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반(b. 1990)은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인근 지역에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가 접경 지역에서 발견되는 경계의 구조와 그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탐구해 왔다. 그는 국경 정체의 복잡성과 생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풍경화, 스토리텔링, 역사 연구를 활용하며, 회화,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특정 장소의 지역적 맥락을 포착한다.


이해반, 〈민간인 통제 구역 2〉, 2012, 캔버스에 유채, 68x87cm ©이해반

이해반은 2012년부터 DMZ의 풍경을 그려왔다. DMZ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이후 남한과 북한 사이에 생긴 비무장지대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병력과 군사 시설 배치를 금지한 구역을 의미한다.  

작가의 초기 DMZ 풍경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었으나 점차 표현주의적이고 상징적인 표현 방식으로 변화해 갔으며, 오브제의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해반, 〈707OP에서 본 금강산〉, 2019, 캔버스에 유채, 193.3x112.1cm ©이해반

DMZ라는 공간은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정학적 장소로, 사진촬영이 제한되거나 금지된 곳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그린 DMZ의 풍경은 장소를 경험한 이후 내면에 남은 주관적 기억에서 비롯된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은 작가의 내면(기억과 마음)에 감정의 형태로 잔존해 있던 것들이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안진국 비평가는 “이해반이 그린 그림은 사실과 추상이 뒤섞인 감정적이며 진실한 물질화된 풍경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이해반, 〈Goliaths〉, 2018, 나무 패널에 아크릴, 금속 진자, 자석, 배터리, 가변크기 ©이해반

그의 첫 개인전 《Goliaths, Tanks》(평화문화진지 갤러리, 2018)은 과거 대전차 방호 시설이었던 작업실에서 밤새 작업을 하던 중 들린 ‘쿵’하는 소리에 대한 작가의 노트를 바탕으로 한 가상의 텍스트와 조형적인 회화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이해반은 과거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장소에 머물며 경험한 풍경의 층위를 조각적 프레임의 회화 작업에 중첩시켰다. 이와 함께 반복적인 시계 초침 소리와 공명하는 오브제의 움직임을 뒤섞으며, 현재의 평온함 사이로 분단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잠재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멀티미디어 설치를 구성하였다.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 전시 전경(갤러리룩스, 2020) ©이해반

이렇듯 이해반은 접근이 제한된 국경 지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곳에서 경험한 작가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풍경을 극대화하여 표현해내고자 했다.  

2020년 갤러리룩스에서 열린 개인전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은 금강산이 내려다 보이는 군사지역 707OP를 배경으로 한다. 2018년 작가는 국방부 행사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707OP에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한 군인이 대형 망원경을 통해 눈앞에 둘러싼 금강산을 확대하여 모니터에 보여주었다.

이해반, 〈금강산〉, 2020,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41.5x375.5cm ©이해반

이때 이해반은 크게 확대된 북측의 금강산 풍경 속에서 검은 구멍(벙커)들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통일과 아름다운 자연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산 속에서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벙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작가는, 그 양가적인 풍경을 현장에서 드로잉한 다음 회화로 제작하였다.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 전시 전경(갤러리룩스, 2020) ©이해반

현장 드로잉과 기억에 의존해 그려진 대형 회화 주변으로는 작은 조각들로 분할된 추상 회화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모니터와 망원경을 통해 본 경험과 흐릿한 기억의 풍경을 포착하려는 시도였다. 자연 풍경 곳곳에 자리한 어두운 사각형들은 인간의 발길이 끊긴 순수한 자연의 장소이자 가장 정치적인 풍경임을 드러내는 은유로서 작동한다.

《보더리스 사이트》 전시 전경(문화역서울284, 2021) ©이해반

2021년 ‘Border_less.site’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는 다른 작가, 건축가, 연구자, 그리고 큐레이터들과 함께 리서치와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 《보더리스 사이트》는 신의주-단둥 지역(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역)에 대한 사회학, 문화인류학, 건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출발했다.

《보더리스 사이트》 전시 전경(문화역서울284, 2021) ©이해반

작가는 이들과 2019년에 북한의 영공과 영토를 피해서 국경 지역으로 답사 여행을 떠났다. 그 후 이해반은 압록강에서 중국 국기를 매단 배 위에서 관광객 대여용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행위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DMZ 전망대에서 대형 군사용 망원경을 통해 금강산을 바라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경계를 관찰했던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러한 경계에 대한 관찰 행위가 마치 작업실에서 누드모델을 섭외해 벌거벗은 대상을 관찰하고 크로키 하던 창작 과정과 흡사하다고 보았다. 이해반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의 시선을 통해 제작된 경계에 대한 풍경들은 전시장에 설치되며 관객에 의해 다시금 새로운 관찰 대상이 되었다.

이해반, 〈Buffet Zone〉, 2021,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57x955.5cm ©이해반

이후 이해반은 경계이자 완충 지대인 곳들을 파노라마의 형식으로 표현한 거대한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1년 SAGA에서 열린 개인전 《Buffer Zone》은 공간을 감싸는 대형 파노라마 회화 작품과 오브제 설치를 통해 현실의 완충 지대를 캔버스 프레임 안에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화면 너머로 확장시켜 전시 공간 자체를 완충 지대로 전환시켰다.  

또한 본 전시를 통해 작가는 본격적으로 한반도의 DMZ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유라시아의 다른 접경지역을 표현의 대상으로 하여 ‘완충 지대’라는 다층적인 개념을 다루기 시작했다.


