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All Tomorrow’s Parties》 © Art Space 3

전시는 언제나 모종의 기회이지만 또한 모종의 심판이다. 기회를 준 사람들이 또 심판을 겸하는 것이 지금의 미술제도이기도 하다. 예술가로서 출사표를 던진 우리는 기회의 자리에서 빛나야 하며, 심판의 자리에서 당당해야 한다. 지금의 사회가 우리에게 하는 당부다. 그러나 사랑해 마지 않는 예술은 자비롭게도 그 당부에서 조금은 비껴가도 되는 자유를 우리에게 부여하였다. 예술에 불충분할 것, 불충직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예술에게 결연하고 단호했던 것 같다. 특히 현대미술은, 동시대미술은, 그리고 우리가 배운 학문적 가르침은.
 
“예술의 힘은 예술만의 세계 속으로 자폐되는 데 있지 않다.”


Installation view of 《All Tomorrow’s Parties》 © Art Space 3

《올 투모로우즈 파티스》는 7인/팀(정확히는 9명)이 모여 함께 하는 짧은 전시다. 이들은 지난 겨울 다소 촉박한 일정으로 모인 후, 겨울을 보내고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전시장에 다시 모였다. 지난 몇달 간 이들을 지켜본 필자는 이들이 타인(필자 포함)의 시선과 판단에 의해 길들여지기보다는 가능한한 스스로 결정한 모습으로 이곳 전시장에 들어서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기획자라는 구실로 만난 필자 때문에 이들의 작업이 조금이라도 왜곡된다면 반성은 필자의 몫이다.

필자는 전시장에서 불화보다는 화합을 추구했지만,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열린 숱한 밤의 파티들은 부조화의 반복이었음을, 욕망을 탐닉하는 곳이었음을 파티원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워홀이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15분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예술가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든 간에 파티원들의 파티는 대담하게, 와우!
 

글: 이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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