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희(b. 1992)는 다양한 유무형의 아카이브와 공간을 재료로 삼아 이를 메타화한 영상으로 새롭게 구조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료의 위상과 아카이빙 실천 자체를 시각 언어의 시스템과 리듬의 문제로 변화시키며, 기존의 서사에 대한 고정된 기억에 새로운 속도와 구조를 부여한다.


노송희,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 2021,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20초 ©노송희

노송희의 작업은 아카이브를 단순한 자료의 축적을 넘어 제도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드러내는 ‘장소’로 주목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작가는 유무형의 형태로 남겨진 아카이브의 여러 맥락과 구조를 현재의 시각에서 재구성하고 새롭게 기록한다.


노송희,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 2021,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20초 ©노송희

2020년 이후, 작가는 유무형의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에 기반해 개인, 예술가, 미술 기관 등과 협업하며 작가 특유의 3D와 2D의 시점 이동을 드러내는 영상 작업을 제작해 왔다.
 
예를 들어, 영상 작품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2021)를 통해 노송희는 월간지 『춤』의 86년도 11월호에 게재된 백남준의 글 「Software로서의 춤을-현대무용가에게」를 중심으로 무용이 기록되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백남준의 글에서 춤과 영상 기록의 필연적 관계, 비물질적 데이터로서의 역사, 편집과 연출에 의한 왜곡 가능성, 압축된 시공간 등 무용, 영상, 그리고 기록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질문들이 현재까지도 유의미하다고 보며, 작품을 통해 이를 동시대의 맥락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노송희,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 2021,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20초 ©노송희

또한 영상 곳곳에는 안무가 안은미와 대구시립무용단의 〈하늘 고추〉(2002-2003) 공연 기록물이 등장한다. 〈하늘 고추〉가 섹슈얼리티한 관점에서 크기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노송희의 영상은 이를 형식적 차원으로 끌어들여 영상과 3D 시공간의 크기 문제로 연결한다.
 
영상의 움직임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무대와 비물리적 형태로 남겨진 데이터로서의 기록물을 교차하며, 극장의 곳곳을 통과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다층적 시간의 충돌을 야기하는 새로운 감각을 환기시킨다.

노송희, 〈Dia;grams〉,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노송희

한편, 2022년 시청각 랩에서 열린 단체전 《Exhibitions of Floor Plans》에서 선보인 작품 〈Dia;grams〉(2022)는 영상 작품인 동시에 하나의 전시로서 제시되었다. 노송희는 현시원 큐레이터의 학술적 연구 일부(구체적으로는 논문의 도판)를 독립적인 요소로 살피며, 전시장에 위치시켰다.
 
학술논문에서 도판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도구로서, 혹은 필자의 의견을 강화하는 자료로서 제시된다면, 작가는 도판을 중심으로 전시와 도면에 관한 연구를 재구조화하고 이를 전시장에 작품으로 배치하였다.


노송희, 〈Dia;grams〉,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노송희

〈Dia;grams〉를 위해 제작한 도면에는 전시 공간인 시청각 랩의 부감도를 포함해 작품의 배치, 관람 동선, 스케일 등이 표기되어 있었다. 전시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시에 영상의 구조와도 맞물리는 이 도면을 따라가다 보면, 기록사진과 영상, 문헌, 비평 등 전시로부터 파생된 부수적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노송희, 〈타임 시프팅 박스〉,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노송희

이와 같이 전시를 중심으로 생성된 다양한 기록물들을 재구조화하는 시도는 같은 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선보인 작품 〈타임 시프팅 박스〉(2022)에서도 이어졌다. 이 작업에서 노송희는 ‘발견,’ ‘전시 이전,’ 전시 이후,’ ‘기록,’ ‘복제’라는 다섯 개의 주제를 통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자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노송희, 〈타임 시프팅 박스〉,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노송희

이 다섯 개의 주제로 분류된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상자들이 있고, 그 안에 문서와 물건들이 있다. 영상은 상자를 여닫고 문서를 펼치고 접으며, ‘질문-번역-변신’이라는 아카이빙의 무한한 순환 과정을 그린다. 유준상, 임동식이라는 두 인물의 컬렉션으로부터 발견한 자료는 백남준 작가, 김학량 큐레이터로 이어지고, 다시 문서를 스캔하는 노송희의 손으로 새롭게 연결된다.


《DIZZY》 전시 전경(시청각 랩, 2023) ©노송희

한편, 2023년 시청각 랩에서 열린 개인전 《DIZZY》에서 노송희는 아카이브와 영상, 도면과 실제 공간의 관계를 신작과 기존 작업에 기반한 변형작 등으로 새롭게 구조화하였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시청각 공간을 작업에 재료로 삼아 가려져 있던 공간을 개조하고, 신작 영상을 관람하는 전시의 동선을 물질화하는 실내 건축(인테리어)을 설계했다.


