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키(b. 1987)는 섬세한 선과 감성적인 여백을 그리며 몸과 감정, 그리고 이미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다. 피부에 이미지를 새기는 타투, 디지털 드로잉, 입체 및 설치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그의 작업은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확장되어 왔다.  


김미키, 〈Orchid Flower Mantis Human〉, 2023 ©김미키

장르 간의 구분을 넘나드는 김미키의 작업 세계는 몽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사람의 신체를 비틀어 나무로 만들거나, 이와 반대로 사물이나 생물을 의인화하거나, 서로 다른 종을 하나의 몸으로 뒤섞어 새로운 하이브리드 개체로 만드는 등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김미키, 〈Wild Orchid Flowers〉, 2024 ©김미키

예를 들어, 김미키는 난초꽃, 동물 혹은 사람의 뼈, 네오트라이벌 혹은 스틸 요소를 조합해 대칭적인 드로잉을 만들어 왔는데, 마치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와 함께, 작가는 난초와 사마귀의 형상을 혼합해 퀴어 인물을 그리는 연작 ‘Orchid Flower Mantis Human’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오고 있다.


김미키, 〈Drosera Rotundifolia〉, 2022 ©김미키

또한, 작가는 한국의 전통 민화, 일본의 목판화, 중국의 자기 예술 등에서 착안한 동양적인 이미지에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더하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신비로운 장면들을 그린다.
 
이렇듯 김미키의 작업 안에서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요소들은 섬세한 선과 강렬한 색감, 그리고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에 의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괴이하면서도 사랑스럽고, 해학적이면서도 위트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SKIN+INKS》 전시 전경(워터마크 갤러리, 2024) ©김미키

2024년 워터마크 갤러리에서 열린 김미키의 첫 번째 개인전 《SKIN+INKS》는 타투이스트로서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그리는’ 행위와 ‘새기는’ 행위, 그리고 시간에 대해 고찰한 결과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에게 캔버스란 사람의 피부”였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전시는 어떠한 규격에 갇혀 있는 하얀 천의 캔버스가 아닌 생명을 머금은 표면에 그림을 새기는 행위의 예술적 가능성과 의미를 탐색한다.


《SKIN+INKS》 전시 전경(워터마크 갤러리, 2024) ©김미키

김미키의 그림의 바탕이 되는 피부는 신체의 가장 마지막 경계로, 그 곳에는 각자만의 세월과 경험이 주름과 흉터와 같은 흔적으로 남겨지는 장소이다.
 
김미키는 피부에 새기는 자신의 그림, 즉 타투에 대해 “누군가의 피부에 입혀져, 그들의 삶에 스며들게 되고, 그들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환경을 만나며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SKIN+INKS》 전시 전경(워터마크 갤러리, 2024) ©김미키

하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은 전통적인 회화로서 그 숭고한 가치를 지니지만, 누군가의 피부에 물든 타투는 그들과 함께 숨 쉬며 자연스럽게 그 삶에 녹아든다. 따라서 살아 있는 그림으로서의 타투는 김미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인생을 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렇듯 전통적인 매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개개인의 삶 속에 녹아드는 김미키의 작업은 예술과 일상, 그리고 비예술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그의 그림은 피부라는 신체의 경계 위로 그려지는 것뿐 아니라 그 피부를 덮는 옷을 캔버스 삼아 그려지기도 한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협업으로 제작된 김미키의 일러스트레이션 일부 ©김미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구찌, 마린 세르,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령, 지난해 김미키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협업해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대형 일러스트 드로잉 작업을 선보였다.
 
매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시된 김미키의 작품 속에는 동양 민간신앙 및 도교에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이 그려진 배경에 아디다스의 대표 아이템을 착용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감성과 판타지 안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의 요소들과 현대적인 요소들이 뒤섞이며, 신비로우면서도 친숙한 인상을 자아낸다.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 전시 전경(CORD, 2025) ©CORD

그리고 최근 작가는 일본의 전통 마블링 아트인 ‘스미나가시(墨流し)’를 접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퍼지는 잉크의 흔적을 담아내는 ‘스미나가시’ 연작을 전개하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흘러가는 잉크 위에 종이나 천을 얹어, 잠시 머문 흔적을 고이 받아낸다. 그 무늬는 예상할 수 없으며, 또 다시 만들어낼 수도 없다.
 
