔리 가방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회학자가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 짓기 La Distintion』 (1979), 아비투스(habitus)를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부르디외의 주장을 긍정하다 보면 역사가 깊고 문화적으로 지배력이 높은 유럽은 사회적 계급이 높고, 아시아는 사회적 계급이 낮다는 차별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이론 중, 인간은 먹고 사는 기본적 소비가 충족되면 계층을 소비하게 된다는 말에는 긍정할 수 있다.

우리가 시장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은 필요해서 사는 것이다. 왜 필요한가는 제각각이다. 우리가 마트에서 쌀 같은 생필품을 사는 것과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을 소유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사실 우리는 남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 물론 한국처럼 상대적인 심리가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민족에선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소비 심리가 작동하기도 한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해야만 안정을 느끼는 심리 말이다.

과거 봉건사회, 중농주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 간 이동이 불가능했다. 조선 시대를 예로 들면 한번 양반은 대를 물려 양반이고 노비는 대를 물려 노비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본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등장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성공하면 귀족처럼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했다.

쁘띠 부르주아(petit bourgeoisie)가 그런 것이다. 대대손손 이어져 오는 상류층 가문의 역사를 갖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으로 부자가 되고 상류층처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력으로 성공해서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금융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 간 격차는 더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귀족처럼 부를 축척하고 소비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누구나 부르주아적인 외모를 가질 수는 있다. 심지어 그것을 일시적으로 코스튬(costume)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부르주아적인 아이템을 장착하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그것을 비즈니스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것을 거부하고 세속적 욕망을 경멸하며 정신적 우월함을 내세울 수도 있다.

현재의 사회는 상류층처럼 살라고 부추기고 미디어는 유혹하며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 위해 경쟁한다. 우리는 이미 모두들 성(城)에 살고 있지 않은 가? ‘oo 캐슬(castle), oo 팰리스(palace)’처럼 럭셔리한 삶을 향한 동경이 이미 아파트 이름에 박혀있다. 외모, 표정, 목소리, 스타일, 능력, 스펙(specification) 등, DNA부터 외부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쟁을 하게 된 지 오래다. 나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의 한국을 디올 가방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

이 작업의 모티브가 된 디올 광고 이미지가 있다. 어깨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디올 가방을 든 모델이 아름다운 숲을 배경으로 카메라 렌즈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이미지였다. 나는 거의 비슷한 옷을 준비했고 모델에게 같은 가방을 들게 한 뒤 사진을 찍었다. 단지 배경을 한국의 번화가로 바꿨을 뿐이었다. 배경이 된 골목은 서울의 명동 같은 곳이다.

한국은 한 가지 사항에도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동시에 얽혀 있는 특징을 지닌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요소가 원인으로 작용해 종합적 이유를 갖는 경우가 많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인식 변화의 속도는 산업의 발달 속도 보다 더디다. 그로 인해 아직도 농경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강요하는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예를 들면, 아직도 만연한 남성중심주의나 가부장적인 태도들, 다 함께 같이 밥을 먹어야 하거나 술을 마셔야 하는 집단문화 같은 것들이다. 각 개인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 집단이 되면 독특한 한국만의 성격이 만들어진다.

룸(room)이라는 글씨가 특히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는지 내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사진에 나오는 곳은 성(性)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소위 업소에 나가는 여자를 상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내 사진의 여성이 성을 파는 사람일 수는 없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거나 판타지일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개념상의 왜곡으로 실재적 전복이 일어날 수 없다. 다만 관객들이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자유라 생각한다.

