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원(b. 1993)은 퍼포먼스와 미디어 기술을 결합해 동시대 신체가
어떻게 감각되고, 관계를 맺는지 탐구한다. 특히, 작가는 ‘춤’과 ‘행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미디어
환경에서 변화하는 신체 개념과 감각 구조에 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주로 비디오, 인터렉티브, 퍼포먼스 등을 다루며, 디지털 미디어가 자아내는 동시대의 현상과
내재된 감정을 신체 이미지로 표현한다.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상 현실, 소셜미디어, 그리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등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며, 우리의
일상을 비접촉적이고 비물리적인 방식으로 변화시켜 왔다. 이러한 현상은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인 비접촉
상황을 겪으며 더욱 심화되기도 하였다.
윤대원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몸’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고정된 실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상 공간에서 확장되고 변형되는 ‘가변적인 신체’로 존재한다고 보며 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작가는 실재하는 몸과 디지털 신체의 경계,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하는 우리의 태도와 지각 방식에 관해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감각하고 지각하며,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관해 묻는다.
예를 들어, 윤대원은 초기 작업에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신체’로 변형 · 확장된
몸의 움직임을 실험하였다. 디지털 신호로 변환된 그의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되고, 분해되고, 재조합됨으로써 전형적인 실제 몸의 구조와 다른,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몸으로서 거듭난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몸과 몸짓을 조각 내고 이어 붙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확장된 신체로 만들어진 춤사위는 모두 ‘기괴함’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괴함의 발생지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몸이 아닌, ‘편집된 몸짓’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물리법칙에서 벗어난 초현실적인 움직임이 가진 익숙하면서
낯선 감각이 그 원인이었으며, 그것이 윤대원의 춤이 가진 또 다른 아우라였던 것이다.

윤대원은 이 기괴함을 찾기 위한 다양하고 이상한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몇 가지 기준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몸짓을 편집하며 그 과정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완벽하게’ 대칭되거나, ‘완벽하게’ 정렬되거나, ‘완벽하게’ 같은 동작이 무수히 반복되거나, ‘완벽하게’ 동일한 속도로 움직일 때, 그의 춤은 점점 더 기괴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인간의 몸짓이 수치로 계산된 좌표값에 얹혀짐으로써, 완벽한 것과 완벽하지 않은 것의 조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윤대원은 미래의 휴머노이드의 몸짓을 상상하는 작업 ‘Factum
Socies’ 시리즈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작업은 미래의 휴머노이드가 인류를 장악하거나
더 뛰어난 우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시리즈의 첫 작업인 〈걸음마〉(2020)는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을 따라하고 연습하는 장면을 담은 퍼포먼스 작업이다. 전원이 켜진 휴머노이드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자신의 손과 발을 인식하는 과정부터 네발로 기어 다니는 모습, 나아가 이족보행의 첫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과정 등을 흉내낸다.

한편, 같은 해 진행한 미디어 설치 작품 〈커넥션〉(2020)에서 작가는 온라인 플랫폼 안에서 관계의 움직임과 속도를 물리적 공간 안에서 시각화 하고자 하였다. 총 25개의 정사각형 발판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2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오면 LED 불빛이 켜지며 서로가 연결되는
시각적 연출을 만들어낸다.
빛으로 만들어진 연결고리는 계속해서 형성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온라인 상에서 생겨나는 관계의 속도라고 보았다. 쉽고 빠르게 형성되고 흩어지길
반복하는 온라인 상에서의 관계 맺음의 움직임과 그 속도를 오프라인 공간 안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무수한
타인과 연결된 현시대의 온/오프라인 관계망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2024년 개인전 《Quite
Time》에서 윤대원은 작업 초반 연구해 왔던 디지털 편집을 통한 신체의 변주를 더욱 확장시켜 선보였다. 전시에서 공개한 작품들은 작가 본인의 몸짓을 디지털 기법을 통해 만화경적으로 분열시키거나 되먹임을 통해 시각적
어지러움을 자아내는 특징들을 보였다.
이는 춤과 같이 의도와 형식을 가진 몸짓과 특정 행위를 수행하는 몸에 집중하기 위해 디지털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결과로, 단순 시각적 유희나 현혹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수행적인 면모를 보인다.
작품 속 윤대원의 몸짓들은 특정한 규칙에 의해 수행되며 반복되지만, 수행
과정에서의 흔들리는 몸을 디지털이라는 필터를 통해 의도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몸과 몸짓을 더욱 증폭해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 퍼포먼스, 종교적 의례 행위들이 고도의 집중을 통해 다른
감각적 요소들을 절제하며 관습화된 행위를 정확히 수행하고자 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루어지며, 수행적 행위의
이면이자 내적 고뇌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작가가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하는 불안과 혼돈, 분열적 잔상과 흔적들은
전시에 놓여져 관객에게 비일상적인 ‘Quite Time’ 시공을 만들며, 일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을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냈다.

