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버나큐러, 그리고 팝아트

1990년대 중반부터 인테리어, 설치, 아트 디렉터로서 활약하여 온 최정화가 미술감독을 맡은 영화 〈모텔 선인장〉(1997)의 인테리어는 작가가 선호하는 물건들로 채워 있다. 붉은 정육점 불빛으로부터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빨강색의 꽃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주 배경인 모텔룸 407호은 저급스러운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폭포수 그림을 애지중지하는 남자친구(정우성분)에게 여주인공(진희경분)은 이발소에서나 발견되는 유형의 그림을 왜 그리 소중히 다루냐고 핀잔을 준다. 사막과 연관된 이름을 지닌 모텔의 내부에 위치한 폭포수 그림은 흥미롭게도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절제된 톤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넓게 펼쳐진 폭포의 모습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지형이다. 오히려 수평적으로 널리 펼쳐진 폭포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시킨다.
 
최정화의 초기 미술감독 작업인 〈모텔 선인장〉의 세팅은 작가가 1987년 뮤지움 그룹의 멤버로 미술계에 등장한 이래로 취하여온 10년간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407호에는 싸구려 취향의 물건들 뿐 아니라 ‘이발소 그림’과 같이 그 소재나 기법의 문화적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텔 선인장이라는 생뚱맞은 외래어나 붉은 색의 싸구려 모텔 간판은 정확히 말해서 세련된 대중소비문화나 전통 문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최정화, 〈신사숙녀 여러분〉, 2000, 혼합매체, 가변설치 © 최정화

『팝아트와 버나큐러 문화』(2007)의 저자인 코베나 머서는 서구의 팝아트가 비서구권에 이양되면서 생겨난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버나큐러라는 개념을 인용한다. 원래 버나큐러는 귀족이 사용하는 외래의 세련된 언어들, 예를 들어 유럽의 라틴어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반대로 완전히 토착적인,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토착노예’의 문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머서에 따르면 후기 식민지이후 시대에 버나큐러는 단순히 토속적인 문화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서구 산업시대로부터 파생된 “대중소비문화”와 산업시대 이전의 전통적인 공예의 영역사이에서 일종의 모호한 영역을 점유한 문화를 가리키게 된다. 예를 들어 관광지에서 만들어진 짝퉁 토착문화상품은 중간자적인 문화 지대를 차지하게 된다. 실제로 최정화의 〈신사숙녀 여러분〉(2000)은 토속신앙과 서구의 대중소비문화, 전통 공예와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결합해 놓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정화의 예술을 단순히 한국식 팝아트의 한 부류로 간주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이다. 물론 최정화가 일상적인 삶의 파편들을 순수예술의 분야에 편입시켜왔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예술이 팝아트와 유사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화가 누차 강조하고 있는 시장통 문화는 서구 유럽과 미국의 주요 팝아트 관련 작가들이 인용하였던 전후의 발달된 대중소비문화와는 분명히 차이를 보인다. 최정화의 시장통 문화는 워홀이 1960년대에 즐겨 인용하였던 미디어 문화나 대량생산을 위주로 하는 슈퍼마켓의 문화와 실은 대척점에 놓여 있다. 시장통 문화는 전후 서구사회의 풍요로운 대중소비문화와는 달리 저급으로 생산해낸 짝퉁 소비문화의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포장마차의 천막과 낱장 광고로부터 영감을 받은 1998년 쌈지 스포츠의 인테리어,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올려서 만든 〈플라스틱 파라다이스〉(1997)등은 결정적으로 작가가 주장하는 사라지면 아쉬운, 촌스럽지만 정감어린 빈티지 문화에 속한다. 만약 워홀이 1962년에 인용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0년대 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면 1997년 최정화가 인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소쿠리는 엄밀히 말해서 국내에서는 사라져가는 전 세대의 소비문화이다. 실제로 최정화는 1997년 방콕 전시를 계기로 플라스틱 소쿠리를 세련된 소비문화가 한국에 비하여 덜 발달한 태국에서 주문제작한 바 있다. 즉 1970년대 국내에서 ‘신(新)가라’의 상징이었던 플라스틱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소비문화의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빈티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정화와 노스탤지어

