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b. 1990)는 기술 환경과 개인, 그리고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며, 현대 기술의 메커니즘 탐구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기술이 단지 과학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산업 논리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정체라 보며, 오늘날 기술 환경의 생성, 소비, 소멸 그리고 그 이면을 추적하는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은희, 〈The Flat Blue Sky〉, 2016, 단채널 비디오, 6분 47초 ©이은희

이은희의 작업은 점점 더 많은 디지털 매체로부터 노출되어 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환경 안에서 발생하는 개인과 이미지, 데이터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에 침투하는 속도가 더욱 가속화 될수록 개인은 다중의 이미지로, 혹은 방대한 정보 속에서 변형되거나 사라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은희, 〈Contrast of Yours〉, 2017,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43초 ©이은희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며 전개된 초기의 작업에서 작가는 우리의 행동반경이 CCTV, 스마트폰 카메라,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통해 포착되고, 데이터화 되어 사용되는 사례를 연구하거나, 오늘날 만연하게 사용되는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그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곤 하였다.
 
예를 들어, 2017년 작업인 〈Contrast of Yours〉는 오늘날 CCTV와 같은 감시 시스템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수긍할 수 없는 양가적인 현실에서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영상은 안면인식 기술이라는 감시의 그물망으로부터 튕겨 나온 실제 인물들을 조명한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시대 속 개인은 가시성의 기준 아래 기록되고, 분석되며,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거대한 정보망의 흐름 속에서도 포착되지 않은 개인들은 단순히 비가시적인 존재가 아니라 애초부터 선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외부의 표상일 것이다.

이은희, 〈Contrast of Yours〉, 2017,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43초, 《두산아트랩 2019: Part 2》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19) ©이은희

작품 속에서 다룬 실제의 사례들은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해 자동으로 위치를 조정하는 카메라가 백인이 움직이면 반응하지만 흑인의 움직임에는 미동하지 않는 경우, 또는 우범 방지를 위해 흑인이 밀집한 동네의 길거리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미지를 잘못 포착(일상 사물을 무기로 오인)해, 경찰이 카메라 정보만을 믿고 범죄와 전혀 무관한 흑인을 총살하는 사건 등으로 이루어진다. 
 
작업은 다소 직설적인 내레이션과 인물들을 변형한 렌더링 이미지, 관련 영상 소스와 인터뷰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은희는 오늘날 감시 시스템을 온전히 믿거나 부정할 수 없는 양가적인 현실에서, 그들이 ‘비가시적’이거나 ‘소외’된 이미지인 동시에, 보이지 않을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대안’의 이미지로 대변될 가능성을 모색한다.


《회생비용》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0) 사진: 이의록. ©이은희

한편, 2020년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린 개인전 《회생비용》은 오늘날 기술 발전 이면에 가려진 현실을 추적해 온 결과물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작가는 기술 환경에 대한 작업을 진행해 오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기술이 과연 발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이 과연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는 번영인지 의심하였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기술의 발전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삶, 특히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했다. 전시 《회생비용》은 이들의 삶의 환경, 나아가 경제적 “몸”에 대해 다룬다.


《회생비용》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0) 사진: 이의록. ©이은희

특정 노동환경의 풍경을 담아낸 설치 작업이 놓인 전시 공간에는 회색과 붉은 톤의 영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상들은 수많은 3D 이미지 레퍼런스들이 이끄는 기억을 소환, 몰입시키면서도 그래픽적이고 평평한 텍스트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내러티브를 따라가게 하였다.
 
특히 전시에서 작가는 장애를 비장애와 분리하여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병리와 재활과정 전반에 이르는 의료기술/기계의 개발과 자본화, 그리고 그 과정 이면의 노동에 이르기까지의 소외된 신체를 드러내는 불편한 지점을 파고들고자 하였다.


이은희, 〈AHANDINACAP〉, 2020, 3채널 비디오, 12분 48초 ©이은희

작가는 이 일련의 영상 및 설치를 통해 장애를 경제적 생산능력, 즉 노동력이 거세된 신체로 보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이를 보완/대체물인 보조기술/보조기계 및 재활의 과정이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아닌 종국에는 노동, 즉 인간자체를 소외시키는 현실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영상 작업 〈AHANDINCAP〉(2020)은 ‘생산 불가능한 몸’이 다시 생산 가능한 ‘정상’의 몸이 되기 위해 재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장애를 신체와 정신의 회복이 아닌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기계형 신체로 치환하려는 움직임을 짚으며, 기존의 신체, 즉 노동이 포스트-휴먼적 기술에 의해 대체되는 현 상황을 지적한다.


《회생비용》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0) 사진: 이의록. ©이은희

그리고 또 다른 영상 〈EXTRA〉(2020)에서는 열악한 노동환경, 소외된 노동력인 돌봄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는 최근 국공립기관이나 기업들이 장애 및 노인 인구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맞춰 이러한 돌봄 노동을 대체할 방법으로 ‘돌봄 로봇사업’을 개발 및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상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생산율을 증대하기 위한 시장의 흐름은 대부분 쉽게 대체 가능한 노동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짚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신체적 결함에 대한 회복이라는 과정이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사회경제적 논리 속에서 노동과 기술의 집약을 일으키며, 나아가 첨단기술이 기존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과정까지 포함한다는 꺼림직한 이면을 드러낸다.


《디딤기와 흔듦기》 전시 전경(더레퍼런스, 2021) 사진: 이의록 ©이은희

이렇듯 이은희는 기술 환경과 얽혀 있는 다양한 몸의 레이어를 살피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와 이어진 맥락에서 작가는 오늘날 ‘손상된 몸’이 기술과 노동,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 구조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주목하며, 2021년 더 레퍼런스에서 열린 개인전 《디딤기와 흔듦기》를 선보였다.
 
