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해(b. 1987)는 주로 황동, 은, 철과 같은 금속 재료를 사용해 풀, 나무, 바람 등 자연으로부터 감각한 리듬과 구조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과 비물질적 요소를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해, 이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번안한다.


김동해, 〈풍경(quiet) #1〉, 2020, 황동, 돌, 65x100x13cm © 디스위켄드룸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의 움직임이나 소리, 빛과 같은 일상의 풍경에서 쉽게 볼 수 있고 항상 주변에 존재하는 익숙한 경험들은 그의 작업에 소재가 된다. 김동해는 자연 속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뒤엉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장면들을 관찰하고 함께 호흡하며, 그로부터 감각한 요소들을 수공예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김동해, 〈기억의 단면〉, 2025, 황동, 35x30x14cm © 디스위켄드룸

그에 따르면, 조형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외부의 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자신의 감각과 정신이 자연과 연결됨을 느끼는 순간, 거대한 순환과 율동의 일부로서 낯선 ‘나’를 조우하게 되는 시적인 순간이다. 이러한 경험의 순간들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잡아 조형을 통한 또 다른 풍경으로 거듭난다.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은 김동해로 하여금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미지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사물 그 자체보다 사물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 즉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게끔 그의 시선을 변화시켰다.


김동해, 〈울다 #1〉, 2024, 순은, 25x15x10cm © 디스위켄드룸

작가 노트에 따르면, 이러한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보이는 것 이면에 자리 잡은 숨겨진 관계를 연결 짓고 바라보는 것을 통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주변의 수많은 요소들과의 상보적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공존한다는 시각을 가지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작업에 담고자 하는 것은 식물의 형태 그 자체라기보다 “서사가 있는 어떤 장면 또는 풍경”에 가깝다.


김동해, 〈유영하는 호 #1〉, 2025, 황동, 300x210x240cm © 디스위켄드룸

김동해의 작업은 작가 주변의 비가시적 요소들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들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연결 지어보며 이루어진다.
 
기억 속 자연에 대한 주관적 경험과 인상을 토대로,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의 상관관계와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연결 지어보는 것에서부터, 가느다란 금속 선재나 판재를 구부리고 두드려 만든 마디와 마디를 연결해 구축한 전체의 형태와 구조가 시공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행위를 통해 창작된 기억의 조각들이 관객과 어떻게 호흡 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김동해, 〈유영하는 호 #2〉, 2025, 황동, 260x190x180cm © 디스위켄드룸

이러한 과정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만들어가는 자연의 질서와도 닮아 있다. 나아가,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은 재료와 사물, 사람과 시공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며 일상을 장식한다. 이로써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들은 작품이라는 새로운 사물이 되어 일상의 공간을 채우고, 그곳은 다시 풍경이 된다.


《히든 커넥션》 전시 전경(식물관PH, 2022) © 김동해

예를 들어, 2022년에 열린 김동해의 개인전 《히든 커넥션》은 우리 주변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들의 상호작용에 주목해 자연풍경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설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상호적인 순환으로써 바라보았다. 이에 착안해 제작된 금속 설치물은 얇고 가벼운 금속 선을 이용해 주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이파리를 연상시킨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전체의 형태와 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바라보고 자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한다.  


《Captured Moments》 전시 전경(갤러리까비넷, 2022) © 갤러리까비넷

그리고 같은 해 갤러리까비넷에서 열린 단체전 《Captured Moments》에서 작가는 직육면체 프레임 구조 안에 자연의 흐름을 담았다.
 
프레임 구조로부터 뻗어 나오는 가지에서 가느다란 선재와 면재의 연결로 만들어지는 조각들은 공기의 흐름에 흔들리고 반짝거리며, 시각적인 동시에 음악적인 효과를 연출하였다. 여기서 프레임은 포착된 자연 풍경에 대한 기억의 영역임을 의미한다.


김동해, 〈호접지몽〉, 2025, 《이어지는 사이》 전시 전경(우란문화재단, 2025) © 우란문화재단

한편, 2025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단체전 《이어지는 사이》에서 선보인 작품 〈호접지몽〉(2025)은 장자의 ‘호접몽’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되었다. 호접몽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깨어난 후 그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해 꿈과 현실, 자아의 경계가 모호해진 물아일체의 상태를 논하는 오랜 우화이다.
 
그의 작업은 나와 자연, 그리고 우주가 모두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나비’를 그리움과 상실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겉보기에는 이질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연에서 유래한 유리와 황동 같은 재료들은 나비 장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상실된 균형 감각을 회복하고 소멸과 연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한다.


