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Poster 《The Ring of Saturn》 © Bucheon Art Bunker B39

《토성의 고리》는 미완의 세계를 기꺼이 맞이하기 위해 복수의 미래를 상상해 보며, 우리 사회를 측정하는 지표들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촉구한다. 나아가 성장 이면에 가려진 현재를 발굴하고, 기술로 얻어지는 편의를 정의롭게 분배하는 ‘세계들’을 그려본다. 전시의 제목인 ‘토성의 고리’는 독일 작가 W.G. 제발트(1944-2001)의 장편 소설 『토성의 고리』에서 빌려왔다. 토성의 고리는 행성이 생성될 때 남은 물질과 토성의 힘으로 부서진 위성의 잔해와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폐허의 고리는 시간에 의해 파괴된 유약하고 유한한 것들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제발트는 시간의 천체로 불리는 토성을 맴도는 고리를 통해 인류가 살아가는 행성의 역사를 돌아본다. 파괴의 현장과 역사에서 배제된 존재들을 비선형적 시공간에 위치시켜 문명의 폐허를 차분히 묘사해 가며, 위대함으로 점철된 세계에 회의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제발트는 재구성된 과거를 통해 진보와 계몽의 역사를 살펴보고 기약된 미래는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행성을 맴돌고 있는 폐허의 고리가 견인할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전시는 고리 내부의 원에서부터 가장 바깥의 원을 지나 다시 행성에 착륙해 보기를 시도한다. 이는 지구 행성 내 거주하던 영토에서 벗어나 개발되지 않은 미개척지를 정복하려는 탐험이 아니다. 오히려 미개척지의 소멸을 인정하고 서 있던 장소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또한, 이미 타버린 잔해와 흔적 더미 사이를 뒤적이며 번영의 땅을 찾는 것이 아닌 폐허와 번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균형 감각을 되찾는 연습이기도 하다.

전시를 구성하는 5명의 작가는 기술의 발전을 사회의 진보와 동일시하는 세계에서 폐허의 고리를 지각하기 위해 약속하는 과학기술을 의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주요 동인을 분석해 보기 위해 하나의 체계만이 유일하게 유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오늘날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시장에 펼쳐진 일련의 시도들은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근사한 미래에 제동을 거는 행위로 비칠 수 있는데, 다가올 미래와의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를 조정하는 일로 읽히기를 바란다. 폐허의 고리의 지름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안정적인 이착륙을 위하며.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