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경(b. 1989)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오며, 가시화되지 않은 장애와 낙인 찍힌 이름으로 인하여 드러낼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작가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는(제외될 수밖에 없는) 초상과 목소리를 편집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양은경, 〈이름의 자리〉, 2022, DCP, mov, 30분 © DMZ Docs

양은경의 작업은 주로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 특히 조현병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관심은 2017년 캄보디아에서 정신과 의료 캠프 사진 촬영을 맡은 이후, 2019년 진주에서 일어난 방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을 가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뉴스는 곧 이 병에 대한 혐오를 낳았으며, 작가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양은경, 〈포옹〉, 2023, 단채널 영상, 5분 8초. © 인천아트플랫폼

이를 위해 양은경은 조현병 당사자들과 1대 1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개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는 이 병의 증상이 인터넷과 책에서도 다 다뤄지지 못할 만큼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조현병의 증상과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은 당사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인 영역이다.
 
이에 따라서 작가는 정신질환의 증상을 재현하려 들거나, 사회 구조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계몽적 어조를 취하는 대신, 조현병 당사자의 서로 다른 신체와 경험 그 자체에 몰입하고자 했다.


《도채비 길어올리기》 전시 전경(옹노, 2021) © 양은경

초기 작업에서 양은경은 과거 민담에서 환상 속에 등장하는 존재인 ‘도깨비’를 매개로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설화 속에서 도깨비는 항상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작가에게 이러한 도깨비는 이름을 불러주고 문을 열어주는 ‘환대’의 마음으로 다가왔다.
 
2021년 개인전 《도채비 길어올리기》는 그러한 도깨비의 환대의 손길을 빌려 고립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객이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만들어지지 못한 작가의 단편영화 〈도깨비불〉의 시나리오를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양은경, 〈도깨비불〉, 2024, 단채널 비디오, 18분 20초. © 인천아트플랫폼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조현병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집이 없는 연주자로 나온다. 각자 고립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 둘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시 공간에는 문 안쪽에 어른거리는 빛과 영상, 작게 들리는 소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객이 빛을 따라 직접 문을 열어젖히면 영상을 마주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작가는 환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을 담았다.


《도채비 가로지르기》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카고, 2022) © 인천아트플랫폼

이듬해 열린 《도채비 가로지르기》(아트스페이스 카고, 2022)에서는 캄보디아,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의 정신질환(자)과 관련된 장소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선보였다. 사진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하지만 관객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사진을 따라 걸으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이러한 설치 방법은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담고 외부에 보여주는 작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반영한다. 작가는 외부자로서 당사자의 이야기와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때 혹여 폭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이야기와 풍경 안에서 자주 시선을 피했다고 고백한다.


《도채비 가로지르기》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카고, 2022) © 인천아트플랫폼

그러다 작가는 시선을 피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서서 돌아본 순간에 대해서, 되돌아가는 것의 희망에 대해서 생각했고, 과거에 있던 어떤 흔적으로 하여금 나아가는 몸들을 상상하며 전시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이야기와 이미지였기 때문에 작가는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바랐다.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4) © 양은경

한편, 2024년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개인전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에서는 전작과는 달리 ‘도채비(도깨비)’ 대신 ‘조현병’이라는 병명과 그 당사자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어떻게 다가가고 또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전시는 조현병 당사자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그들의 병리적 경험을 들여다보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작가는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거리 감각과 이음새를 메우기 위한 작업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조현병의 증상과 예후, 특성은 단일 서사로 환원될 수 없다. 개인이 겪는 경험은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병과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모아 이 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4) © 양은경

이를 위해 전시는 병렬적인 다매체 미디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이들의 몸과 말을 세계에 흩뿌리고자 했다. 이때 작가는 ‘연결’을 전제로 하는 대신, 다양함 속에서 유사성을 근간에 두며 영상 다섯 개를 병렬하여 설치했다. 각각의 채널에서 동시에 음성과 다른 텍스트가 나오거나, 빈 화면에 텍스트만 나오거나, 때로 화면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나왔다.
 
이를 통해 양은경은 “숨길 수밖에 없던 몸을 한자리에 모으고, 단단한 말이 서로를 지지함으로써 새로운 몸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즉, 작품은 비가시화된 몸을 대신하여 감각 가능한 실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4) © 양은경

또한 전시에서는 영상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는 초상과 목소리를 편집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초상 공개에 대한 동의를 받은 인터뷰의 경우에는 영상에서 인터뷰이의 얼굴과 음성이 일치되고 또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초상을 가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경우에는 모자이크가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약의 부작용으로 손과 발을 떠는 사람의 경우 손이나 발 같은 신원을 특정할 수 없지만, 그 시간 그 자리에 그 사람의 존재가 있음을 나타내는 몸의 일부와 잘린 공백을 남겼다.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4) © 양은경

신체 이미지 사이에 인공적으로 생겨난 빈칸에는 다른 이의 말과 이미지로 그 몸을 붙들어 놓았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싶지 않은 작가의 마음과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즉, 영상 속 공백은 이 사람의 몸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된다.
 
이전 전시와 마찬가지로, 이 전시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야만 잘 보이고, 잘 들리는 방식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쉽게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이야기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도리어 그것을 다시 숨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작가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동시에, 이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그 존재를 향해 마음을 내어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양은경, 〈몸과 말의 경계에서〉, 2025, 단채널 영상, 8분 © 네마프2025

나아가, 2025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몸과 말의 경계에서〉에서 양은경은 신체를 포획하는 디지털 기술(영상 녹화와 음성 녹음)을 공간에 재생하는 영사 방식(프로젝션)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활용한다.
 
이 작업에서 양은경은 기술 발전에 의해 더욱 또렷하게 보고 선명하게 보고/듣기를 향해가는 영상과 음성이라는 기록 매체, 그리고 투사(projection)라는 물리적 구현 방식의 빈틈을 통과하며 '보기'와 '보이지 않음', '말하기'와 '침묵' 사이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재현의 형식을 넘어, 가시성(몸)과 발화(말)의 경계에 놓인 존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했다.


양은경, 〈몸과 말의 경계에서〉, 2025, 단채널 영상, 8분 © 네마프2025

이렇듯 양은경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장애와 사회적 낙인을 지닌 몸, 즉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단순한 재현의 방식이 아닌 관객의 신체적 감각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관객 스스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비가시화된 이들의 몸과 혐오의 존재로 낙인된 이들의 목소리는 그의 작업 안에서 서로 충돌하고 또 공명하며, 감각적 실체로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들의 증상은,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한 사람 만의 이야기로 이 병을 설명할 수 없었다. 몸은 사라졌지만, 말은 살아 숨을 쉰다. 그 말을 더욱 선명히 그려내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양은경, 《사라지는 몸, 만져지는 말》 전시를 위한 인터뷰 중)


양은경 작가 © 인천아트플랫폼

양은경은 서울과 인천을 기반으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몸과 말의 경계에서》(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사라지는 말, 만져지는 몸》(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 《도채비 가로지르기》(아트스페이스 카고, 인천,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사라지는 순간, 남겨진 형상》(팔복예술공장, 전주, 2026), 《Orbit of Light: 빛의 궤도》(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5), 《어디에도 없지만, 지금 이곳》(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25), 《레이더: 세상을 감각하는 눈》(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양은경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2025 디지털아트 컬처랩: 프로젝트랩” 우수상 및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K-Doc Short Pitch 2022”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팔복예술공장(2025-2026)과 인천아트플랫폼(2024-2025)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