《DIZZY》 전시 전경(시청각 랩, 2023) ©노송희

전시 《DIZZY》에는 아카이브와 작가의 1:다차원적 관계뿐 아니라 작업의 다른 인공물로서의 도면, 기록 장치, 보관함 등이 물질화되어 등장하였다. 아울러, 사전에서 ‘DI’로 시작하는 단어들, 각종 과일 모양(shape)을 잇는 작가의 탐구가 디지털 시간과 실제 시간, 자료가 넘치는 공간과 새 전시가 열릴 아예 다른 공간을 오가며 다차원적인 형태로 변화해 나갔다.
 
이러한 작가의 ‘전시 모양’은 각각의 방과 통로, 스케일과 이동을 예측하는 건축적 형태로서 전시를 구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아카이브를 새로운 시각 언어의 시스템과 리듬으로 변화시켰다.


노송희, 〈캣워크〉, 2024, 2채널 비디오, 3채널 LED 패널, 컬러, 사운드, 5분, 가변설치 ©노송희

나아가,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출품한 영상 작품 〈캣워크〉(2024)는 오픈 데이터 소스를 동시대 사료로서 바라보며 역사를 구조화하고 현재의 시점을 재배치한다. 노송희는 태생적으로 성장 중심, 발전주의, 위생 담론 속에서 형성된 국가 주도 계획도시인 창원의 탈성적(bleached sexuality) 요소에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서, 공장 내부의 점검로를 뜻하기도 하는 〈캣워크〉는 탈색된 개체의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중성화 수술 직후의 고양이들의 관점과 도시 표면을 뒤덮은 횡단보도, 보도블럭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노송희,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250x250x80cm ©노송희

그리고 《두산아트랩 전시 2025》(두산갤러리, 2025)에서 선보인 신작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2025)을 통해 노송희는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연결하며 또 다른 방식의 아카이브 읽기를 제안하고자 했다.
 
작가는 디지털 영상 매체가 제공하는 어디서든 감상 가능한 접근성을 전복하고자 전시 공간과 화면 속 가상 공간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했다. 이를 위해 영상은 두산갤러리 공간을 노송희의 지난 작업들을 망라하는 새로운 가상 전시공간으로 전유한다.


노송희, 〈Best Television is Noh Television〉,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250x250x80cm ©노송희

전시장 입구를 시작으로 또 다른 가상의 전시 공간으로 이어지는 영상은, 곳곳에 배치된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2021), 〈타임쉬프팅박스〉(2022) 등 작가의 지난 영상과 2024년 시청각 랩에서 열린 개인전 《DIZZY》의 기록물들을 경유한다.
 
이로써 실제와 가상의 두 공간과 맞물려 만들어내는 경험은 관객에게 이질적이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다가오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카이브 모양》 전시 전경(금천예술공장, 2025) ©노송희

한편, 같은 해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개인전 《아카이브 모양》에서 노송희는 1970-90년대 한국 근대화의 욕망을 품은 세 장소(호텔, 극장, 전시관)의 도면을 바탕으로, 여성 신체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오리고, 다시 붙여 새로운 가상 도면을 구성했다.
 
이 재조립된 도면은 전시장 바닥에 구현되며, 영상·드로잉·조각이 교차하는 하나의 구조적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에 더해 세 명의 뮤지션(안다영, 장영규, 박다함)이 구성한 사운드는 관객의 동선과 시선을 조율하는 아카이브 읽기의 리듬으로 작용하며, 관람의 시간대에 따라 기록의 속도와 구조가 다르게 인식되도록 만든다.


《아카이브 모양》 전시 전경(금천예술공장, 2025) ©노송희

이렇듯 노송희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며 ‘아카이브’라 명명되는 데이터화된 역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기록의 속도와 구조를 새롭게 제시한다. 이러한 재구성의 과정은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오가며,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 아카이브화 된 역사를 유동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서 바라보게 만든다.

 "영상에서는 이처럼 물질-비물질적 변환 과정을 통해 구축된 역사의 기록을 매체간 이동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노송희,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아카이브 프로젝트 《밤의 플랫폼》 인터뷰 중) 


노송희 작가 ©피크닉

노송희는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아카이브 모양》(금천예술공장, 서울, 2025), 《DIZZY》(시청각 랩, 서울, 2023)가 있다.
 
또한 작가는 《두산아트랩 전시 2025》(두산갤러리, 서울, 2025),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성산아트홀, 창원, 202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몰타기사단 수도원, 베니스, 이탈리아, 2024), 《Exhibitions of Floor Plans》(시청각 랩, 서울, 2022), 《밤의 플랫폼》(아르코예술극장, 서울, 2021), 《2021 DMZ Art&Peace Platform》(유니마루, 파주,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