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 ©서민우

아케이드서울에서 서민우 작가의 개인전 《허물과 궤적》이 11월 8일부터 12월 3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5월 음반, 8월 공연, 11월 전시로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의 최종 장으로, 소리를 물질적 사건으로 다루어 ‘청취의 조건’을 다시 구성하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아케이드서울에서 열리는 서민우 개인전 《허물과 궤적》은 소리를 단순한 청각 경험이 아니라 시간·공간·신체를 통과하는 물질적 사건으로 다루는 작가의 실험을 집약한 전시다. 이번 프로젝트는 음반–공연–전시에 이르는 1년의 여정을 통해 청취의 조건을 단계적으로 확장해왔다.

5월 발매된 음반 《허물과 궤적: 나선형 수평계》에서 서민우는 일상의 필드 레코딩을 쪼개고 재조합하며 음악적 문법에서 벗어난 배열 방식을 탐구했다. 소리를 감정의 매개나 서사적 장치로 다루지 않고, 그 자체를 물질적 파편으로 바라보는 태도였다.

《허물과 궤적: 궤적들》 공연 현장 사진 ©아케이드 서울

이어 8월 공연 《허물과 궤적: 궤적들》에서는 땅을 덮은 라텍스가 관객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청취의 표면으로 기능했다. 발자국, 주름, 체중의 이동은 ‘듣는 행위’의 물리적 잔존물로 남아, 청취의 경험을 감각·신체·공간이 얽히는 사건으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공연에서 사용된 라텍스를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온다는 점에서 결정적이다. 새로운 소리는 재생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발생한 소리의 흔적 — 발자국, 주름, 압력의 잔여 — 이 다시 배치되며 소리 이후의 세계를 시각적·공간적 구조로 재구성한다. 라텍스는 더 이상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기록하지 않은 기록이며, 허물처럼 남은 청취의 외피다.

작가는 이 잔여들을 임시적(ad-hoc) 방식으로 전시 공간에 놓음으로써, 감각 간 위계를 해체하는 ‘수평적 진동’을 만들어낸다. 시각이 청각을 압도하지도, 신체가 물질을 대체하지도 않는다. 모든 감각이 같은 표면을 흔들리며 지나가는 듯한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허물과 궤적》 전시 전경(아케이드 서울, 2025) ©아케이드 서울

서민우는 스스로를 “가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작업은 음악의 범주를 넘어 조형적 감각의 재구성을 향한다. 관객은 전시장에서 더 이상 귀로 듣지 않는다. 대신 소리의 흔적이 배치된 지형을 걷고 바라보며, 감각의 순서를 다시 학습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윤여울 큐레이터는 “전시는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청취 자체의 불안정성과 닮아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전시장은 스피커의 위치, 라텍스의 주름, 자연광의 방향,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감각의 장으로 기능한다.

아케이드서울은 이번 전시를 통해 조각·음향·신체 감각이 서로를 관통하는 독특한 감각적 지형을 제안하며, 소리의 잔여로 새로운 조형적 질서를 구성하는 실험적 시도를 선보인다.

《허물과 궤적》은 현대의 사운드 아트가 ‘소리 그 자체’를 넘어 감각의 사건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소리 이후의 잔여가 다시 감각의 구조가 되는 순간, 관객은 듣는 행위의 확장된 가능성을 체험하게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