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화보》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2) ©OCI미술관

귀를 귀울여도 매번 알아듣지 못할 말로 바뀌는 것이 있었다. 때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다 보니 그것과의 거리가 아득해진다. 귀양살이 같던 날들은 스스로의 궤적을 살피게 했고, 내가 나에게서 내놓을 것이 마련되자 대립 면들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었다.

황규민은 동양화단 전체를 흐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과거에 누적된 기술을 익히는 것, 평범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하는 것, 마치 대를 잇는 대단한 행위처럼 자칫 비범해지는 것이 그것이었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과거 답습의 현장에서 참고대상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면 되는 걸까.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슬며시 곤두섰고 내세울 수 있는 대안을 자신의 작업 안에서 찾기로 했다.

《황씨화보》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2) ©OCI미술관

고유한 가치가 있는 것, 소위 클래식이라 불리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닌 지금도 유효한 과거의 것이어야 한다. 《황씨화보》는 『개자원화보』를 비롯한 과거 화보들의 형식을 빌어 작가 본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반추하기에 유효한 위치에 놓인다. 사상과 매체에 기반한 담론이 아닌 서화의 형태를 정면으로 마주해 형상이 있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영지(OCI미술관 큐레이터)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