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모(b. 1987)는 매일 다르게 변하는 창밖의 풍경이나, 촛불의 모양처럼 움직이는 형상들이 엉키고 일렁이는 모습에서 작업의 개념을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형상이나 물질적 대상으로서 관찰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투영하며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여기며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러한 자기 참조적인 관찰을 시도하며 ‘균형 찾기’하듯 연속되는 회화를 파생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양현모, 〈위태로운 불〉, 2024, 캔버스에 유채, 297x197cm ©DIA Contemporary

양현모는 대상이 지닌 무질서함을 관찰하는 일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이를테면, 창 밖의 풍경은 어떤 날엔 끝없이 연속적인 터널을 지나는 것 같지만 어떤 날에는 펼쳐진 하늘처럼 쉴 새 없이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촛불은 꺼질 듯한 흔들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심지를 둘러싼 불꽃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중심을 유지한다.
 
작가는 이처럼 흔들림과 견고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즉 명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운 대상들에 주목해 왔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레이어링 된 붓질의 흔적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환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검은색빛》 전시 전경(쇼앤텔, 2019) ©쇼앤텔

2019년 쇼앤텔에서 열린 양현모의 첫 번째 개인전 《검은색빛》에서 작가는 어둠을 망각한 것처럼 보이는 도시 서울에서 “빛에 사라지지 않는 어둠”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는 빛 너머의 어두운 풍경 속에는 무엇이 존재할지 상상하며 밤의 어둠 속을 산책하면서 채집한 풍경을 그렸다.
 
이때 불현듯 나타나는 불빛, 뚜렷이 분간할 수 없는 희미한 형상, 어둠 속에서 더욱 까맣게 드러나는 그림자 등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검은색빛》 전시 전경(쇼앤텔, 2019) ©쇼앤텔

전시에서 양현모의 회화는 통상적인 하얀 벽의 화이트큐브가 아닌 짙은 회색 공간 안에 놓인다. 이러한 회색 공간은 그의 작품이 구현하는 것이 그 무엇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둠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더라도 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어둠임을 시사한다.
 
회색 공간은 작가의 회화를 단일한 색조로 환원하거나 특정 부분에 주목하게 하는 흰색 혹은 검은색의 벽면과는 반대로 작동한다. 진한 회색의 벽면은 양현모의 회화가 표현하는 것이 완전한 검은색도 아니고 흰 빛도 아닌, 그 사이의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관객이 화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때, 미세한 색조의 차이 속에서 조금씩 무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분무기, 옷걸이, 벽과 천장,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 등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던 것”을 “잘 보게 하는 일,” 이것이 보기의 대상으로서 양현모의 회화가 수행하는 첫 번째 작용이다.


《검은색빛》 전시 전경(쇼앤텔, 2019) ©쇼앤텔

무언가를 보려 하는 순간 혹은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어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간신히 어둠 속의 모호한 형상을 특정한 대상으로 포착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어둠이 아닌 것으로 변하고, 더 어두운 무언가가 그 너머에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둠을 지시하는 일은 더 어두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뒷걸음질치면서 “주변 공간을 적나라하고 뚜렷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흐릿하고 어둡게” 만든다. 그리하여 작가의 회화는 ‘잘 보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을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또 다른 보기의 역동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이런 회화의 작용을 일컬어 ‘검은색빛’이라 말한다.


《Burning symmetry》 전시 전경(로이갤러리, 2023) ©로이갤러리

한편, 2023년 로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Burning symmetry》에서 양현모는 시지각의 작용과 그 작용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전시는 대칭을 단위 삼아 만든 이미지를 통해 흐릿함과 견고함이라는 대척의 개념이 허물어지며 서로의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을 살핀다. 특히 견고한 형상, 부드러운 형상, 흐릿한 형상으로 이어지는 그리기의 과정을 토대로, 대칭에 관해 이어진 양현모의 순차적인 고찰을 담아내고 있었다.