내가 나의 작업 의도를 왜곡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처럼 그들도 내 작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상황이 아방가르드(avant-garde)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주장이 오고 가는 속에서 나의 작품이 토론의 중심에 놓이고 대화의 매개가 되면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을 갖춘 사회를 향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한국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에 비판적이다.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모든 소수자와 약자들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완, 〈프로덕트〉, 2015, C-print, 160 x 210cm © 이완

LEE : 작가가 그동안 이 작업에 대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오늘날에는 실용성과 효용성, 즉 사용 가치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소비의 형태가 많다. 소비에서 사용 가치가 가장 중요했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계층, 능력 등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한 소비일 것이다.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특정한 상표가 담아내는 의미를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의도가 있든, 없든 개인이 소유하고 지니고 다니는 물건은 직업, 취향, 가치관 등이 포함된 개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신분(지위)을 나타내기 위해 소유하는 물건은 다양하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방법이 명품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명품은 자신이 (최소한 경제적으로)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경제력이 매우 중요하다. 부는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품 등을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명품을 소유하길 갈망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편 〈한국, 여자〉는 작가의 의도와 그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른 쪽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 여자〉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에게 그리고 저들에게 Us and Them〉(2014)가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는 30명의 참가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1센티미터를 기준으로 자기만의 자를 만들고 그 자를 이용하여 같은 수치의 의자를 만들었다. 물론 의자의 크기는 심하게 제각각이었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그 의자에 앉아 ‘우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참여자들의 답변을 들었다. 의자는 대화와 만남을 상기시키는 물건임에도 단절이 느껴졌다. 사회는 항상 우리, 관계, 소통을 내세우지만 정작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1cm가 다르듯 서로 너무 다르고, 우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도 멀다. 똑같은 단어를 들어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하나의 작품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 작가와 필자가 나누는 대화의 내용도 서로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작가 입장에서 생각할 때 본인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오해를 받은 작품이 또 있었나?


LW : 한 번 있었다. 황학동의 골동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할인을 강조하며 불상에 가격표를 붙여놓은 것을 보고 종교적 상징물들이 물질적 가치로 매매되기 위해 가격표를 명찰처럼 달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워 사진으로 찍어둔 적이 있었다. 그 사진을 작품으로 발표한 후에 초대된 《서울 국제 불교 박람회》(2016)에 출품했다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주최 측에서 현재의 종교 문제를 잘 지적한 작품이라고 평가해줘 무사히 전시를 마쳤지만 당시 불쾌해하는 불자들이 많았다. 부처님 가슴에 가격표가 붙어 으니 기분 좋을리는 없었을 테지만 그것은 실재하는 풍경이다. 이제는 문화도, 종교도, 전통도, 자기가 더 저렴하다고 가격 경쟁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실제로 십자가상을 1+1으로 판매하는 성물 가게도 있다.


LEE : 〈프로덕트 Product〉(2015)는 종교적 도상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그것이 집 안에 놓이는 장식품처럼 소비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종교도 자본주의적 논리의 지배를 받게 되었음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주제인 것은 분명하다. 서양의 경우 기독교적 주제나 상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작품들이 꽤 많다.

이와 달리 한국은 종교 그 자체를 주되게 다루는 작품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십자가나 불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흥미롭다. 〈내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를 설명하면서 윤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혹시 작업하면서 불교적 세계관이나 교리를 염두에 두는가? 소고기로 만든 십자가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가? 대화를 하다보면 종교보다는 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것 같긴 하다.


LW : 종교 그 자체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메이드 인' 시리즈에서 가장 직접적, 압축적으로 드러나듯 나는 사회적인 시스템과 그것이 변화되는 모습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메이드 인' 시리즈를 진행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시 스템이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 문화, 종교 그리고 그들의 삶 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에 주목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바꾼다고 했다.

내가 노동자면 노동자의 의식을 갖게 된다. 임금이 싸니 물건을 살 때도 싼 것을 찾고 땅값도 싼 곳에 가서 터를 잡는다. 그러다 보면 일부러 모아 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만들어진다. 함께 어려움을 나누다 보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인간 종(human species)의 본성이다. 그렇게 노동자로서의 의식은 더욱 강화되고, 그렇게 뭉친 노동자 집단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의식을 바꾸거나 만들어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 중간 계층 이상의 부를 끌어 모아 계급 이동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의식도 변해 진보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부는 아니겠지만 진보는 주로 젊은 층에서 보수는 중장년층에서 지지하는 특성을 갖는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신이라는 존재는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에 아마도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 세상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항상 생각한다.


