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는 SF(science
fiction, 과학 소설)의 확장하는 장르적 스펙트럼을 배경으로 동시대 미술이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양상을 소개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SF가 그려왔던 미래들이 하나둘씩 도착하는 지점에 서있다. 그 오래된 미래들이 얼마나 정확히 지금의 현실을 예측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후변화,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상상하던 세계를 실제로 살고 있다. 이 전시는 팬데믹 시대의 혼란스러운
세계와 가상 같은 현실을 탐구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SF적 상상력의 예술적 실현을 통해 새롭게 설정된
세계관 위에서 현재 속에 야기된 미래들에 접속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전시는 SF의 시간성이라는 특징을 추출하여 다음과 같이 SF를 정의한다. ‘이미 있으나 아직 오지 않은 것’, 혹은 ‘이미 현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존재하므로 판타지의 형태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이 전시는 판타지를 SF와의 대립항이나 장르적 다양성과
같은 ‘내용’이 아닌, 현실을
구성하는 ‘가능조건’으로 바라보고, SF를 독해하는 동시에 전시를 구성하는 코드로 삼는다. 동시대 미술과
마찬가지로 SF는 재현될 수 없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판타지다. 그렇다면 SF는 현실이 이미 판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유용한 창이 될 수 있다. 이
전시는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SF를 살펴보고, ‘SF를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는 열네 명의 국내외 작가를 초대하여 회화, 디지털페인팅,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 우주, 시간, 가상현실, 디스토피아, 포스트휴먼 등 이른바
SF적 주제와 배경은 전시를 구성하는 개별 작품 속에서 지금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SF의 특수성은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비판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세계는 언제나 ‘현실에 발 딛고 새롭게 상정된 세계’다. 우리에게 없는 것, 잘못되었거나
바로잡고자 하는 것, 혹은 영원히 지속하고자 하는 것 등을 선취하는 세계이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지금–이곳에서 타진하는 장소다. 그 세계를 통해 우리가 선취하는 것은 예컨대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전환, 나아가
타자에 대한 성찰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미 우리의 이해를 넘어 마법과 같은 경지에 이르는 근미래, 혹은 이미 여기 와있을지도 모르는 시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다원화되는 타자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새로운 형태의 포스트휴먼을 맞이하고, 각기 다른 형태의 존재 조건들을
모색하는 과정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낯선 존재들이 조우하여 그려내는 소리,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 속에서 부딪치는 소리를 상상하며 지속적으로 현실에 대입해봄으로써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이다. 인종, 젠더, 장애, 빈곤과 같은 인류의 문제가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는 역사의
시간 속에서 SF의 세계가 스스로를 구축함으로써 현실의 시계를 – 바라건대
종말의 반대 방향을 향해–앞당기고 있다면, 바로 그런 점에서 SF의 세계는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과 고집스럽게 연대하려는 윤리적 세계다. 그 세계가 비록 암울한 폐허일지라도 그 바탕에는 이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진화하려는 의지가
깔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