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선(b. 1996)은 도시와 공간 속에서 느낀 미묘한 불안과 진동을 탐구하며, 그 감각들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게 만드는지 주목한다. 특히 그는 바닥, 벽, 천장과 같은 물리적 요소들이 우리의 인식과 신체적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한다.
 
그가 불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공간은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고, 이는 작업에서 중요한 시각적 요소가 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불안감을 재경험하게 하는 설치 작업의 형태로 변모한다.


안진선, 〈Maps〉, 2017, 모래, 시멘트, 가변설치 ©안진선

안진선의 작업은 개인의 감각과 신체 주변의 물리적 요소를 혼동하면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그는 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이나 고속 버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이 심장박동 소리나 어지러움증과 교차되는 순간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때 작가는 이러한 불안을 단순한 부정적 감각으로 보지 않고, 관찰을 통해 흥미로운 지점으로 전환시킨다.


《Fluid Floor》 전시 전경(Boloc, 2022) ©안진선

그가 관찰한 장면은 진동, 떨림, 기댐, 마주봄, 쓰러짐의 형태로 재현된다. 대부분 현대인이 시간을 보내는 도시 공간에서의 경험을 관찰자 시점에서 포착하는 안진선의 작업은 도심 어디에서나 관찰되는 날것의 건축재를 이용해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 전시 전경(무음산방, 2023) ©안진선

2023년 무음산방에서 열린 안진선의 첫 번째 개인전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에서 작가는 사회적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을 바탕으로 제작한 설치로 이루어진 공간을 선보였다. 울렁이는 천과 이를 받치는 다리, 길고 단단하게 선 받침,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지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판의 배열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공사장이나 도로에서 본 풍경과 닮아 있었다.

안진선, 〈흔들리는 땅〉, 2023, 검은 천, 겔 미디엄, 자바라 다리, 가변설치 ©안진선

안진선은 도시에서 느낀 불안을 이처럼 일상에서 찾은 재료를 통해 표현했다. 도시라는 장소 안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불안을 도시에 놓인 특수한 재료에 대입해 상상하고, 이를 가볍고 쉽게 움직이는 소재로 치환함으로써 안정감이 부재한 불안의 감각을 살피고자 하였다.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 전시 전경(무음산방, 2023) ©안진선

아울러, 공간과 작업에는 시점과 무게에 관한 작가의 고찰이 반영되어 있었다. 이전 작업에서부터 안진선은 도시를 바라보는 위치의 높낮이를 조절해 관찰하는 시점을 옮기곤 하였다. 전시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에서 그는 고속버스에 탑승할 때 맞춰지는 눈높이를 작업의 시점으로 가져왔다.
 
지면에서 약 2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눈에는 광활한 공중이나 낮은 지대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새처럼 위에서 아래로 보는 광범위한 시야와 벌레처럼 아래에서 위로 고개를 들어야만 보이는 시야의 중간에서, 일상의 풍경에 절로 눈이 닿듯 편안한 거리감과 모든 것이 빠르고 거칠게 지나가는 속도감이 형성된다.


안진선, 〈흰 공〉, 2017 , 공, 고리, 나사, 낚시줄, 벽에 낚시줄로 고정 ©안진선

한편 재료의 무게는 공간과 작업이 지니는 안정감의 정도를 결정한다. 그의 작업에서 시멘트, 철, 나무 등의 건축 재료는 무게로 분류되어 작업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실제 도시에 있는 것과 동일한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고정형의 것과 조립형의 것 등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조합해 새로운 물체를 만든다.
 
이처럼 일상에 더욱 가까워진 시점, 이질적인 것의 조합은 안정감이라는 관념에 혼란을 야기하는 상태를 연출한다.


안진선, 〈지관 묶음〉, 2023, 지관, 화물차 고정 벨트, 가변설치(120 x 130 x 130 cm) ©안진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파편적인 모양들이 집결되어 안정감이 뒤틀린, 그로 인해 불안의 감각을 길러내는 하나의 장면이 되어 관객을 마주했다.
 
공간의 상하좌우 면적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곳에 놓일 것 사이의 거리를 계산한 뒤 소재와 크기, 위치를 결정한 물체들이 놓여 있었다. 가벼워 보이는 갈색 지관통, 시멘트와 철근의 색을 닮은 받침대, 회색 조의 도로를 흉내내는 천과 다리, 미끈하고 불투명한 함석판 등 도시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재료의 색과 형태는 이곳에 놓인 물체 위에서 섞이며 기존의 것과 조금씩 어긋난다.


안진선, 〈고가다리〉, 2023, 시멘트, 아이소핑크, 작업대, 철사, 합판, 15 x 160 x 60 cm ©안진선

반드시 튼튼해야 할 것들, 예를 들어 도시 곳곳을 이어주고 있는 다리나 철교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허술하게 건설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건축물이 곧 무너지는 상상을 하게 만들며 불안을 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굳건해 보이는 도시 안의 엉성하고 허술한 구조들을 연상케 하며 불길한 기시감을 만들어 낸다.
 
