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민(b. 1988)은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조형, 페인팅, 디지털 이미지, 설치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기술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의 맥락 아래서 인간의 위치, 트랜스휴머니즘, 그리고 다양한 종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며 인류세 이후의 세계가 직면한 도전 과제를 탐구한다.


손경민, 〈Believe me / Life Attitude〉, 2017, 알루미늄, 타공 금속판, 오크 목재, MDF, 종이에 C-프린트, 필름에 C-프린트, 세라믹, 시멘트, 밀, 곡물, 고무장갑, 퍼스펙스, 유리, 패브릭, 체인, 와이어, 링, 끈, PVC, 바퀴, 에어캡, 합성 크리스탈, 복숭아 모양 핸드크림 용기, 클립, 모래시계, 니트 포켓, 가변크기 ©손경민

손경민의 프로젝트는 첨단 기술이 우리의 사회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기술 발전, 자본주의, 수요, 지질학적 변화, 그리고 세계를 형성하는 복잡한 구성에 이미 영향을 받고 있는 예술이 자연과 인간의 삶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조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세계를 만드는 다양한 상호 연결 과정을 이해하고,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좌) 손경민, 〈ParaOntology〉, 2022, 철, 종이에 프린트, 에어드라이 클레이, 에어도우, 합판, 제스모나이트, 갈대, 132×160×320 cm / (우) 손경민, 〈Strata: The Keeper〉, 2022, 철망, 석고밴드, 제스모나이트, 고무줄, 85×245×110 cm ©손경민

손경민은 이렇듯 인류와 기술 발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너머 공간적, 공상적 관계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해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작가는 미시적이고 거시적이며,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세계의 다층적인 관계에 심층적으로 접근하며,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차성을 다양한 실제적, 추상적, 소설적인 관계로 풀어낸다.


손경민, 〈IF YOU ARE LUCKY YOU WILL SEE IT〉, 2018, 스티로폼, 프린트 패브릭, 비닐 프린트, 수도관, 자동차 도장용 스프레이 페인트, 벨벳, 공기 건조 점토, 구리 링, 체인, 로프, 아일렛, 비즈, 핀, 어망, 250x225x120 cm ©손경민

예를 들어, 2018년도 작업인 〈IF YOU ARE LUCKY YOU WILL SEE IT〉은 포스트휴먼 담론 속에서 자연과 기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동시성(simultaneity)과 공생(symbiosis)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손경민은 작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아테네에 방문했다. 고대 그리스가 번영했던 시간과 마주하는 경험, 그리고 도시 전반에 남아 있는 규모와 시간의 깊이가 축적된 흔적들은 작가로 하여금 오늘날 동시대적 존재 안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횡단을 다시금 사유하게 만들었다.


손경민, 〈IF YOU ARE LUCKY YOU WILL SEE IT〉(세부 이미지), 2018, 스티로폼, 프린트 패브릭, 비닐 프린트, 수도관, 자동차 도장용 스프레이 페인트, 벨벳, 공기 건조 점토, 구리 링, 체인, 로프, 아일렛, 비즈, 핀, 어망, 250x225x120 cm ©손경민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IF YOU ARE LUCKY YOU WILL SEE IT〉은 고대의 좌대로부터 ‘성장해 나오는’ 제스처를 담고 있다. 여기서 좌대는 땅의 끊임없는 축적과 침식이 재구성되어 온 지난한 과정을 함의하며, 동시에 그리스 신화에서 지구 중심적 우주관을 나타내는 ‘아월계(sublunary sphere)’를 상징한다.
 
기억, 역사, 신화 등으로 내재되고 또 각인된 시간의 층위들은 지상의 풍경 속에서 순환하고 진화하며, 가시적·비가시적 에너지를 통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이 작업은 이와 같은 생태와 문화의 순환 관계, 사회적 구성과 자연적 발생이 주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손경민, 〈Dune〉, 2019, 알루미늄 판에 C-프린트, PVC 튜브, 케이블 타이, 금속 바, 인조 네일 팁, 볼 체인, 200x140x100 cm ©손경민

한편, 2019년도 프로젝트인 ‘How to Sense the Invisible’ 연작을 통해 손경민은 서로 다른 생물 및 비생물 종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타자와 함께 혹은 타자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존재를 어떻게 확장하는지 탐구하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다양한 종들이 비유적으로 진화하고, 서로의 몸을 교환하며, 제3의 존재로 변이한 여러 종들을 군집화하였다. 가령, 이 연작의 일부인 〈Dune〉(2019)은 미시적 스케일부터 망원적 스케일까지, 다양한 생물·비생물 물질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물질은 평면화된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유동적인 상태를 지속한다.