LEE : 〈다음 생에 꽃이 되어 그대 곁에 I Will Become a Flower and Be with You in the Next Life〉(2010)에는 마가린으로 만든 해골, 죽은 참새가 등장한다. 2009년도에 만들어진 동명의 비디오 작품에서는 썩어서 곰팡이가 생기는 케이크가 등장했다. 〈신의 은총 Dei Gratia〉(2008)에서는 실제 죽은 참새가 부패해 가는 과정을 촬영하기도 했다.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죽음이나 바니타스(Vanitas)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삶과 죽음을 담아내는 데에 관심이 있는가?


LW :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법칙처럼 사회는 하나의 생태계로서 여전히 유지된다. 권력의 성격에 따라 그 운행 규칙이 변할지라도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소멸하더라도 시스템은 변함없이 정교하다. 내 작업에서 소고기가 십자가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기호로서만 인식할 뿐이기 때문에 소고기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로 받아들여진다.

‘십자가→소고기→생명→도축→ 대량 축산 시스템→생명윤리→인간의 양심→죄→십자가’ 같은 생각의 연상보다 ‘십자가→천국→회개→교회’ 같은 생각의 연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경험해 온 인상과 정보들 밖으로 벗어나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인간의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보가 도로에 신호등을 세워 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십자가가 소고기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기호와 그것의 본질적 의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새로운 교통 신호 체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의미를 어떻게 부여받는가에 집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삶과 죽음 그 자체보다는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에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하다.


LEE : 이제 '메이드 인' 시리즈를 이야기해보겠다. 이 작업 역시 다른 작업들처럼 직접적이면서 중의적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혹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 외의 역할에는 별로 관심 갖지 않는다. 또한 내가 먹는 것과 쓰는 것이 어떤 시스템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 오는지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소비하는 물건들이 내포하는 역사적이고 정치 사회적인 의미도 간과된다. '메이드 인' 시리즈는 그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이고 한 개인의 눈으로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직접 한 끼의 식사를 만든다는 비효율성이 극대화된 상황은 오늘날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경제성을 생각하면 작가가 생각하는 일련의 문제들을 무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개인의 일탈처럼 보이는 이 작업에는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생산품 뒤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구조, 국가 간의 위계, 신식민주의적 상황이 담겨 있다.

평범한 아침 식사마저도 전 지구적인 정치경제 상황과 얽혀 있으며, 특히 식민주의가 아시아의 근대사나 산업화에 밀접히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는 쌀, 미얀마는 금, 대만은 설탕, 태국은 실크, 한국에서는 가발과 짚신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본인이 만든 물건들이 각 국가의 역사적인 생산품이라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까?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일 수도 있어 보인다.


LW : 역사적인 생산품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는 쌀이 가장 큰 수출품이다. 또한 캄보디아를 이야기할 때 역사적 슬픔인 킬링필드(Killing field)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슬픔의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석도, 묘지도 없이 묻혀있다. 과거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시대 때 군인이었던 노인이 쌀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리고 그가 수확한 쌀을 받아와 땅을 빌리고 다시 그 쌀을 심었다.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때 일본에 의해 설탕 농업이 산업화되었고, 해방 후에는 대만의 근간 산업이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팜 오일을 만들었다. 우리가 먹는 과자, 화장품 등에 말레이시아산 팜 오일이 들어간다.


이완, 〈메이드 인 코리아, 가발〉, 2015, 단채널 비디오, 10분 19초 © 이완

LEE : 한국은 왜 가발인가?

