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솜(b. 1989)은 불가항력적으로 변형이 일어나는 물질로서의 ‘몸’에 대한 관심과 회화의 방법론을 긴밀하게 엮어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의 작업은 물질의 개념으로 바라 본 몸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 안에 내재된 상실의 개념을 고찰하는 과정을 거친다.


박다솜, 〈잠수함 안에서〉, 2019, 종이에 유채, 150x120cm ©박다솜

초기의 작업에서 박다솜은 마치 꿈속의 한 장면과 같은 화면을 만들어 냈다. 화면 안에서 사람의 몸과 사물의 몸, 혹은 곤충의 몸은 맞바꾸기도 하고, 여러 번의 치환을 거친 몸들이 본래의 구체성을 잃고 하나의 기울기나 곡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박다솜, 〈식당〉, 2020, 종이에 유채, 188x151cm ©박다솜

박다솜은 이러한 꿈의 방법론을 통해 삶에 대한 보편적인 두려움에 맞서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의 죽음, 특히 그가 사랑하는 어른들의 예외 없는 노쇠 과정을 애잔하고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박다솜은 “끊임없이 성실하게 닥쳐오는 이 변형의 순간을 모두 상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상실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꿈의 방법론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꿈이라는 시공간은 작가에게 있어서 어떠한 변형과 왜곡이 일어나더라도 전형적인 상실의 슬픔이 따르지 않는 곳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자유로운 꿈의 공간에서 그가 믿었던 것들이 즐겁게 무너지는 상상을 하며, 불가항력적인 현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했다.


박다솜, 〈Between Trees〉, 2018,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45.5x97cm ©박다솜

박다솜은 꿈이 만드는 모든 변형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우리였음을, 그것이 그것이었음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작가는 망각을 전제로 하는 꿈의 방법론을 회화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2017년의 작업에서는 망각된 도시의 풍경을, 2018년부터는 시공간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망각할 정도로 무언가에 도취된 순간의 얼굴들을 그렸다.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된 인물들의 몸은 그들의 위치와 질감을 망각한 상태처럼 보이곤 하였다.   
 
나아가 2019년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몸들이 변형되는 장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몸들이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그리고 다정하게 파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보편적으로 누리고 있는 ‘인간 답게 사는’ 조건들을 하나씩 박탈해 보고자 했다.

박다솜, 〈좁은 곳〉, 2020, 종이에 유채, 138x151cm ©박다솜

예를 들어, 작가는 땅 위에 있는 집이 땅 아래로 옮기거나, 폐쇄된 공간과 폐쇄된 집단 안의 몸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그 몸이 동물의 몸, 곤충의 몸, 혹은 사물의 몸과 치환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수차례의 해체를 감당한 몸들이 점점 어딘가에 기대 있거나 의지하거나 놓여 있는 형상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워진 몸들은 그의 화면 안에서 그저 소멸에 가까워지는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 꿈속에서는 어떠한 변형도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듯이, 그가 그리는 몸들은 회화라는 세계 안에서 끝없이 해체되고 변형되어 확장해 나가는 소멸과 생성의 가능성을 동시에 간직한다.


《검은개의 집》 전시 전경(플레이스막2, 2021) ©박다솜

2021년 플레이스막2에서 열린 박다솜의 첫 번째 개인전 《검은개의 집》은 이러한 꿈의 방법론을 통해 노쇠에 따른 몸의 변형, 특히 노인의 휘어진 몸의 ‘기울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화면 속에서 모든 사물과 사람들은 기울어진 형상을 가진다. 어떠한 대상이든 공평하게 기울어진 상태를 취하고 있는 이 기묘한 광경은 마치 꿈속의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모든 것이 기울어진 형태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을 만듦으로써 휘어진 고령자의 몸에 내포된 부정적인 관점이 소거된다. 모든 대상을 기울기로 치환시키는 행위는 세상을 비선형과 혼돈의 상태로 돌려놓으며, 위계를 없애는 주술이 된다.


《몸의 기술》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2) ©박다솜

그리고 2022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몸의 기술》에서 박다솜은 몸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회화의 방법론과 더욱 긴밀하게 엮어내고자 했다.
 
울퉁불퉁하게 변형된 프레임, 비정형화된 화면의 틀 안에 보이는 녹아내리는 듯한 기울기와 곡선의 형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덩어리, 몸의 이미지들은 미묘한 색채와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관계를 형성한다.
 
이처럼 꿈속과 같은 색다른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무한히 자유로워진 몸을 발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했던 몸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박다솜, 〈스모킹〉, 2022, 종이에 유채, 111x151cm ©박다솜

한편, 2023년 갤러리2에서 열린 개인전 《Drive》에서 박다솜은 중력을 이용해 상하운동을 반복하도록 설계된 롤러코스터의 트랙과 시간의 흐름으로 노쇠해 주름진 이의 몸을 겹쳐 보았다.
 
그간 박다솜이 탐구해온 몸에 관한 고민은 두 점의 회화 〈스모킹〉(2022)과 〈나쁜 사진〉(2022)에서 롤러코스터의 곡선에 대입된다. 평소 아픈 몸을 바라보며 슬픔이나 우울한 감정을 떠올렸던 그는 그 감정이 발현되는 근원적인 이유를 모색하며, 시간과 중력이라는 분명한 원인에 가닿게 되었다.


