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휘의 작업은 미술
제도 안에서 ‘힙합’이라는 바깥의 언어를 호출해, 예술이 무엇으로 규정되고 작가는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그에게 힙합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제도와 매체 환경, 작가의 생계와 정체성,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평적 장치다. 안광휘는 랩, 비트, 가사, 영상, 자막을 전시 공간 안에 배치하면서 힙합 음악이 미술 제도
안에서 탈맥락화되고 다시 재맥락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Noise
Cancelling》(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19)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개인전으로, 작가는
힙합의 방법론을 통해 인터넷 이미지, 밈, 자전적 서사, 미술 제도의 조건을 하나의 전시적 경험으로 구성했다.
안광휘가 힙합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경험한 세대적·매체적 환경과도 연결된다.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2000년대 초중반은 케이블 TV와 인터넷, 개인 음악 공유 플랫폼이 확산되며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독립 음악 신이 대중적으로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안광휘는 이 환경 속에서 힙합을 접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와
사운드, 맥락이 제거된 문화적 파편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이 경험은 《The Pathetic Rhymes》(인스턴트루프, 서울, 2017), 《Show Down》(디스위켄드룸, 서울, 2020), 〈Remix: Greatest Hits of The
Pathetic Rhymes〉(2021) 등으로 이어지며,
작가가 예술가로 살아가며 느끼는 좌절, 자기비하, 생계의
압박, 제도와의 거리감을 힙합의 언어로 전환하는 기반이 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힙합을 미술로 번역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과 오역이다. 안광휘는 자신이 직접 블록 파티를 경험한 세대나 지역에 속하지 않고, 주류
힙합 신의 내부자도 아니라는 조건을 결핍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간접 경험과 오해, 자의적 해석에서 생기는 어긋남을 작업의 동력으로 삼는다. 《The Pathetic Studio of The Pathetic Label》(금천예술공장, 서울, 2022)에서는 블록 파티에 이어 ‘레이블 스튜디오’라는 가상의 제도를 설정하고, 비교적 동질적인 미술계 구성원들을 하나의 “소수집단”처럼 호출한다. 이때 전시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장이라기보다, 특정한 제도와 취향, 관계망 안에서 작동하는 폐쇄적이면서도 유동적인
공동체의 무대가 된다.
최근 작업에서 안광휘는
미술 제도의 언어 자체를 더욱 직접적으로 흔든다. 싱글 〈ASFS〉(2024)는 작가 소개라는 제도의 필수 문서를 랩의 형식으로
바꾸며, 명확하고 논리적인 작가 서술이 요구되는 구조를 비트와 리듬,
의미의 비약으로 분절한다. 〈Untitled
13 Tracks – Nanji〉(2025)는 이러한 전략을 더욱 확장한 작업으로, 문서, 음악, 영상, 전시장 환경 사이에서 의미가 안정되지 않는 상태를 만든다. 《BE KIND, REWIND, DOUBLE BIND》(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6)에서는 서구 미술사와 힙합 문화가 한국에서 수용되어온
과정을 겹쳐 보며, ‘가짜’와 ‘무근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중 구속의 상황을 예술 작업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안광휘는 이 딜레마를 해소하기보다, 그 안에서
제도의 안과 밖이 서로를 어떻게 흔드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