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Process of Processing》 © Solgeo Art Museum

Process, Beauty of Secrecy: 과정, 아름다움의 비밀 

쏟아내고 표현하 던 20대를 지나 40대 중반으로 접어든 작가 강준영은 비우고 덜어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약 60여 점의 작품은 단지 결과물에 집중하는 대신, 그 속에 담긴 과정의 복합적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실패, 그리고 끊임없는 성찰로 이루어진 여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태도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각자의 신념과 잣대를 지니고 삶을 영위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즐거운 학문*, 1882)고 말하며,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역 설했다. 강준영 작가의 이번 전시 역시 이러한 철학적 맥락을 반영하며, 단순한 결과가 아닌 그 뒤에 숨겨진 다양한 순간들과 치열한 고민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의미에 주목한다.

Installation view of 《Process of Processing》 © Solgeo Art Museum

전시의 주제를 관통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은 두가지 중요한 요소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첫번째는 현대 미술에서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드로잉’ 작품들로, 작가에게 있어 드로잉은 단순한 작업 아이디어 스케치나 구현되지 않은 에스키스의 의미가 아닌, 인고의 시간을 거친 무수한 고민의 과정과 본질적인 가치를 상징한다. 즉, 드로잉은 작업의 단초이자 완성을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행위이며, 이는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즉 과정에 대한 성찰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일반적으로 드로잉 과정에 쓰이는 건식 재료인 연필과 종이를 흑백으로 사용하고, 시각적 표현은 조형의 기본 요소인 기하학과 점선면을 기반으로 ‘과정’에 담긴 이야기를 스케치북을 넘어 캔버스와 판넬, 그리고 영상과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과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품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두 번째 요소는 ‘집’이다. 3대가 함께 모여 지냈던 기억과 건축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자랐던 그에게 있어 집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며, 작업의 출발점이자 영감의 근원이다. 이전의 작품들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개인과 가족의 의미와 그 상징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과 건축의 사이 지점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탐구로부터 시작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과거 아버지의 건축 도면과 김중업을 비롯한 한국의 근현대 주거 정체성을 담은 주거공간의 도면과 입면을 미술 조형 언어의 기본이 되는 점선면과 기하학을 활용하여 다양한 표현 방법과 연출을 통해 미술과 건축 사이의 이야기를 탐구하며 유연하게 표현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과거로부터 현재의 변화를 살펴보며 향후 우리의 삶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모색해 나간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구성된 전시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기하학과 점선면은 미술과 건축 모두에서 시각 표현의 기초 단위로 사용되며, 공간이나 형태의 표현, 움직임과 리듬 등을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건축에서는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기능적인 역할을 하며, 실제 공간 속에서 물리적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미술과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전시의 첫 도입부에는 건축의 관점에서 사용된 기하학과 점선면을 미술적 언어로 표현한 작가의 지난 10년 이상 꾸준히 진행해온 드로잉 작업들이 펼쳐진다. 이들 중 구심점 역할을 하는 10미터의 거대한 화폭 위에 펼쳐진 흑백의 추상 작업은 강준영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건축의 요소들을 의미하며, 한국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단면과 입면을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한 작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시의 두 번째 장은 도시 건축 설계 프로그램 전문가인 프로그래머 김동철(1982-, KOR)과의 협업으로 진행된 영상 작업이 관객을 맞이한다. 건축 프로그램의 코딩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도출된 기하학 요소와 기호들로 이루어진 영상 작업은 작가와 프로그래머의 협업을 통해 미술적 시각으로 재해석된 영상 드로잉이다.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모이고 흩어지며 반복되는 추상적인 기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공간과 환경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수고와 협업, 그리고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와 수고로움에 대해 환기하고자 한다.

Installation view of 《Process of Processing》 © Solgeo Art Museum

전시의 마지막은 1관과 2관에 이어 ‘집’을 상징하는 기하학을 모티브로 한 변형 캔버스들 위에 회화적으로 표현된 드로잉들과 거대한 테이블 형태의 조형물로 구성된다. 변형 캔버스들은 한옥 및 김중업의 건축물의 상징적인 조형 언어를 재해석하는 의미를 지니며, 마찬가지로 드로잉의 기본 요소를 상징하는 흑백의 컬러와 건축에 있어 기본적인 물질 요소인 물과 흙을 상징하는 표현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전시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각 형태의 조형물은 그 자체가 드로잉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캔버스이며, 현대 미술에서 드로잉의 개념적 확장성을 고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현대 예술가로서 강준영은 예술가의 역할과 태도를 자신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탐구하며, 인간 사회와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사유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본 전시를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본질적 질문들을 다시금 고민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 서 과정을 간과하기 쉽지만, 그 과정이야말로 예술과 삶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작가는 이야기하며, 이번 전시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큐레이터 강승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