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인(b. 1987)은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이에 따라오는 감정을 자연물이라 여길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내어 그림을 그린다. 그의 화면은 내면에 잠자고 있던 불편했던 감정들을 거칠게 꺼내어 바라보는 공간이 되며, 말로 다 정리할 수 없었던 감정들은 그 안에서 자연물에 투영되어 연극과도 같은 장면으로 표현된다.  


최수인, 〈구름아래 우주선〉, 2015, 캔버스에 유채, 145x227cm ©최수인

가령, 2015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그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에서 최수인은 감정의 왜곡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심리를 회화로 풀어냈다.
 
언뜻 풍경화처럼 보이는 그의 장면들은 자연을 무대로 폭발과 같은 기이한 현상과 소용돌이치는 인물들의 감정적 동요를 형상화한다. 전시에서 선보인 그림들은 각각 불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연소와 폭발, 우주선 형상을 통해 탈출과 회피, 방어기제를 동원하는 대상들의 몸짓 등이 서로 엉킨 무대를 보여준다.


최수인, 〈만들어진 장소1〉, 2015, 캔버스에 유채, 112x194cm ©최수인

이러한 화면 속 혼란스러운 장면들은 감정의 왜곡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작가 본인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시의 제목처럼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반면, 이와 대조적으로 평온한 상태의 심리적 풍경을 담고 있는 작품 〈만들어진 장소〉는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인 동시에 인위적이고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최수인, 〈생각하는 사람〉, 2016, 캔버스에 유채, 45x53cm ©최수인

〈말리는 사람을 계속해서 의심할 것〉과 〈무릎을 꿇어라〉는 이 모든 그림 속 상황들을 상상하고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주체에 대한 그림으로서, 우화 속 동물들처럼 ‘털복숭이’ 형상으로 표현된다. 무릎을 꿇는 과장된 행위를 통해 감정의 왜곡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솔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고발한다.

최수인, 〈불구경〉, 2019, 캔버스에 유채, 112x162.2cm ©최수인

이렇듯 최수인은 작업 초기부터 누구나 관계 안에서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과 그러한 순간들을 자연물에 빗대어 보여준다. 진실하지 못한 불편함과 진솔함이 공존하던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그림으로 보여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화면 속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의 긴장을 느끼게 하고, 그가 의인화한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이후 이어진 전시에서 최수인은 심리적 마찰을 화두로 한 작업들을 소개했다. 2019년 갤러리조선에서 열린 개인전 《날 보고 춤춰줘》에서는 풍경과 낯선 형태의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서 발현되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다뤘다.


《날 보고 춤춰줘》 전시 전경(갤러리조선, 2019) ©갤러리조선

화면 속에 나타나는 털복숭이 생명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방어적인 심리 태도를 표상하며, 과장되고 현실성 없이 뻗어 있는 화산과 구름은 작가 안의 불안정한 감정상태와 맞닿아 있다. 주체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자연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그저 풍경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장소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대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감정 및 태도로서 존재는 작가에게 있어서 “소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주체를 제외한 주변 이미지들은 모두 스스로 존재하고 유동적이며 충동적인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변형 중인 상태 속에 놓인다.


《날 보고 춤춰줘》 전시 전경(갤러리조선, 2019) ©아트바바

따라서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펼쳐지는 최수인의 그림은 풍경이 아니라 ‘장면’이 된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누군가가(혹은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인과관계 없이 재배치 중이라는 점과 그 안의 옳고 그름의 잣대 역시 배치 중이라는 점, 따라서 순간적인 이미지로 남을 ‘장면’들을 가짜 이미지로써 풀어내고자 했다.
 
“모든 순간에 가짜가 존재한다”고 말해온 최수인은 작업을 통해 가짜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와 그 안의 태도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 없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최수인, 〈춤추는 에로스〉, 2019, 캔버스에 유채, 97x194cm ©갤러리조선

그리고 전시 《날 보고 춤춰줘》를 통해 작가는 ‘춤’이라는 것이 가장 꾸밈없고 순수한 제스처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긴장과 꾸밈으로 가득한 모습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춤추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수인의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회피와 방어 사이로 드러나는 진실함의 장면들과 마주하게 한다.