《Burning symmetry》 전시 전경(로이갤러리, 2023) ©로이갤러리

양현모에게 대칭은 흐릿한 형상에서 견고한 감각을 찾는 단서가 된다. 흔히 대칭은 두 가지 이상의 동일한 조형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일컫는다. 식물이나 동물 등의 자연물, 자동차, 건축 등의 인공물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산물은 특정한 조형을 반복하는 규칙을 따르는데, 양현모는 촛불의 모양처럼 움직이는 것에서 균형을 발견했다.
 
촛불은 꺼질 듯한 흔들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심지를 둘러싼 불꽃을 중심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양현모는 떨리는 촛불에 공존하는 단단한 모양과 같이, 흐릿한 모습 너머에 잠재되어 형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견고함이라는 역설적인 개념에 관심을 두었다.


양현모, 〈쉴드 No.8〉, 2023, 캔버스에 유채, 91x91cm ©로이갤러리

이처럼 양면의 속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칭은 양현모의 그리기에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가 된다. 양현모가 그리는 것은 선대칭, 역대칭, 회전대칭 등 다양한 종류를 아우르지만, 그의 그리기에서 단순히 대칭을 그려낸다는 것보다는 대칭 이루기의 과정으로서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 탐구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물로서, 온전히 모든 것을 복제하거나 반복한 대칭이 아닌, 흔들리기도 멈추기도 하며 균형을 만들어 가는 중에 있는 모양이 나타난다.


양현모, 〈부드러운 사각형〉, 2023, 캔버스에 유채, 53x53cm ©로이갤러리

전시는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그린 세 가지 연작, 견고함을 형상화한 ‘쉴드(Shield)’, 견고한 형상을 의심한 ‘부드러운 사각형’, 견고함을 흐린 ‘버닝 시메트리(Burning symmetry)’를 선보였다. ‘쉴드’는 양현모가 가장 처음 대칭을 보며 떠올린 인상인 견고함을 명확한 이미지로 가져온다. 방패, 와펜(wappen), 거북이 등껍질처럼 선과 면이 분명하고 선명한 단단함을 표현한다.


양현모, 〈버닝 시메트리 No.28〉, 2023, 캔버스에 유채, 91x91cm ©로이갤러리

‘부드러운 사각형’은 대칭의 견고한 속성에 대한 의심이 내재된 형상으로, 특히 초점책이라는 유아용 도서의 선명하고 납작한 사각의 그래픽을 보며 고정적이지 않은 것, 그리고 회화의 촉각성에 관해 떠올린 상상을 동반한다.
 
나아가 ‘버닝 시메트리’는 대칭의 형상보다는 흐려지는 움직임을 보며 지각하는 견고함에 관한 인상을 그린다. 여기서 이전에 만들어진 견고한 이미지들은 흐릿함의 속성을 덧입으며 자연스럽게 부서지고 변화하는 형태가 되어간다.


《Burning symmetry》 전시 전경(로이갤러리, 2023) ©로이갤러리

한편, ‘버닝 시메트리’로 귀결되는 이 일련의 작업들은 자기 참조의 시도로서 이전 작업의 개념을 ‘덮어쓰기’하듯 연속되는 양현모의 회화 세계를 파생시켜 나간다. 그는 과거 최소한의 명도에서 시지각이 받아들이는 미세한 형상을 그리며 ‘어둠’에 관한 고찰을 시도했다.
 
이후 어둠 속에 남은 작은 빛마저 지워버린 빈 화면을 그려냈는데, 그 뒤로는 어둠과 빛이라는 반대항을 흐릿함과 뚜렷함이라는 감각으로 치환하고 두 가지를 공존시켰다.
 
전시 《Burning symmetry》에서 시도한 ‘쉴드’는 어둠이라는 회화적 고찰의 첫 시작, 흐릿함과 뚜렷함이라는 두 개념의 공존에 관한 고찰에 이어 뚜렷함이라는 개념, 달리 말해 견고함을 하나의 대상으로 둔 고찰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버닝 시메트리’는 마치 견고함을 불에 태우는 듯한 접근을 토대로 ‘쉴드’의 이미지를 흐린다.