LW : 1960~1970년대 한국이 취했던 공업화 전략들이 있었다. 나는 1960년대 가발 공업에 종사했던 분을 찾아가 가발 제작 방법을 배웠다. 그분은 아직도 본업으로 가발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그녀의 삶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길 원했고, 그분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수출을 해야된다는 목표가 최우선시되었던 1960년대에 가발은 지금의 자동차처럼 아주 중요한 수출 산업이었다. 나는 3년 동안 길렀던 머리카락을 잘라 직접 가발을 만들었다. '메이드 인' 시리즈는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소한 것들을 통해 여태껏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는 작업이다.


LEE : '메이드 인' 시리즈의 처음 시작은 자신이 먹을 한 끼의 아침 식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온전히 혼자 작업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더라도 작가의 의도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보이기에 그것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혹시 타인의 도움을 받는 데에 있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웠는가?

LW : 최대한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인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음에도 혼자 작업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에 특별한 기준을 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나 소수자 같은 약자를 대상화하여 거대한 시스템이나 정치 구조를 비판하는 방식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나는 저널리즘적인 사진가나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런 윤리적 모순을 많이 봐왔다. 비극의 현장에서 황금 비율을 잡는다든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유린 현장을 담아 자본주의나 사회 권력을 비판하는 작업에서 오히려 노동자들을 대상화하고 작가의 의도대로 연기를 시키는 것을 볼 때면 정말 힘들다.

'메이드 인' 시리즈가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아시아의 노동 현장을 누비지만 누구도 대상화하지 않으며 작가인 나 스스로를 대상화한다는 점이다. 나는 중도적 시선으로 작가와 관객을 같은 지점에 두고 결과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문제에 대해 관객이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정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을 본 사람들은 서로 토론이 가능하다.

영상을 이끄는 나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관찰자의 시점에서 관객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점, 그것이 지루할 수 있는 영상을 계속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15분 정도의 영상 13편을 모두 관람하면 3시간 30분에 달한다.


LEE : '메이드 인' 시리즈를 보면 방문지의 노동자들 사이에 섞여서 일하고, 대화하고,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그들의 역사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어 보인다. 자급자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는 마치 무인도에 버려진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같기도 하고 소비를 위한 돈을 얻으려 노동에 함몰된 현대인 같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진정성은 사라지고 가상의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있다.

지식은 왜곡, 결핍되었고 비판적 태도는 사라졌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소비사회에서 소외되었다고들 한다. 영상을 보면서 작가가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방문 국가들의 모습도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생산된 허상이었기에 작가가 현장에서 느꼈던 괴리감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낯선 장소에 적응이 안 된 작가의 심리 상태가 감춰지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소한 '메이드 인' 시리즈를 위한 방문지를 선택한 이유, 수집한 자료 등이 만들어진 이미지와 정보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모습은 타자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메이드 인' 시리즈에서 다뤄지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자였다. 그런데 그런 타자의 지역에 들어선 작가가 이방인, 타자가 되는 상황을 보여준 것이다.


LW : 나는 철저하게 생산품을 제작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여행을 떠난다. 방문지의 누군가와 문화적 교류를 한다거나 그들의 인권이나 해당 국가의 정치적 상황을 내가 가진 이념의 기준으로 판가름하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마치 정치경제학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나는 '메이드 인' 시리즈에서 정치 상황이나 산업 구조를 진화를 거친 하나의 생태계 시스템이나 생명체로 보고 지금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역사적 이유와 원인을 따라가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나는 영상 속에서 계속 타자로 등장하지만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상에서 배경과 스크립트를 삭제하고 본다면 영상에 등장하는 나의 행동은 마치 원시인의 모습과도 흡사할 만큼 단순한 노동을 하고 있다. 카메라 밖에 위치한 사람들 쪽에 서서 나를 관망하기 때문에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된다고 생각한다.

낯선 장소에서 적응이 안 되는 심리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작업의 건조한 영상과는 다르게 나는 해당 국가에서 만난 친구들과 정말 즐겁게 여행했다. 물론 많은 시간 동안 혼자였고 그런 시간이 영상에 영향을 주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업을 하는 동안 실제로 외롭고 힘들었다.