김동해, 〈호접지몽〉 (세부 이미지), 2025, 《이어지는 사이》 전시 전경(우란문화재단, 2025) © 우란문화재단

그에 따르면, 이 이야기 속의 ‘나비’는 지금 눈앞에 있는 나비일 뿐 아니라, 멸종 위기에 놓인 나비 또한 포함한다. 그에게 있어서 멸종 위기의 나비는 인간의 무관심으로 인해 소외되는 작은 존재들을 상징한다. 즉, 〈호접지몽〉에서 나비는 지금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 그리고 애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요한 연루》 전시 전경(더 소소 갤러리, 2025). 사진: 이정우. © 김동해

그리고 2025년 더 소소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고요한 연루》는 이처럼 금속이라는 물질을 매개로 시간, 공간, 빛, 바람, 그리고 사물에 잠재된 무게감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작업에 끌어들여 많은 요소들의 상보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온 김동해의 작업 세계를 조망했다.
 
전시 공간 가운데서 가지를 뻗어내고 있는 그의 설치 작업은 버드나무를 떠올리게 하지만, 단지 그 형상을 모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바람과 빛 등의 외부적 세계, 즉 타자를 수용하는 열린 형태에 초점을 두며 만들어졌다.


《고요한 연루》 전시 전경(더 소소 갤러리, 2025). 사진: 이정우. © 김동해

작가는 풍경(風景)이라는 단어가 바람(風)과 볕(景)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업을 통해 비물질적인 것들이 얽힌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금속이라는 재료를 다루면서도, 단단하며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금속에 대한 통념과는 달리, 구겨지거나 녹이 슬고, 무게에 따라 휘어지는 등 여러 자연적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생기는 물질 자체의 변화를 드러낸다.


《고요한 연루》 전시 전경(더 소소 갤러리, 2025). 사진: 이정우. © 김동해

따라서 그의 작업은 작가의 손끝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계속해서 반응하며 변화해 나간다. 이러한 장면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주변과 호흡하고 서로를 침투하는 자연의 풍경과 닮아 있다.
 
각각의 재료는 보이지 않는 관계망의 물질적 은유로 기능하며, 빛과 그림자가 이루는 미세한 진동은 사라짐과 영속, 유동과 고요가 공존하는 장(場)을 구축한다. 더불어 공간을 채우고 비워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백은 무의미한 빈 공간이 아닌 미지의 영역이 침투하여 생동하는 공간이 된다.


김동해, 〈떨어지는 선들〉 (세부 이미지), 2025, 철, 스테인리스 스틸, 95x100x10cm © 디스위켄드룸

이렇듯 김동해의 작업은 작품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주변의 공기, 바람, 빛, 그리고 관객 등 다양한 물질적·비물질적 요소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이는 한 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은 자연의 흐름과 생과 사의 순환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과 인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가는 이를 자신의 조형적 행위와 연결해 창작된 기억의 조각들이 관객과 공간 사이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어떠한 흐름을 만들어내는지 탐색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주변의 많은 요소들 사이의 연결을 가시화하여 다시금 감각하게 만든다. 흔들리는 금속 이파리를 통해 공기의 흐름을, 금속 판에 반사되는 빛을 통해 대낮의 온기를, 아래로 늘어진 금속 선을 통해서는 바닥에 붙어 있는 발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김동해, 〈있음과 없음에 대하여〉, 2025, 정은(925), 7x8x5cm © 디스위켄드룸

"자연을 거닐다 보면 익숙하고도 낯선 어떤 풍경에 눈과 몸이 머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순간의 환상일지 모르는, 외부의 세계와 내가 함께 호흡하고 나의 감각과 정신이 자연과 연결됨을 느끼는 순간. 거대한 순환과 율동의 일부로 낯선 나를 조우하게 되는 시적 순간. 이런 경험의 순간에 대한 포착은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조형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김동해, 작가 노트)


김동해 작가 © 김동해

김동해는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고요한 연루》(더 소소 갤러리, 서울, 2025), 《히든 커넥션》(식물관 PH, 서울, 2022), 《일상의 정경》(KCDF 윈도우갤러리, 서울, 2021)이 있다.
 
또한 작가는 《비로소 밤》(갤러리 지우헌, 서울, 2026), 《MICRO HISTORY》(스페이스 소, 서울, 2025), 《이어지는 사이》(우란문화재단, 서울, 2025), 《공생: 시공간의 중첩》(창덕궁, 서울, 20224), 《시차》(캡션 서울, 서울, 2024), 《래빗홀》(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2023), 《Captured Moments》(갤러리까비넷, 서울, 2022) 등이 있다.
 
김동해는 2013년 청주공예비엔날레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의 수상 프로그램에 입선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