사회에서 장애는 노동 가능성의 결여이자 동시에 경제적 능력의 약화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재활기술은 단순히 신체기능을 회복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노동력을 보완하고 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이은희, 〈디딤기와 흔듦기〉, 2021, 3채널 비디오 설치, 32분 14초 ©이은희

작가는 이때 재활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기술이 꽤 낙관적인 청사진을 그리지만, 이 기술이 구현되는 실행되는 현장은 다양한 정치적 복합체임을 짚으며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재활기술이 연구, 생산, 활용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과 기술 사이의 구조적 속성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재활 관련 의료현장과 장애 보조기구를 제작하는 산업연구소를 기록하면서 기계와 인간의 작동 패턴을 관찰했다.


이은희, 〈디딤기와 흔듦기〉, 2021, 3채널 비디오 설치, 32분 14초 ©이은희

기록된 현장의 풍경은 기계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인간과 기계를 관리하고 작동시키는 관리자 및 치료사, 기술자 등의 인간이 모두 기계 동작의 흐름에 종속되면서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이자 협업자로 드러난다.
 
이러한 작업들로 꾸려진 전시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식되는 장애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결함을 보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를 재정의한다. 나아가 재활기술의 현장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장애에 관한 기존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들 이면에 놓인 복잡하고 구체적인 실제들을 확인하고, 그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은희, 〈무색무취〉,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5분 ©이은희

이후 이은희는 근작에서 물질에서 비물질로 이동하는 디지털 시대의 무한성에 대한 환상과 이와 결합된 산업 자본의 욕망을 비평적 관점에서 다루며, 기술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신체적 손상을 조명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예를 들어, 2024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무색무취〉는 반도체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업무 기록과 아카이브 자료를 따라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냄새와 물질의 작용을 추적한다.


이은희, 〈무색무취〉,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5분 ©이은희

전자제품의 핵심 요소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먼지를 비롯한 제반 환경 조건이 통제되는 공간을 의미하는 ‘클린룸’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청결하게 세정 및 소독된 이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종종 건강에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고는 한다.
 
그러나 즉각적인 참사와 달리 화학물질의 축적에 의한 질병은 외관상 눈에 띄지 않은 채 세대에 걸쳐 서서히 발병한다.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 기술 현장의 보이지 않는 독성과 그 위험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클린룸을 드나들며 노동해 온, 물질이 통과하는 몸과 희미한 냄새의 기억뿐이라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은희, 〈무색무취〉,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5분 ©이은희

이 희미한 냄새와 물질을 추적하기 위해 작가는 취약함에 노출된 아시아의 여성 및 이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과거에 관한 증언은 현재의 증상에 포개지고 재해는 다른 몸과 장소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첨단 기술 산업이 점점 외주화되며 노동 환경의 위험과 착취 또한 세계화되어가는 가운데, 그의 작업은 이에 맞서는 피해자, 활동단체,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담으며 연대의 지형을 그린다.


이은희, 〈섬섬옥수〉, 2025,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이은희

그리고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서 발표한 신작 〈섬섬옥수〉(2025)는 〈무색무취〉에서 마저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어서 발화한다. 전작에서는 동시대의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했다면, 신작 〈무색무취〉는 보다 먼 과거의 사건까지 함께 매핑(mapping)하기를 시도한다.


이은희, 〈섬섬옥수〉, 2025,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이은희

이에 따라서, 신작은 산업혁명 시기의 직업병 문제가 오늘날의 전자 기술 산업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조명한다. 혁신적인 기술 생산에는 노동과 함께 수많은 물질이 투입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성분은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신체적 손상과 질병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종종 성별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묵인되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영상은 과거 섬유를 생산하던 공장을 일컫는 ‘릴링룸(reeling room)’과 반도체 공정을 위한 공간인 ‘클린룸(clean room)’, ‘히스테리’, ‘섬섬옥수’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과거의 재해와 현재의 사건을 교차시키며,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평행하게 반복되는 산업과 자본의 욕망, 그리고 그 이면을 드러낸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함께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발화와 행위를 기록한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된다.


이은희, 〈섬섬옥수〉, 2025,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저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이은희

이와 같은 기술의 현장을 예술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사유하는 행위는, 작가 이은희에게 있어서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기이하고도 부조리한 사회의 양상과 그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각 시대의 최첨단 산업과 기술이 ‘첨단’ 또는 ‘발전’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한편으로는 얼마나 모순적이고 취약한지를 질문하며, 오늘날의 기술 세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복잡하고 기이한 이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 놓고,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그 가설의 밑바탕을 구축하려다 보면 결국 세상은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역으로 깨닫습니다. (…) 장애와 노동, 그리고 기술이 연결된 복잡성을 인정하고, 이 환경에 속한 당사자들의 여러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같았습니다."    (이은희, 더 스트림 인터뷰 중) 


이은희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이은희는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학사와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마쳤으며,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학과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클린룸, 릴링룸》(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대만, 2025), 《Colorless, Odorless》(룸룸 x 아트 허브 코펜하겐, 덴마크, 2025), 《피로의 한계》(두산갤러리, 서울, 2023), 《디딤기와 흔듦기》(더레퍼런스,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북서울미술관, 서울, 2024), 《부유-지대》(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3), 《프리즈 필름 2023: It was the way of walking through narrative》(보안1942, 서울, 2023),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2), 《Digital Art Festival Taipei 2021: Boderless Shelter》(타이베이, 대만, 2021) 등 다수이 단체전에 참여했다.
 
전시 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2025),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22),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2018/2019),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2018) 등에서 작품을 상영했다. 그의 작품은 경남도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