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매가 머물던 자리》 전시 전경(상업화랑, 2023) ©상업화랑

서시

백야를 꿰뚫는 날갯짓이 입 안에 맴돈다. 세계의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흰 매가 머물던 자리는 누군가 진실을 고백하는 속삭임, 눈가에 오래된 소원을 묻는 회랑이다. 

《흰 매가 머물던 자리》 전시 전경(상업화랑, 2023) ©상업화랑

주형준의 회화는 깨어서도 꿈꾸는 자의 시선으로 어젯밤 길고 긴 복도 끝에 다다른다. 아득한 바닥에서 사라지는 기억 한줌을 쓸어담는 두 손이 세 동물의 움직임과 마주한다. 검고 회하고 흰 몸, 파충류와 조류와 어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몸이 되어 회랑 내외를 가로지르며 솟구친다. 비와 피가 구분 없이 뒤섞이는 농묵과 중묵과 담묵은 꿈(夢)으로 꿈된 세계(理想鄕)를 건설하는 모래이다.

누군가 기도하는 소리를 따라 열주(列柱)와 벽이 굽이치는 가운데 몽상가의 감은 눈은 거짓된 광배를 왕관으로 쓴다. 기이한 회화에서 연극의 주인공은 광대인가, 성인인가. 모래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발 밑에 꿈이 바스락거린다. 꿈을 모태 삼아 다시 태어나는 자는 별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

《흰 매가 머물던 자리》 전시 전경(상업화랑, 2023) ©상업화랑

울창한 숲속 컴컴한 그늘에 불시착한 회화는 나뭇가지 너머 휘황한 해질녘을 고독한 눈으로 바라본다. 주형준이 작은 기도실을 지은 지 어느덧 십년이 흐른 나날, 그의 은신처에 어둠이 밀려올 즈음 별 하나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숨겨진 안뜰에서 느슨한 형식으로 노래하는 별은 사람이 되고픈 오래된 소원을 고백한다. 

/글: 백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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