LEE : '메이드 인' 시리즈가 마치 관광지를 방문한 것과 같은 구경꾼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제국주의적인 타자화를 부각시킨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본인이 방문한 국가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채 작가가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시키고 타자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가 그들의 사회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상황, 그들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머무르고 촬영한 것을 편집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오해와 왜곡의 위험도 있어 보인다.

LW : 나는 분명 외지인이기에 견문록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하나의 시선, 하나의 문제의식에 함몰되는 것은 물론 견제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비판이 오히려 제국주의적인 시선, 혹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일반화시키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도 반문하고 싶다. 우리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개발도상국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다.

또한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지역에 반드시 동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이 존재하는 곳의 상황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현지에 동화되어 그들의 삶 속에서 관계를 맺었다면 '메이드 인' 시리즈는 아마도 여느 다큐멘터리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은 생산자와 노동자이다. 이 둘 사이에는 돈이라고 하는 유동적인 매개체가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생산이라는 목적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소비라는 욕구 충족과 자아실현을 성취시킨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붕괴되기 쉽다. 생산자는 원가를 줄이고 싶어 하고 노동자는 덜 일하면서 많은 임금을 받고 싶어 한다. 소비자는 최소한의 지출로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싶어 한다.

이렇게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이 작용하면서 시스템의 균형이 깨지고 갈등과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때로는 물건이 갖고 있는 실제 가치와 무관한 환상을 덧입히기도 한다. 그런데 경쟁이 심화될수록 자본은 점점 일원화된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양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어 고유성을 갖던 물건들이 점차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에 흡수되고 있다.

핸드폰은 삼성과 애플(apple)만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수많은 생산자들은 대기업의 마진율 경쟁에 밀려 사업을 접고 대기업의 주식을 산다. 자영업으로 전통시장에서 채소를 팔던 사람이 대형 마트의 직원으로 들어가 채소를 판매하는 노동자로 바뀔 뿐이다. '메이드 인' 시리즈는 시스템의 문제나 부의 편중에 대해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비판보다 선행되어야 할 지점에 집중한다.


이완, 〈메이드 인 타이완, 설탕 & 설탕 그릇 & 설탕 수저〉, 2013, 3채널 비디오 및 생산품, 13분 34초 © 이완

LEE : '메이드 인' 시리즈가 그저 극한의 체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가서 엄청난 고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LW : 그렇게 본다 해도 괜찮다. 관객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메이드 인' 시리즈가 극한의 체험만을 보여준다고 느끼는 사람은 오직 노동에만 집중해서 보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은 단순한 행위지만 사회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의 관점 혹은 편견이 개입되면 내 작업이 다르게 읽힐 것이다. 나는 나의 작업이 관객들의 삶과 생각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어떤 관객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메이드 인 대만, 설탕&설탕 그릇&설탕 수저 Made in Taiwan, Sugar & Sugar Jar & Sugar Spoon〉(2013)를 봤는데 설탕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전하기도 했다. 내 작업은 누군가에게 설탕이나 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용 영상이 될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 속의 모순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LEE : '메이드 인' 시리즈에 담긴 스크립트는 상당히 객관적인 설명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우 지엽적인 이야기만을 전한다고 생각될 소지도 있다. 객관적인 설명문이지만 결국 작가 한 명이 서술하는 역사 설명이다.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관적 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좁은 프레임에서 역사와 사회를 서술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LW : 나는 마치 여행 가이드처럼 방문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에 대한 사실을 설명한다. 15분 분량의 영상 속에서 설명 할 수 있는 내용은 제약적이지만, 내가 생산하는 생산품이 왜 이 나라에서 중요한가에 대해 최대한 함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끌어다 사용한다. 좁은 프레임에서 설명한다기보다는 이미 너무 좁은 것, 즉 생산품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작업을 귀납적으로 이끄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스크립트에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 상황 등을 서술하는 것이 지엽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방문한 국가의 역사가 내가 제작하는 생산품 주변에 놓이길 원한다. 작품에 대한 오해나 오역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토론할 수 있는 작업이 되길 항상 희망한다.