최수인, 〈가짜 파도〉, 2020, 캔버스에 유채, 50x73cm ©아트사이드 갤러리

이듬해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Fake Mood》에서 최수인은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많은 감정을 연극처럼 캔버스에 풀어놓았다. 전시에 대해 작가는 “나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와 주변 상황에서 받는 압력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이 내 감정을 숨겨주는 듯하지만 드러내려고 애쓰는 가혹한 상황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주체의 위치와 힘을 줄이면서 “더욱더 주인공을 농락하는 가짜 감정의 혼란을 가시화”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색과 조형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최수인, 〈An angry mountain〉, 2020, 캔버스에 유채, 130x130cm ©아트사이드 갤러리

작가는 “어느 순간 내가 그린 지옥이나 어떤 혼란이 어두운 색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주 위선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 결과로 그려진 〈노란 기분〉은 흡사 파티의 한 장면처럼 밝아 보이지만 동시에 “화가 나 있다”거나 〈An Angry Mountain〉은 새 봄 산세처럼 물오른 초목의 우거짐에도 갈고리같은 뿔이 나서 화가 나 있는 산으로 나타난다.


최수인, 〈주변에 세 사람〉, 2020, 캔버스에 유채, 85x145.5cm ©아트사이드 갤러리

즉, 그의 그림 속에서 혼란으로 간주되고, 불쾌한 상태는 부정적이란 이유로 어둡게 처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람자가 마주하는 장면은 때로 모호하거나 혼란스러워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쉽게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작품 역시도 상황들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제목을 비롯해 작가가 심어 놓은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조심스레 내놓는 속마음의 한 페이지를 보게 된다. 


《너의 빌런》 전시 전경(아트사이드 갤러리, 2021) ©아트사이드 갤러리

이렇듯 전시 《Fake Mood》에서부터 최수인은 격정적인 감정 속에 놓인 화자보다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과 상황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열린 개인전 《너의 빌런》(아트사이드 갤러리, 2021)에서 작가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 부조화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대상을 등장시켰다.
 
이는 그리스 연극에서 이면의 진실을 강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차용했던 가면을 상기시킨다. 작가가 창조한 허구적 세계에 형상을 입히고 내러티브를 전하는 이 가면적 대상은, 역설적으로 화자가 선택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에 주목하게 만든다.


최수인, 〈Two natures〉, 2021, 캔버스에 유채, 91x91cm ©아트사이드 갤러리

이러한 방식의 ‘드러냄과 감추기’의 길항구조를 통해 연출된 무대는 작중 화자를 소거하고 메타적 관점을 가중시킨다. 서사가 배제되고 독립적 사건으로 재탄생한 “장면화”된 공간은 사건이 발생했던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며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최수인은 이 과정에서 진실에 근접한 허구를 활용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말하는 절묘한 변증법적 수사를 연출한다. 이 화법을 완성하는 ‘가면적 형상’이 만들어낸 장면화된 화면은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며 보는 이에게 흥미로운 구조화의 과정을 남긴다.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 전시 전경(아트사이드 갤러리, 2023) ©아트사이드 갤러리

한편, 2023년에 개최한 개인전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에서 최수인은 전보다 더욱 긴밀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전시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작가는 작품 속 등장하는 대상들을 애정이 있는 모습으로 연출하며 사랑하는 관계 속 거짓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의 괴리감을 드러낸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품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 속 등장하는 파도들은 서로를 껴안는 애정행위를 하고 있다. 세상의 중심 속에서 사랑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 그들의 관계와 심리적 거리를 유추하며 진실과 과장된 제스처를 마주하게 되고,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는 이와 때때로 거짓으로 가려진 움직임을 찾게 된다.


최수인,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 2023, 캔버스에 유채, 227.3x145.5cm ©아트사이드 갤러리

이 속에서 관능적인 분위기와 대비되는 특유의 밝은 색과 경쾌한 붓터치는 양가적인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전시에 대해 그는 “빈번한 관계에 대한 기록이다. 가장 보이기 싫은 나의 모습(상황)에 관한 것이다. 동시에 가장 인정받고 싶은 경험과 기억에 대한 것”이라 설명하며, 그동안 보여준 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더 깊어 졌음을 드러냈다.


《들킨자》 전시 전경(갤러리2, 2025) ©갤러리2

이처럼 최수인은 내면에 잠자고 있던 불편했던 감정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 하나의 장면으로 표현한다.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안의 상황에 공감하고, 위로 받고, 때론 직면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저는 작가의 신체적 기록으로, 관람자는 감상이라는 행위로 다 드러나 버리는 각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최수인,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최수인 작가 ©아트인컬처

최수인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들킨자》(갤러리2, 서울, 2025),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3), 《너의 빌런》(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1), 《Fake Mood》(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0), 《날 보고 춤춰줘》(갤러리조선,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소리 없이 흔들리면서 가늘게 전율하는 너는,》(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5), 《지금의 화면》(금호미술관, 서울, 2024), 《하이브리드-그라운드》(자하미술관, 서울, 2023),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금호미술관, 서울, 2019), 《50x50》(아트선재센터, 서울, 2016)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최수인의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금호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등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