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he gradient》 © Noon Contemporary

하나의 색에서 다른 색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점진적인 효과를 그라디언트(Gradient)라고 한다. 색과 명암이 경계 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은 색 자체의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며 안정감을 준다. 석양이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에서부터 그래픽 디자인 툴의 색상 편집기에 이르기까지, 그라디언트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이는 현대 디지털 매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추상 회화에서도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이우환을 비롯한 작가들의 영향과 맞물려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the gradient》에서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성낙희, 손지형 작가의 회화에 나타나는 그라디언트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성낙희 작가의 추상 작업은 다채로운 색채와 유기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하며, 캔버스의 표면 위에서 붓이 지나간 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부드럽게 변화하는 그라디언트가 연출된다. 불규칙적으로 결합된 형형색색의 요소들은 꿈틀대며 서로를 파고들고 밀어내듯 유기적인 리듬감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시각적 변주로 가득 찬 독특한 화면은 작가가 어린 시절 보았던 사우디아라비아 카펫의 이국적인 색감부터 SNS 피드의 그리드 구조에 이르기까지 삶 속의 크고 작은 시각적 경험에서 비롯된 흔적이다.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을 나타내는 〈Sequence〉와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미끄러지듯 옮겨가는 운음을 뜻하는 〈Portamento〉와 같은 제목은 색과 형태의 움직임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역동적인 생명력과 미래주의적 인상이 공존하는 성낙희 작가의 그라디언트는 부드러운 동시에 날카롭다. 

손지형 작가는 다양한 재료로 레이어를 쌓고, 표면을 파낸 후 다시 채워 넣으며 작업한다. 점진적인 색채와 형태의 변화를 통해 그림과 그림 밖의 세계를 연결지으며 추상적 사건을 펼쳐낸다. 고유한 질감을 가진 색면은 레이어를 이루며 중첩되고, 기하학적 형태들이 층을 이루며 단차를 만든다. 색과 형태는 화면 너머에서 표면으로 서서히 떠오르듯 점차적인 그라디언트의 효과를 자아낸다.

위에서 내려다본 경기장이나 체스판처럼 수평과 수직, 대각선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평온하고 정적인 인상을 주지만, 비균일한 표면의 질감은 자연의 촉감을 연상시킨다. 이는 〈덤불〉, 〈잎맥횡단〉과 같은 제목과 어우러져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림 위로 희미한 형상을 투영하도록 한다. 손지형 작가의 그라디언트는 화면을 구획하며 시선의 방향을 제시한다. 색의 변화를 따라 표면의 질감을 훑어 내려가다 보면 그림은 새로운 감각을 불러온다. 

색채의 스펙트럼에는 경계가 없고, 시작과 끝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한다. 그라디언트 자체에 내재된 다양성만큼이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수많은 변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낙희, 손지형 작가의 회화에서 색과 형태는 서로 다른 속도와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우리의 시선은 그 흐름을 따라 유영하며 저마다의 울림을 마주한다. 이때 그라디언트는 단순한 색의 변화를 넘어, 경계를 지우고 감각을 확장하는 새로운 추상적 사건이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