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The Tourists》, 2025.10.25 – 2025.12.13,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
2025.10.24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

Installation view of 《Highlighting Korean Contemporary Artist IV》 ©
Busan Museum of Art
세계화(globalization)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누구나 관광객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본과 문화, 정보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오가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지만, 동시에 민족·지역·전통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이러한 양가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글로벌리즘(globalism)에
편승하면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에 놓이게 되고, 반대로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머무르면 세계 담론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딜레마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 《The Tourists》는 일본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Azuma Hiroki, 1971~)의 저서 『관광객의 철학』(觀光客の哲學, 2017)에서 착안했다. 아즈마는 동시대를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공존하는 “2층 구조”의 시대로 설명하며, 국경이나 뿌리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우연성을 만들어내는 주체를
“관광객(Tourist)”이라 정의했다. 관광객은
특정한 기원이나 목적에 머물지 않고, 타국과 자국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을 경험하며 새로운 관계와
만남을 형성하는 존재다.

Installation
view of 《The Tourists》 © Tang
Contemporary Art Seoul
이러한 개념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저서 『우편엽서』(The Post Card, 1987)에 등장하는 “오배(誤配, misdelivery)”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근대의 체계에서 우편은 언제나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길을 잃거나 지연되며 때로는 전혀 다른 수신자에게 도착하기도 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불확정성과
우연성 속에서 기존의 진리 체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철학적 가능성을 보았다.
진리와 정체성은 예정된
목적지에 단선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고 우회하는 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형성된다는 것다. 아즈마는 이를 확장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주체를 새롭게 사유하기
위한 틀로서 “관광객” 개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만남과 느슨한 연결은 교착 상태에 빠진 오늘날의 세계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동시대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깊이 연결된다. 그룹전을 접할
때 우리는 흔히 “작가명(b. 연도, 국가)”라는 표기를 통해 작가의 출생지와 나이를 확인하지만, 오늘날 예술가들이 겪는 복합적인 이동과 교류의 경험은 단일한 국가로 환원될 수 없다. 이주와 체류, 학업과 교류, 그리고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만남은 개인의 정체성을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로 확장시킨다. 《The Tourists》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전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Tourists》 © Tang
Contemporary Art Seoul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은 출생지나 국적과 같은 하나의 좌표에 고정되지 않는다.
대신 이동과 변용, 수용과 재해석을 거쳐 형성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전시의 일곱 작가는 각자의 궤적 속에서 ‘관광객’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기억, 유학과 체류의 경험, 낯선 도시에서의 이주, 그리고 SNS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그 여정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왔다.
《The Tourists》는 관람객들 역시 이 여행의 일부로 초대한다. 전시장에 모인 작품들은 단일한 기원에 고정되지 않고, 이동과 오해, 재해석을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관람객들 또한 이 과정에
참여하는 "관광객들"로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발신된 편지와도 같다. 그것들은
언제나 정확히 도착하지 않으며, 어떤 작품은 뜻밖의 친숙함을, 또
다른 작품은 낯설고 모호한 감정을 불러온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와 불완전성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관계가
발생할 것이다.
《The Tourists》를 통해 서울의 관람객들이 뜻밖의 만남과 느슨한 연결의
가능성을 품은 관광객들의 시선으로 작가와 작품을 마주하길 바란다. 짧지만 우연한 이 만남이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고 이어지는 순간을 열어 보이며, 오래도록 기억될 풍경으로 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