LEE : 함께 이야기를 생성해나가면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담론을 생성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LW : 그렇다. 누군가는 오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중요하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무관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여러 가지 태도가 똑같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특정한 반응에만 집중하거나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내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중의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작업은 이율배반적인 키워드를 담고 있기도 하다. 두 가지 상반된 명제를 동시에 한 작업 안에 집어넣는 시도는 '메이드 인' 시리즈뿐 아니라 사진, 조각, 회화 등의 작업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나의 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논쟁할 때 비로소 나의 작업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LEE : 비디오 영상을 편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 과정을 편집 없이 보여주는 것이 경험에 대한 전달이 확실해지고 오해의 소지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신기한 것은 편집되었는데도 '메이드 인' 시리즈는 작가의 심리적인 부분이 배제된 채 매우 중립적으로 촬영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뉴스 기사에도 저널리스트의 관점이 들어가듯 모든 것은 중립적일 수 없다. 작업이 전반적으로 냉소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혹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조금은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할 계획은 없는가?

LW : 불필요하게 과정을 모두 보여줄 필요는 없다.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품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메이드 인' 시리즈처럼 쓸데없는 짓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작업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으니 정말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사실 ‘메이드 인’을 포함한 나의 모든 작업에서 될 수 있으면 형용사를 제외시키려고 노력한다. 심리적인 수사나 미적인 미장센처럼 작가를 드러낼 수 있는 시도는 과감히 빼버린다.

그것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결국 내 감정을 모두 담은 것이다. 그래서 작업을 보고 난 뒤 작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적인 태도로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메이드 인 베트남-고무&커피 Made in Vietnam-Rubber & Coffee〉(2016)에 등장하는 위령비의 경우에도 위령비를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 그와 관련된 질문들을 던질 뿐이다.

나는 인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기에 온전히 이해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계속해서 인간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 생각한다. 언어로 소통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서로 생각하고 대화하고 고민하는 것.


LEE : 거의 마지막까지 온 것 같다. 잠시 조금은 개인적이라 느껴지는 질문을 몇 개 하겠다. 어떻게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나?

LW : 부모님 말씀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빤히 보고 있기를 좋아하고 낙서 같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부모님이 음악을 전공하셔서 예술이 아닌 영역으로 나가길 바라셨다. 중학교 때에는 반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 정도로 소문이 났었고 가끔 친구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면서 용돈을 벌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그려줬던 그림 중 하나를 미술 선생님께서 보셨고 미술반에 들어갔다. 그 이후 미술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미술 대학에도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는 패션 사진작가가 되고자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 밑에서 어시스턴트 생활도 했었다. 하지만 패션 사진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야였다. 그래서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 전시가 끝난 직후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재미 작가 존 배를 찾아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결심했다.


LEE : 물론 모든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큰 영향을 받지만 대화를 할수록 특히나 개인적 경험들이 작업에 꽤 많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든다. 거시적 담론으로 나가는데 매우 미시적인 개인사, 일상에서 시작한다.

LW : 내 작업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함축해서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불가항력’이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삶의 불가항력. 누구나 삶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고, 겪고,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영향을 받으며 삶은 연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삶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것들 안에도 우주가 연결되어있다.