김미키는 그러한 불확실성 속의 아름다움, 정적인 표면에 깃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 그로 하여금 내면을 가라앉히고 집중하게 하는 명상의 시간 속으로 유도한다고 말한다.


김미키, 〈Ceramic Ornament〉, 2025, sea rock, ceramic, 각 17.5×7.5×9.5cm, 14×7.8×4cm ©김미키

그리고 이후 새롭게 접한 도예라는 장르는 이러한 ‘스미나가시’를 통한 수행과 명상의 경험과 연결되어, 그의 작업 세계를 한층 확장시키는 또 다른 계기를 마련했다.
 
도예 또한 ‘스미나가시’ 작업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통제와 비통제의 경계에 있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손으로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입히고, 가마에 넣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온도에 맡긴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는 일 뿐이다.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 전시 전경(CORD, 2025) ©CORD

이 두 작업을 전개하며, 김미키는 ‘우연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주제로 개인전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CORD, 2025)를 열었다.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작가는 자연물처럼 보이는 도자기를 제작해 선보였다. 그의 도자기들은 마치 풍화가 이루어진 자연 속의 암석 또는 바닷가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구멍 난 돌들, 조개껍데기 등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이와 함께 설치된 ‘스미나가시’ 연작들은 도자기의 표면과 형태에서 드러나는 우연함의 흔적들과 공명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고요한 명상의 시간 속으로 이끈다.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 전시 전경(CORD, 2025) ©CORD

또한, 김미키는 전시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에서 공간 중앙에 일본 가레산스이(かれさんすい) 정원을 차용해 도자기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레산스이는 만물이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불교의 선종 교리를 재해석해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으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바위와 자갈, 모래를 주재료로 구성된다.
 
김미키는 그러한 공간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백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고요의 순간 속에서 탄생한 도자기들은 작가만의 정원 속에서 또 다른 여백을 만들며, 아무 말 없는 쉼의 풍경을 재현한다.


《괴塊》 전시 전경(Damn Good Seoul, 2025) ©김미키

한편, 같은 해 열린 또 다른 개인전 《괴(塊)》에서 선보인 그림은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절 아이돌의 이미지를 빌려온 이 그림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여러 유리잔 속에서 뒤틀리고 조각난 모습으로 비추어져 있다.
 
이는 화려했던 당시의 소비문화와, 본질보다 외형과 상징을 탐하는 이미지 소비의 풍경을 은유하며 풍자한다. 칵테일 글라스와 위스키 잔은 버블 시대의 화려한 밤을 떠올리게 하며, 굴절된 얼굴과 몸은 인위적이고 과잉된 화려함 속에 깃든 불안과 허무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김미키, 〈Glass Woman〉(세부), 2025 ©김미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의 소비가 과거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이어진다고 보았다. 우리는 여전히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스마트폰 화면 속 무한히 이어지는 피드, 광고와 표정들, ‘좋아요’라는 숫자로 환원된 시선들까지, 그 속에서 빛나는 듯 보이는 찰나와, 그 뒤에 아른거리는 허망함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따라서 김미키는 이 작업이 “과거의 한 장면을 그리면서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풍경을 비추는 또 하나의 유리잔이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하이츠스토어와 협업으로 제작된 김미키의 일러스트레이션 ©김미키

이렇듯 김미키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흐리며 자유로이 전개되어 왔다. 또한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작가의 몽상적인 이미지들은 화려한 색채와 어우러지며, 초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시에 현재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작업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세상과 타인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창작의 시작이자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미키,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김미키 작가 ©김미키

김미키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투이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개인전으로는 《몸울림 : 비움에서 번지는 것들》(CORD, 서울, 2025), 《MIKI KIM EXHIBITION》(Waiting Room, 타이베이, 2024), 《SKIN+INKS》(워터마크 갤러리, 서울, 2024) 등이 있으며, 현재 도쿄 POPOTAME Books & Art에서 개인전 《Escape Emotion - My Journey》가 진행 중이다.
 
또한 작가는 《Tokio Art Book Fair 2025》(Shiba Park Hotel, 도쿄, 2025), 《더프리뷰 성수 2025》(S Factory, 서울, 2025), 《가운데의 시간》(을지아트센터, 서울, 2021) 등에 참여했으며, 구찌, 마린 세르(Marine serre), 수언더커버(sueUNDERCOVER), 아디다스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해외 매체,  CL, MEOVV 등 K-팝 뮤지션과 아트 워크를 진행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