《Buffer Zone》 전시 전경(SAGA, 2021) ©이해반

완충 지대는 양쪽의 힘이 완화되는 공간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장소이다. 동시에 그곳에는 두터운 경계선이 자리하며 양쪽의 긴장이 감도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 곳은 다양한 동식물의 터전이 되어 왔다. 그런 완충 지대에 인간의 형상은 흔치 않지만, 인위적인 형상은 종종 출몰한다. 가령 알록달록 눈에 띄는 삼각형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조형물들은 서로 다른 영토에 속한 인간들이 그곳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지뢰를 심어 놓은 영역이거나,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을 표시한 것들이다.


《Buffer Zone》 전시 전경(SAGA, 2021) ©이해반

전시 《Buffer Zone》에서 이해반은 이러한 완충 지대에 대한 감각의 풍경을 전시장 전체로 확대하여 펼쳐 놓았다. 파노라마는 하나의 시점을 상정하는 풍경화와 달리, 여러 시점을 이어 붙여 만들어짐에 따라 관객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Buffer Zone》 전시 전경(SAGA, 2021) ©이해반

또한, 《Buffer Zone》에서는 하나의 선에 놓인 양극단에 긴장감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힘의 관계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서로를 향해 만들어 놓은 경계, 나아가 인공과 자연의 경계, 혹은 이미지와 세계 사이의 경계, 때로는 서로 다른 시점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다른 물질들 사이의 경계까지, 작가는 이 다층적인 경계의 감각을 보다 확장된 공간의 차원에서 공유하고자 했다.  

관객은 여기서 팽팽한 긴장감 사이의 줄을 탈 수도, 자연 속 동식물들처럼 그 사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닐어 볼 수도 있었다.


이해반, 〈Battleground Group lll : Figments of melancholic soil〉, 202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243x800cm ©이해반

한편, 2024년 암스테르담과 서울에서 한 달의 시차를 가지고 열린 개인전 《Battleground》에서 이해반은 전쟁이 현재의 삶과 연결되는 구조를 들여다 보고자 했다. 전시는 탐미적 수사가 감도는 시각 장치를 휘장처럼 두른 채 전쟁터가 지닌 불길한 함의를 길어냈다.  

전시는 전쟁을 지시하는 형식적 요소가 부재한 대신, 곡면 형태의 거대한 회화와 투박한 도자기, 늘어진 직물이 모여 공간을 아우른다. 재현보다는 대상을 왜곡, 과장, 미화하는 상상이 개입된 이미지들은 특정한 전쟁터의 외형이 아니라 전란의 분위기를 담지한 경계 지역의 관념적 이미지를 옮기고 있었다.

이해반, 〈Battleground Group lll Nr.01: Oh dear〉, 202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160x120cm ©이해반

이때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유려한 자연 풍경을 표방한 표현들이다. 이는 잠시 싸움이 멈춘 지역, 즉 완충 지대의 속성과 닮아 있었다. 무력 교환이 없는 중립 상태, 충돌 완화, 안전 보장이 되는 영역, 때로는 모든 인공물이 배제되고 자연의 자립적인 양식이 피어나는 그곳은, 사실 갈등을 전제하기에 가능한 장소다.  

전시장에서는 꽃 같은 폭발, 노을 같은 연기, 산세 같은 비무장지대, 혹은 그 반대의 풍경이 겹쳐졌다. 즉, 전시 《Battleground》는 자연이 스스로 정립한 아름다운 풍경을 내재하는 동시에, 인간 심리에 잠재된 불안을 발동시키는 장소로서 완충 지대의 역설을 현현하였다.


《히든 블루밍》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5) ©금호미술관

그리고 2025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히든 블루밍》에서 작가는 비무장지대의 자연 속 ‘보이지 않는 경계’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을 중심으로 폭발의 이미지를 담은 풍경 회화 연작과 벽화,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폭발의 이미지를 통해 혼란과 더욱 직면하는 동시에,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이러한 혼돈이 있음에도 평온한 중립을 욕망하는 심리적 완충지대를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히든 블루밍》 전시 전경(금호미술관, 2025) ©금호미술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경계의 긴장감은 회화 속에서 은유적인 표현으로 고요히 자리하고 있으며, 화면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오렌지 빛은 일종의 시각적 경고이자 경계의 징후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완충 지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속성을 시각화 하며, 경계 지역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태도에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이해반의 작업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DMZ라는 특정한 경계 지역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물리적, 심리적 경계까지 아우르는 완충 지대의 확장된 개념으로 나아갔다. 사실과 추상이 뒤섞인 그의 회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시각화 하고 물질화 하며, 그 안의 모순과 긴장을 예술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감각하게 만든다.

 ”나에게 예술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제3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익숙한 세계와 낯선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다. 제3의 눈은 나의 번역, 관점, 태도, 환상이다.”   (이해반, 작가노트) 

이해반 작가 ©이해반. 사진: Zihan

이해반은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화 학사를, 헤이그 왕립 예술아카데미에서 Artistic Research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히든 블루밍》(금호미술관, 서울, 2025), 《Battleground》(인사미술공간, 서울; Bradwolff Projects, 암스테르담, 2024),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갤러리룩스,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The Mutable Line》(지갤러리, 서울, 2025), 《Soft Intimacies》(Stroom Den Haag, 헤이그, 네덜란드, 2024), 《I Still Care》(Eurocenter Amsterdam, 암스테르담, 2023), 《A scenic route to self》(NEST, 헤이그, 네덜란드, 2022), 《보더리스 사이트》(문화역서울284, 서울, 2021), 방콕비엔날레 《Escape route》(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BACC), 방콕, 2020), 《DMZ》(문화역서울284,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해반은 제22회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되었으며,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서울과 헤이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