또 한편 공중에 설치된 작품이 흔들리는 장면 등은 흔들거리는 지하철 속에 서 있는 감각이나 멈춰 있음에도 도로 위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차량의 속도로 인해 몸이 흔들렸던 감각을 소환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불안과 진동의 순간들을 재현한다.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 전시 전경(무음산방, 2023) ©안진선

나아가 이 요소들은 공간 안에서 달달 떨리며 달칵거리는 소리를 내는 등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 낸다. 이는 마치 도심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음과 진동을 전시 공간 안에 옮겨온 것과 같은 인상을 남긴다.
 
이때 관객은 이러한 소음과 진동, 그리고 어긋난 물체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통과하며 불안의 흐름 속에 합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관객의 신체적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공간의 물리적 안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그 안에서 불안과 안정감을 동시에 경험하는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안진선, 〈모서리(챔버 ver.)〉, 2023, 합판, 가변크기©안진선

한편 안진선은 같은 해 챔버에서 열린 단체전 《Soild, Weak, Temple》에서 일종의 ‘임시-건축’ 상태를 가진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임시로 축조된 이 설치는 각진 모서리에 곡선의 조형을 더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다.
 
또한 지표로부터 부풀어 오른 공간의 감각은 고유의 무게와 질감을 지닌 나무 패널로 덧대어진다. 이때 나무라는 재료가 주는 단단한 질감은 부드럽고 고운 결의 표면으로, 그리고 단단히 고정된 듯 보이는 구조는 관객의 발걸음에 흔들리는 미세한 진동으로 전이된다.
 
관객의 신체적 움직임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땅과 벽에 기생하던 구조물은 생동하는 풍경의 일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른 작품이 놓이는 무대로 자리하면서, 조각-설치-공간의 지위를 뒤섞는다.


안진선, 〈도시 모형 실험〉, 2024, 혼합재료, 벽면 선반 위 가변설치 ©안진선

그리고 2024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길드는 서로들》에서 안진선은 도시 안의 비가시적인 요소들을 시각화 하거나 도시 속에서 발견한 형태들을 새로운 관계망 안에 엮어 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도시 모형 실험〉(2024)은 도시의 풍경에서 발견한 형태를 다양한 재료의 결합으로 실험한 작업으로, 작가가 인식한 도시를 분화하고 확대하여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서의 도시 공간을 보여준다.


《길드는 서로들》 전시 전경(남서울미술관, 2024) ©안진선

그리고 또 다른 작품 ‘모서리’ 시리즈는 도심 속 간과되어온 공간에 주목을 유도한다. 나아가 이 작업은 전시공간뿐만 아니라 복도에 설치된 다른 참여작가 도이재나의 작품 〈Bricks〉와 함께 설치되어 공용 공간에서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Ringing Saga》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안진선

한편 2025년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단체전 《Ringing Saga》에서 선보인 안진선의 신작들은 종로 일대를 천천히 걸으며 불안의 감각을 추동하는 장면들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작가는 노쇠한 도시의 생애주기에 따라 부서지고 지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건축의 풍경을 관찰하며, 마치 흔적을 감추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진 건축 자재, 쓸모를 다한 것으로 판명되어 내쫓긴 가구들,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대기의 장막들에 주목했다.


안진선, 〈매트리스〉, 2025, 슈퍼싱글 라텍스 매트리스, 매트리스 커버, 가변설치(65 × 160 × 120 cm) ©안진선

이러한 도심 속 요소들은 그의 시선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옮겨졌다. 〈책장〉(2025), 〈서랍장〉(2025), 〈매트리스〉(2025) 등 거리 위 사물의 이름을 전유한 신작들은 그 이름이 함축한 본래의 용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들은 전시장이라는 임시 거처 안에서 도시 재건축의 풍경을 직조한다. 그리고 관객은 그 안에서 익숙함과 낯섦, 기시감과 미시감 사이를 진동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Ringing Saga》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안진선

이처럼 안진선은 도시를 천천히 유영하며 관찰한 장면을 토대로 그 안에서 느낀 미묘한 불안과 진동을 공감각적인 설치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이때 그는 도시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건축 자재를 실험적으로 활용하며, 무겁고 고정된 재료와 가벼운 재료를 대비시켜 공간 속 긴장감을 극대화 한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게 하며, 도시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각과 경험은 확장된다.

 ”나는 도시와 공간 속에서 느낀 미묘한 불안과 진동을 탐구하며, 그 감각들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게 만드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바닥, 벽, 천장과 같은 물리적 요소들이 우리의 인식과 신체적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한다.”    (안진선, 작가 노트)


안진선 작가 ©안진선. 사진: 배소정

안진선은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학사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서울 무음산방에서 첫 번째 개인전 《울렁거리고 움직이고 멈춘》을 가졌다.
 
또한 작가는 《(non)Blind-Spot》(PS CENTER, 서울, 2025), 《Ringing Saga》(두산갤러리, 서울, 2025), 《Piece of Us》(도잉아트, 서울, 2024), 《길드는 서로들》(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24), 《Soild, Weak, Temple》(챔버, 서울, 2023), 《Fluid Floor》(Boloc, 서울, 2022), 《조소된 건설》(SeMA 창고,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