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트라이베카에 새롭게 문을 연 Space ZeroOne은 한화문화재단이 설립한 비영리 전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의 신진 작가들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을 지향하며, 한국 동시대
미술의 실험적 실천을 국제 미술 생태계와 연결하는 장기적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2025년 11월 7일 개막한 개관전《Contours
of Zero: Emerging Korean Artists in New York》에는 백정기, 홍기하, 김지희, 오가영, 박정혜, 서진호, 송민정, 유지영
등 8인의 한국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디지털
이미지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기술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동시대적 정체성과 관계의 방식을 탐구한다. 스마트폰 화면, 가전제품, 도시
인프라, 일시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같은 일상의 파편들은 물질화되어, 동시대 문화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전시에는 약 15~20점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대부분 최근 3년 이내 제작된 신작이다. 다수의 작품이 뉴욕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일부는 Space ZeroOne의 건축적 조건과 장소성에 반응해 새롭게 커미션되었다.
이는 전시 공간을 완결된 결과물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작업이 발생하고 실험이 촉발되는
조건으로 설정하려는 공간의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Zero’라는
개념, 출발점으로서의 공간
Space ZeroOne의
‘Zero’는 결핍이나 공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와
형식이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 다시 말해 가능성이 응축된 출발점이며,
끊임없이 갱신되고 변화하는 ‘되기(becoming)’의
상태에 놓인 장(field)으로 제시된다.
초기 컴퓨터 인터페이스에서 스마트폰 화면에 이르기까지, 이진 코드와 디지털 구조가 사고와 정체성의 조건으로 내면화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제로’는 이미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감각이자 전제다. Space ZeroOne은 이러한 세대적 조건 위에서, 제로를 기술
이전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동시대적 경험의 조건으로 다시 호출한다.
이 개념은 독일 전후 ZERO 그룹이
제시했던 ‘재생의 지점’으로서의 제로, 그리고 롤랑 바르트가 말한 중립성의 공간을 참조하면서도, 오늘날의
기술 환경과 문화적 이동성 속에서 새롭게 위치 지어진다. Space ZeroOne의 제로는 과거의 미학적
선언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조건으로 작동한다.
플랫폼으로서의 Space
ZeroOne
Space ZeroOne은
단기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커미션·퍼블릭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및 저평가된 작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특히 한국 작가를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디아스포라 작가, 그리고 국제 신진 작가들과의 교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국 동시대 미술을 단일한 국가 정체성이 아닌 다층적 네트워크로 확장하려는 방향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 미술을 특정한 스타일이나 지역적 특성으로 환원하기보다,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 흐름 속에서 관계 맺는 하나의 실천으로 위치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선행 사례와 이어지는 흐름
Space ZeroOne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 사례를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비영리 기관 연강재단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이상 두산갤러리 뉴욕을 운영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를 뉴욕 미술계에 지속적으로 소개해 왔다. 두산연강재단은 국내 최초로 뉴욕시에 공식 등록된 비영리 미술기관으로, 전시
공간 운영과 더불어 두산레지던시 뉴욕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장기 체류와 작업 환경 속에서 지원했다.






두산갤러리 뉴욕과 두산 레지던시 뉴욕은 개인전뿐 아니라, 모마와 구겐하임 미술관 등 주요 기관 큐레이터들과의 스튜디오 방문을 통해 한국 작가들이 뉴욕 미술계와 실질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두산연강재단은 이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한국 작가의 국제 미술계 진입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실험한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이러한 축적 위에서 Space
ZeroOne은 출발한다.
2000년대 후반이
한국 작가의 국제 제도권 ‘진입’을 모색하던 시기였다면, 2020년대 중반의 Space ZeroOne은 형성 중인 글로벌
관심 속에서 실험과 담론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였는가’가 아니라, 이미
검증된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것인가에 있다.
마무리
Space ZeroOne은
아직 평가를 요구받는 대상이라기보다, 이제 막 시간을 축적해 나가야 할 단계에 놓인 공간이다. 이곳은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성취를 요약하거나 대표하려는 장소가 아니라, 무엇이
될지 유보된 상태에서 출발하기를 선택한 플랫폼이다. 다시 말해, ‘제로
지점’에서의 시작을 전제로 한 실험의 장이다.
두산갤러리 뉴욕이 전시와 레지던시를 결합한 운영을 통해 하나의
선례를 구축했다면, Space ZeroOne은 그 흐름을 이어받아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또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 공간의 성과는 단기간에 가시화될 필요가 없으며,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시의 횟수보다, 실험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작가와 담론이 시간을 두고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에 있다.
Space ZeroOne이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안정적인 거점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뉴욕에서의
이러한 시도들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질 때, 한국 동시대 미술은 일회적 관심을 넘어 지속 가능한 구조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Space ZeroOne
New York: 371 Broadway, New York, NY 10013, USA
Hours: Tuesday–Saturday, 12–6 PM
Contact:
T +1 212 226 6701
Instagram @zeroone.space
E info@zeroone.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