박다솜, 〈나쁜 사진〉, 2022, 종이에 유채, 150x186cm ©박다솜

감정의 실체와 상관없는 일들은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고, 몸은 주름을 표현하는 중립적인 물질로 변모한다. 이처럼 점점 건조한 눈으로 노쇠한 몸을 바라보게 된 박다솜에게 롤러코스터에서 본 곡선은 주름진 몸에 관한 감각을 굴곡진 형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 롤러코스터의 곡선은 몸을 보며 느끼는 감정보다도 몸의 형태를 우선 그려보며 주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Drive》 전시 전경(갤러리2, 2023) ©박다솜

박다솜의 그림은 종이를 찢는 행동으로 시작해 크랙을 그리는 일로 마무리된다. 이는 그리기의 규칙이라는 선험적인 영역을 잠시 밀어두고, 사람의 손길 아래에서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도출되는 결과에 다가가기 위한 시도이다.
 
그림이 그려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이 가는 대로 찢은 종이, 머리로 떠올리거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그린 형태, 크랙으로 균열을 낸 표면이 보인다. 종이가 가는 대로, 형태가 그려지는 대로, 눈이 표면을 오가는 대로, 화가 자신이 아닌 그림을 이루는 것들의 의지를 따라 채워진 시선들이 그림에 남아있다.


박다솜, 〈잘린 그림〉, 2024, 린넨에 유채, 141x215cm ©박다솜

지난 몇 년 간 종이의 물성에 집중해온 박다솜은 종이의 한계를 파악하게 되면서 최근 천의 유연한 물성을 회화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젯소 칠이 된 ‘하얀색’의 캔버스가 아닌 ‘천’ 자체의 물성에 따라 자라나는 그림을 탐구하고자 했다.


박다솜, 〈낭만적인 동물〉, 2024, 린넨에 유채, 108x173cm ©박다솜

예를 들어, 2024년에 제작된 회화 〈낭만적인 동물〉은 천이 벽에 붙어있는 상태에서 그 물성과 이미지가 하나가 된 상태로 나타난다. 작가는 천을 벽에 고정하기 위해 몇 지점에 붙인 테이프를 중심으로 생긴 주름, 그 주름으로 인해 생긴 명암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림의 요소로 가져왔다. 주름 진 천의 형태를 따라 그림을 그린 결과, 천과 이미지가 아주 가까워지며 그림은 점점 하나의 생명체의 모습으로 자라났다.
 
박다솜은 자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내부의 모습을 숨김없이 모두 드러내고, 그 자체로 이미지가 된 이 그림을 ‘낭만적’이라 생각했기에 제목을 〈낭만적인 동물〉이라 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천의 물성을 바탕으로 한 회화적 탐구를 바탕으로, 작가는 ‘그림의 몸’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 나갔다.


《매달린 그림》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5) ©박다솜

이러한 회화의 신체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열린 개인전 《매달린 그림》(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5)은 감각의 연대로서 캔버스의 표면과 몸의 접촉지점으로서 피부를 포개고 벗긴다.
 
단단하게 고정된 프레임 대신, 강선으로 잡아당겨 긴장된 캔버스의 모서리, 그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민감한 표면 위에 신체와 회화의 경계는 느슨해진다. 그의 회화는 중력과 마찰, 온도 등 환경의 간섭에 반응한다. 천의 말림, 테이프의 이탈, 무게로 처지는 움직임까지의 모든 사건들은 회화의 일부이자, 신체의 일부로 연결된다.


《매달린 그림》 전시 전경(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2025) ©박다솜

불가항력적으로 변형되어 가는 인간의 몸처럼, 그의 회화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앞에 놓인 취약한 신체가 된다. 작가에게 캔버스는 옷이나 이불, 혹은 장판과 같은, 마치 장(sheet)을 접고 구기고 자르듯이 질료의 처지에 순응하는 새로운 생명이다.


박다솜, 〈악몽을 꾸고 있는 그림〉, 2025, 린넨에 아크릴과 유채, 119.2x169.5cm ©박다솜

물질이 반응하는 그대로 생동의 과정을 방법론으로 취하는 박다솜의 회화는 그저 이미지를 담는 매체가 아닌, 감각을 전달하는 피부와 같은 접촉의 장치가 된다. 나아가 인간의 몸과 회화의 몸을 동일시하면서, 물질을 통해 혹은 물질과 함께 애틋한 연대를 맺는다.
 
이러한 박다솜의 회화는 더 이상 벽에 고정된 정적인 존재가 아닌 유연한 몸으로써 경험되고 생동하는 물질로 다가온다.

 "나는 어떤 변형과 왜곡도 죗값을 치르지 않는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내가 믿었던 것들이 즐겁게 무너지는 상상을 해본다."   (박다솜, 작가 노트) 


박다솜 작가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박다솜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매달린 그림》(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서울, 2025), 《네 장》(봄화랑, 서울, 2024), 《로맨틱 맥시마》(플레이스막2, 서울, 2024), 《납작한 불》(갤러리SP, 서울, 2023), 《드라이브》(갤러리2,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Shifting Scenes》(APOproject, 서울, 2025), 《지금의 화면》(금호미술관, 서울, 2024), 《The Original Face》(라흰갤러리, 서울, 2024), 《세 개의 구멍》(에브리아트, 서울, 2023), 《Random Pages》(갤러리SP, 서울, 2022), 《하나의 점, 모든 장소》(금호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다솜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금호창작스튜디오 15기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2022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