한편, 같은 해 《G아티언스 2024: 커넥션 위크》에 참여하며 선보인 작업 〈촉각전송〉(2024)을
통해 윤대원은 신체적 접촉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이를 AI가
해석한 이미지로 시각화 하고자 하였다. 퍼포먼스 작업인 〈촉각전송〉은 한 무용수가 다른 무용수의 신체를
접촉하면, 이를 느낀 무용수가 시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깨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을 ‘어머니가 겨울철에 끓여준 된장국’처럼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장을 AI에 입력하게 되는데, 이때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맥락은 사라지는 대신 이미지로 변환된다.
작업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과 AI 사이의 감각 차이를 병치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이로써 인공지능을 비롯한 동시대의 디지털 매체 환경이 우리의 감각과 신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사유하게 만든다.

나아가, 2025년도 퍼포먼스 작업인 〈강강-술래-잡기〉에서 윤대원은 ‘접속(connection)’과 ‘접촉(contact)’
사이의 상태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몸’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방식의 전환과 지각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미디어의 확장된 편재성이 물리적 신체 감각을 점차 가상화시키고, 현실과의
이음새를 더욱 정교하게 잇는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스스로 어떻게 현실-가상의 경계 안에서 정의할 것인가?,’ ‘미디어(스크린)를 경유한 몸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 발생하게 되며, 작가는 이를 현시대의 불안과 연결된 감각적 환경으로 읽는다.

퍼포먼스 작업 〈강강-술래-잡기〉는
이러한 불안정한 감각 환경 속에서 ‘접촉’과 ‘접속’, 그리고 공동체성에 대해 실험한다. 작품은 총 두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 장면에서는 술래잡기를
모티프로 한 퍼포먼스로 이루어진다.
퍼포머들은 서로의 몸을 쫓고 쫓기는 주체의 변화가 ‘터치’에서 일어난다는 규칙 하에 움직인다. 이때 개별 간의 접촉은 몸과
몸, 시선, 제스처, 거리의
감각을 통해 ‘타인’을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이 된다.
나아가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미지는 늘어진 속도와 중첩된 프레임을
통해 왜곡되는데, 이것은 ‘이미 지나간 몸짓’으로 신체 위에 투영되어 다른 시공간을 만든다.

몸 위에 투영된 이미지는 과거의 동작, 그리고 지금의 움직임과 어긋나며
교차한다. 어긋나버린 접촉이 타자의 시간과 교차하는 감각의 지점으로 작용하듯, 지연된 환경과 교차하는 몸/이미지의 상황 속에서 지금(-여기)의 몸은 다른 시간 속에서 춤을 추는 신체와 접속한다.
이와 같은 지각의 교란은 단순한 시각적 혼란이 아니라, 관람자 자신의
현실 구성을 새롭게 촉발하는 접촉과 접속의 작용이 된다. 퍼포머와 관객은 접촉과 접속 사이를 유예하며
관계를 맺고, 공간을 배회하는 감각이 어떻게 지연되는지를 천천히 탐색해 나간다.

한편, 전통 놀이 중 하나인 강강술래를 차용한 두 번째 퍼포먼스 작업은
관객이 함께 참여하며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한 방향으로 가볍게 걸으면서 원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일시적인 공동의 연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연결된 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박자가 공존한다. 조율되지 못한 리듬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기보다는,
‘함께-하기’라는 연대의 접촉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아가 관객은 참여하는 순간에도 접촉/접속의 연결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느낌을 감각하며, 리듬에서 이탈하거나 어긋나는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써 작품을 통해 참여자들은 공동체적 리듬이란 완벽한 동기화가 아닌, 서로의
어긋남이 연결되는 감각 안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듯 윤대원은 ‘몸’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이고 비물리적인 다양한 움직임들을 탐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의 환경과 그 안에서의 관계 맺음, 또 이에 반응하고 변화하는 신체 감각 등을 다뤄오며, 오늘날 ‘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지각 방식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함께 있음'과 '함께 없음'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 놓이는 몸의 가능성을 고민해나가고 있다." (윤대원, 2025 아르코데이 인터뷰 중)

윤대원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과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소과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강강-술래-잡기》(TINC, 서울,
2025), 《Quite Time》(GIMYE, 서울, 2024), 《4와 2분의
1마디》(협업공간 한치각,
평택,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LOGBOOK : Layered Memorie》(피어 컨템포러리, 서울,
2025), 《Resonant Chamber》(공간형, 서울, 2025), 《G아티언스
2024: 커넥팅 위크》(DCC 그랜드볼륨, 대전, 2024), 2023 광주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빛도 꿈을
꾸는가》(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3), 《자가당착(自家撞着)》(플레이스막1, 서울, 2021), 《Push & Art》(강동아트센터, 서울, 2020)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윤대원은 ‘2025 아르코데이’에
참여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2018년에는 제20회
단원미술제 작가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