그렇다면 왜 최정화는 1990년대 말 철 지나간 빈티지 문화를 자신의 주요한 예술적 영감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의 작업은 일차적으로 1990년대 국내 포스트모던 담론과 함께 젊은 세대 한국의 작가들이 기존의 ‘오브제(물건)’들을 그대로 차용해가는 전법을 사용한 역사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90년대는 또한 영화 〈칠수와 만수〉(1989)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1990년대는 한국 대중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시기에 작가는 특정한 브랜드나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총괄하는 총체적 디자이너로서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였고 그의 초기 인테리어 취향을 반영하는 미니멀적인 강남의 부티크 샵들(박윤수의 올 스타일, 보티첼리)을 디자인 하였다. 이들 인테리어는 최정화가 뮤지움 그룹과 함께 활동하면서 선보인 오브제 작업들과는 전혀 단절된 성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최정화가 1990년대 한국의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분화, 또는 양극화되는 과정에서 가능한 예술적, 문화적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1988년 올림픽 이후에 각종 해외여행이나 수입과 연관된 규정들이 완화되면서 외국의 소비문화나 대중문화가 이 시기에 국내로 급격하게 유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정화에게 빈티지 문화는 1970-80년대에 성장기를 지낸 작가의 향수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 특유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1970년대 저소득층 도시인들을 위한 싸구려 생활용품들을 만들어 내는데에 주로 사용되었던 일종의 플라스틱 소쿠리의 탑이다. 그러나 최정화에게 빈티지 문화는 단순히 그가 보존하거나 재활용할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원래 플라스틱과 파라다이스의 개념을 연관시키는 것은 고전적인 문화 이론과는 모순된다. 문화이론의 고전서인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일상의 신화들』(1957)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모든 물건을 원래 재료의 특성을 무시한 채 그것이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간에 외형만 모방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비관적인 시점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전후 소비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은 환경적으로도 가장 유해한 물질로 손꼽힌다.
 
하지만 플라스틱에 대한 최정화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플라스틱 소쿠리를 보면서 천국을 상상한다. 물론 시장통의 플라스틱 소쿠리가 실제적인 풍요를 상징한다고 작가가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작가는 동일한 종류의 물건을 집적하는 방식을 즐겨 왔는데 이것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하기 때문에 소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쌓아놓는” 시장통 사람들의 습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게 유사한 물건을 많이 찍어서 만들어 내는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는 착시적으로 ‘풍요’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플라스틱은 단순히 덜 세련된 외관과 시각적 효과에서뿐 아니라 그 재료나 설치 방식에 있어서 결국 시장통 문화가 지닌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은 최정화에 의하여 환경 친화적인 소재로도 탈바꿈한다. 최정화는 공동프로젝트(이재영 감독, 오형근 사진작가)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1994-2004)와 연관하여 미술관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폐품들을 미술관이나 특정한 장소에 관람객들이 들고 오는 ‘해피 해피(혹은 해피 투게더)’ 시리즈 프로젝트(가고시마, 상해, 벨기에, 영국)로 지난 10년간 발전시켜 왔다. 2008년 서울 디자인 올림픽, “모으자, 모이자”를 통하여 국내에도 소개된 이 프로젝트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설치한 철제구조물에다가 관람객들이 취합한 생활재들을 들고와서 거는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공공예술이다.
 
‘해피 해피’ 시리즈에서 한물간 문화를 상징하는 플라스틱은 이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니 플라스틱은 미래 우리의 환경을 보존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과거를 상징하는 재료가 미래의 이상향(작업의 개방적이고 관객참여적인 속성과 아우러져서)을 상정하는 재료로 거듭난 것이다. 안드레아스 휴이센의 말대로 노스탤지어는 과거의 특정한 이상향을 상정하고 흘러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염원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흔히들 최정화의 작업이 쉽고도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작업의 소재들인 꽃, 로봇트, 소쿠리등이 지나치게 평범하고 심지어 어떤 때는 상스럽기까지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예술작업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인 메시지가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쉽지만 그것을 무턱대고 관람객들이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특히 싸구려 미학을 신봉하는 냉소적인 작업의 외관에 비하여 저변에 깔려 있는 이상주의적인 메시지는 그가 소통하고자하는 바를 관람객들이 정확히 감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서 관람객들은 플라스틱 파라다이스와 〈대형 꽃〉(2000)을 미술관에서 맞딱드리게 되면서 의아해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그가 인용하여 온 싸구려 관광용품,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한물간 버나큐러 문화의 상징이라면 시장통 사람들과 최정화는 실제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가? 그는 2004년 교육방송 인터뷰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종로의 만물상이나 1960년대 말에 지어진 동대문 시민아파트(속칭 연예인 아파트)의 미적 가치를 탐사하는 작가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고물상들이나 오래된 아파트의 주민들과 그의 삶이 그다지 밀착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고물상이나 주민들은 발전하는 대중소비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뒤쳐진 세대일 뿐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폐품작업들은 미술관이나 디자인 페어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이벤트일 뿐이다. (물론 선전이나 홍보의 효과는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최정화의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단순히 혼용된 빈티지 문화를 이상화할 뿐 그 문화의 단계에 머무른 사람들의 경제적 처지는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직도 최정화의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반신반의한다. 그의 이상주의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기대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