LEE : 디제잉(DJing)을 한다고 해서 놀랐다. 그러고 보니 작업실에서 미팅을 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 늘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LW :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연달아 듣는 것뿐이다.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음악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거의 매일 모든 시간 음악을 틀어 놓는다. 우연히 내가 사는 동네에 감각이 좋은 디제이(DJ)가 엘피 바(LP Bar)를 오픈했고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바에서 디제잉도 하게 되었다. 작업도 디제잉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와 역사, 역사와 오브제, 오브제와 오브제, 오브제와 공간, 생각과 생각 등을 믹싱(mixing)해서 의미를 결합시키면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생각과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LEE : 좋아하는 미술가가 있는가? 그동안 대화를 하면서 다른 작가의 작업을 거론하는 것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LW : 미적인 공간 구성이나 시각적인 장관, 전시장에 펼쳐진 하나의 장면, 형용적인 설치들에는 그다지 감동받지 않는다. 10년 전쯤,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작업을 좋아했다. 작가가 어떤 상황이나 공간에 개입함으로써 바뀌게 되는 지점들에 매료된 적이 있다.


LEE : 작업을 진행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당황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LW : 예를 들어 내 작품을 누군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린 사건을 들 수 있겠다. 그 덕에 〈우리가 되는 방법〉 중 8점이 없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작품이 안 보여서 처음에는 작업실에 두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버려져 폐기처분 된 거였다. 그래서 여덟 자리는 비워두고 전시했다.

〈메이드 인 미얀마, 금 Made in Myanmar, Gold〉(2014)을 진행할 때 산 속에서 산악 오토바이가 고장 났던 적도 있다. 미얀마의 깊은 산속에서 오토바이가 고장난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밤이 되면 늑대가 득실거린다고 한다. 다행히 늑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간은 걸렸지만 산 속에서 오토바이도 수리했다.


LEE : 이제 잠시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A Diligent Attitude Towards a Meaningless Thing〉(2017)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2012년에도 이와 유사한 회화 작업을 보여줬었다. 이번 작업은 시급 8000원에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가장 가는 붓으로 100호 캔버스를 성실하게 3일간 칠하게 하고, 그 위에 작가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 연상되는 붓질을 더한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붓질은 그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예술가의 붓질과는 전혀 다르다. 서로 정반대되는 지점의 행위가 공존한다. 작가는 이 작품이 진정으로 완성되려면 판매가 완료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노동, 창조 행위, 미술 시장에 대한 풍자로 보인다.


LW : 나는 지금 시대에 노동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 자체에 대한 의문도 갖고 있다.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는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는 자와 그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 사이에 어떤 공통된 의미가 있을까를 실험한 작업이다. 또한 하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화 되는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는 하나의 생산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대로 시뮬레이션(simulation)해서 제작한 평면 회화다. 나는 이윤 추구가 목적이고 컬렉터(collector)는 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값을 지불한다. 이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시급이 목적이므로 자신의 붓질에 아무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관심갖지도 않았고 단지 성실함만을 제공했다.

이것은 '메이드 인' 시리즈와도 연결되는데 현지의 생산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갖지 않는다. 나는 상업적인 규범을 이해하고 그것을 따라 상품적으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인 〈뱅크 오브 이완 Bank of LEE WAN〉(2013~present)에서 과거의 작업들을 모두 연결시키는 시도를 보여줄 계획이다.


이완, 〈고유시〉, 2017, 668개의 시계, 가변크기 © 이완

LEE : 이완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다. 작가와 필자는 일정 부분에서 꽤 큰 생각의 차이를 갖고 있다. 몇몇 사건이나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우리는 같은 시스템 안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각자의 시스템 안에서 다른 매뉴얼을 따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나 타인이 볼 때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사이에도 가치관의 차이나 의견 차이가 일어난다.

또한 앞서 말했듯 서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한 번의 프로젝트로 한 작가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LW :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욕망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 나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시스템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의미를 다루는 것이다. 1200명을 인터뷰하고 얻은 정보(개인 소득, 한 끼에 지불하는 비용, 식사할 때 걸리는 시간 등)를 바탕으로 1200명 각자의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산출했던 〈고유시-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한다고 해도 Proper Time〉(2017)에 드러나듯 같은 시스템 안에 머무르지만 모두 다른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LEE : 한 작가의 작업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리포에틱 프로젝트의 첫 작가로 흔쾌히 참여해 준 이완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