《Burning symmetry》 전시 전경(로이갤러리, 2023) ©로이갤러리

이는 흐릿함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어둠을 고찰한 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둠, 흐릿함과 뚜렷함, 견고함에 관한 수많은 과거의 시도들을 딛고 파생된 새로운 고찰로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단순한 명도의 대조를 넘어 회화의 조형성, 평면성, 촉각성에 관한 탐구를 녹여내고, 반대항을 만드는 근거와 그 사이의 균형을 살핀다는 점에서 촘촘해진 그의 고찰을 반영한다.
 
이렇듯 흐릿함, 견고함의 형상, 의미에 관한 양현모의 고찰은 멀리 떨어진 반대 개념을 끌어당겨 서로 가까워지게 만든다. 이 역설적인 상상은 그의 그리기를 위한 토대가 되고, 축적되는 붓의 흔적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환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일렁이는 오늘》 전시 전경(로이갤러리, 2025) ©로이갤러리

한편, 2025년 로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일렁이는 오늘》에서 양현모는 창밖 하늘이나 먼 도시의 풍경 속에서 느낀 무질서함을 자기 자신에 투영하여 그린 작품들을 소개했다. 작가는 창밖 풍경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과 밀접한 것들을 함께 읽어 나갔다. 
 
양현모의 시선에서 창밖의 불안정한 풍경은 작가의 내면의 생각들, 감정, 기억, 과거, 미래들과 겹쳐진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양현모, 〈Flexible Forms 11.04〉, 2024, 캔버스에 유채, 91x91cm ©로이갤러리

그 결과물로 선보인 일련의 작업들은 불안정함과 견고함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예를 들어, ‘Flexible Form’ 연작은 무작정 일렁거릴 것만 같은 화면 곳곳에 선이 배치되며 불안감 속의 안정감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화면을 3분할로 만드는 수평선과 거기에 교차하는 수직선은 시선을 정지시키고, 색이나 비정형적 형태의 과한 울렁임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양현모의 작품에서 대부분 직선은 주어진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은유하곤 한다.


양현모, 〈Flexible Forms 05.01〉, 2025, 캔버스에 유채, 53x159cm ©양현모

이렇듯 양현모는 명확하게 가늠할 수 없는 요소들을 작가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재단하고, 축적해 독창적인 새로운 화면을 완성한다. 점, 선, 면, 형태와 같은 조형의 최소 단위를 통해 감각 그 자체에 집중하는 양현모의 회화는 인간 존재의 불안정함을 하나의 본질로 긍정하며 인간과 가장 근접한 형상에 도달하려는 사유의 궤적을 담고 있다.
 
즉, 이러한 작가의 탐구는 감각적 체험에서 내면의 탐색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순환 속에서 언어로 포착될 수 없는 삶의 일부를 오직 회화로 보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비정형과 기하학 사이를 오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일정하게 흘러가진 않는 것 같다. 뭔지 모르게 섞여 있거나 무질서하게 느껴진다. 그건 인간과도 닮았다."  (양현모, 리포에틱 인터뷰 중)


양현모 작가 ©로이갤러리

양현모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개인전으로는 《일렁이는 오늘》(로이갤러리, 서울, 2025), 《Burning symmetry》(로이갤러리, 서울, 2023), 《검은색빛》(쇼앤텔,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Transurfing》(노블레스 컬렉션, 서울, 2025), 《Peephole》(아크원, 서울, 2024), 《전시후도록》(웨스, 서울, 2022), 《No place like home》(아트스페이스영, 서울, 2021), 《사루비아 기금전》(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양현모는 2024년 Artsy가 큐레이팅한 ‘New Abstact Art’에 선정되었고, 2025년 아트인컬처 5월호 ‘미술 전문가 80인이 꼽은 추상작가 136인’에 이름을 올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