손경민, 〈Metamorphosis〉, 2019, 합성 섬유, 스티로폼, 뉴 클레이, PVC, 22x230x110 cm ©손경민

이 작업은 고정된 상태와 유동적인 상태를 가로지르며, 인간의 육안으로는 쉽게 인식되지 않는 방대한 지구의 시간 속 변이와 진보의 양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라는 객체와 상호작용하며 확장·변이해 나가는 다양한 혼종적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Metamorphosis〉(2019)에서는 패턴이 있는 합성 섬유, 조각, 스티커, 금속 체인, PVC 튜브 등 다양한 물성의 재료들을 겹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써 개별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상호 연결되어 공생을 지속하는 세계 내 존재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손경민, 〈Vein ver.0.1: Orbital Transition〉, 2021, 스케폴딩, 제스모나이트, 알루미늄 와이어, 체인, 후프 앵커, 에어 드라이 클레이, 굴 껍질, 202x129x64 cm ©손경민

종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신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2021년도 작업인 〈Vein ver.0.1: Orbital Transition〉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업은 신체적인 형상을 통해 추상적인 움직임과 복합적인 에너지의 순환을 만들어 냄으로써, 지구의 안과 밖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순환 속에서 저항과 의존을 오가며 생동하는 존재의 긴장 상태를 드러낸다.


손경민, 〈Vein ver.0.1: Orbital Transition〉(세부 이미지), 2021, 스케폴딩, 제스모나이트, 알루미늄 와이어, 체인, 후프 앵커, 에어 드라이 클레이, 굴 껍질, 202x129x64 cm ©손경민

여기서 조각의 얽힘은 중력이라는 자연적 힘과 재료 자체의 물성에 의존한 채, 저항과 의존 사이를 오가는 긴장의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연적 긴장 관계 안에서 형태발생(morphogenesis)이 이루어지는 점진적인 신체를 드러낸다.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 전시 전경(실린더1, 2023) ©실린더

그리고 2023년 실린더1에서 열린 손경민의 국내 첫 개인전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은 그간 탐구해온 주제들을 정리하여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도나 해러웨이와 브뤼노 라투르의 영향을 받아 다종 간의 교차 관계성, 또한 지구 표면과 지구 밖, 해저 공간, 제임스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Gaia) 이론에 대한 이해 등 인간과 그 밖의 영역,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교차와 존재성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한다.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 전시 전경(실린더1, 2023) ©실린더

더불어, 인류의 발전과 영향력이 지구 표면에 미치는 영향, 지구 밖과 지구 표면 아래 깊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서로의 영역에 맞닿아 침범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과 그것을 인지하고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 중 〈Survivor (on the horizon)〉(2023), 〈Dune〉(2023), 〈The Sun (a system of friction)〉(2023)은 알루미늄 판에 인터넷 기사에 실린 우주 행성, 미생물, 해저 생물, 곰팡이 균의 이미지 일부를 콜라주한 결과물이다.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 전시 전경(실린더1, 2023) ©실린더

또한, 손경민은 알루미늄 프로필 프레임에 전선 케이블을 얽히게 하여, 서로 다른 위치와 거리, 스케일의 존재가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영역에서 언제나 연결성을 지닌 채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인간이 지구의 한 부분으로서, 끊임없이 이루어졌던 지구 표면적 침투, 변형,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 그 너머의 영역에 대해 인간이 지금껏 통제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지구 표면적인 스케일과 그 너머에서 끊임없이 현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 전시 전경(실린더1, 2023) ©실린더

한편, 철 구조물과 인조 가죽 더미로 이루어진 작품 〈Dweller〉(2023)와 〈How to Catch the Big Fish〉(2023)는 지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척추동물 같은 형체와 해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거대한 낚싯바늘, 그리고 이로써 낚아 올린 살덩이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손경민은 이러한 켜켜이 쌓인 몸체들을 통해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끊임없이 지구를 구성하고 언제나 서로를 연결하며 진행 중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나긴 행성의 역사를 지탱한 순환의 질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손경민, 〈Dweller〉, 2023, 철, 인조가죽, 체인, 로프, 끈, 펜던트, 206×140×200 cm, 《토성의 고리》 전시 전경(부천아트벙커B39, 2024)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부천아트벙커B39.

이러한 손경민의 작업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 너머의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의 존재를 바라보게끔 돕는다. 더불어,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가능한 영역 이상까지 침범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직면한 지구에서의 삶의 위기와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조화, 다가올 미래를 위한 삶의 방향성,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삶의 방향성, 인지, 연결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발전을 위해 해체되던 존재를 어떻게 인지하고, 남은 시간을 조화롭게 이해하며 살아갈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손경민,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손경민 작가. 사진: Martin Mayorga ©DATEAGLE ART 2019

손경민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 왕립예술대학교에서 조각 석사,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시각 문화로 연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Swelled Sun : How To Sense The Invisible》(실린더1,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토성의 고리》(부천아트벙커B39, 부천, 2024), 《Begin Again》(주영한국문화원, 런던; 주독한국문화원, 베를린, 2022), 《Bow Open, About-face: regroup, reorganise, reimagine》(Nunnery Gallery, 런던, 2021), 《The Spring Exhibition – Inhale and Exhale》(Kunsthal Charlottenborg, 코펜하겐, 2019), 《Parlour Geometrique》(Chiswick House and Garden, 런던,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참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는 Snehta Residency(아테네, 2018)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