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진(b. 1992)의 작업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감각이 기술과 환경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는지 주목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청력을 잃고 인공와우라는 보철 기계 장치를 이용해온 작가는, 실제 세계와 그 사이에 끊어진 정보의 여백을 새로운 조각이나 형태로 메우는 회화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홍세진, 〈점, 점, 점〉, 2019, 캔버스에 유채, 112.1x162.2cm ©홍세진

홍세진은 “감각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환경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는 과정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는 이처럼 온전히 합쳐지지 않고 어긋나고 겹쳐지는 감각의 구조를 기하학적 요소들과 구체적인 공간과 평면에 대한 이미지로 탐구한다.
 
그의 회화 속에는 공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계 부품이나 산업적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는 인공와우라는 기계 장치를 통해 세상의 소리를 감각하는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감각이 기술 장치를 거치며 나타나는 단절과 왜곡, 지연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홍세진, 〈잎사귀와 조각〉, 2019,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홍세진

동시에, 이러한 인공적인 풍경과 요소들 사이에 자연적 대상들이 겹쳐 놓이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안의 공간, 사물 등과 같은 인공물과 세포, 선, 도형, 식물과 같은 자연물의 시각적 편집을 통해 감각적 경험의 온전성으로부터 비켜서 있는 푼크툼(punctum)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하며, 이를 통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비언어’가 주는 발화 지점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홍세진, 〈경기장〉, 2019, 캔버스에 유채, 227x182cm, 《선명한 소란》 전시 전경(신한갤러리, 2019) ©신한갤러리

예를 들어, 2019년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선명한 소란》에서 홍세진은 자신 주변에 놓인 사물과 장소를 하나의 감각이 아닌 여러 감각기관들을 더듬어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캔버스 화면 안에 다시금 차례차례 풀어낸 회화들을 선보였다.  

당시 그의 회화는 신체 안으로 이식된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통해 듣는 불분명한 세상의 소리와, 그에 반해 직관적으로 감각하는 시각의 세계 사이의 간극과 상호작용을 다룬다. 언뜻 평범한 풍경화로 보이지만, 작품 안에 비재현적인 요소들은 감각하는 세계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지점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선명한 소란》 전시 전경(신한갤러리, 2019) ©신한갤러리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을 살펴보자면, 선풍기나 물탱크와 같이 회전하는 물체와 경기장이나 그리드 바닥 형상이 줄곧 나타난다. 이러한 일상적인 기계 장치들은 전력이 흐르지 않거나, 수조에 물이 차 있지 않을 때 소리 없이 정지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그로부터 보청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동안 청각이 정지한 듯한 감각을 연상한다. 

한편, 운동장이나 경기장 바닥의 선들은 어떠한 사회적 규칙을 지시한다. 어린 시절 작가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지시하는 금지와 허용의 기호를 처음 이해했던 순간 이래로, 선은 혼란스럽고 위험한 세계의 사물들에 규칙을 부여해 불안정한 주체에서 일시적이나마 안정감을 부여하는 기호가 되었다.


《선명한 소란》 전시 전경(신한갤러리, 2019) ©신한갤러리

이와 함께 전시된 설치작품 〈바늘의 끝〉(2019)은 청력보조 인공기관이 제작되는 3D 프린터 기계 내부를 상상하며 제작되었다. 작가는 그 내부를 상상하고, 이를 일상적 물건들로 구현했다. 그리고 작품 가운데에는 완결되지 않은 하얀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 물체와 함께 이루어진 작품의 공간은 모든 종류의 언어가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불투명성과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홍세진, 〈접근 이미지〉, 2021, 캔버스에 유채, 각 30.5x30.3cm ©홍세진

그리고 2021년 OCI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숨은 언어들》에서 작가는 기하학적이고 운동성 있는 도형, 추상적인 공간, 그리고 이것저것 겹치고 사물의 조각들이 쪼개져 있는 낯선 풍경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그의 회화 속에는 을지로 철제공장과 그 주변 풍경에서 발견한 사물들, 그리고 작가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형상들이 뒤얽혀 나타난다. 화면 속 요소들은 직선적인 것과 곡선적인 것, 매끄럽고 인공적인 색면과 기하학적 도형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낯선 감각의 틈을 만들어 낸다.


홍세진, 〈노이즈〉, 2021, 캔버스에 유채, 194x259cm ©홍세진

작업의 배경이 된 을지로 철제공장은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이 감각하는 세상과 유사하게 다가왔다. 그에 따르면, 청력 보조장치를 통해 듣게 되는 세상의 소리는 자연스럽기보다는 인위적인 무엇으로 들린다고 한다. 이러한 청각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차갑고 딱딱한 촉감과 이미지에 더욱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다.


홍세진, 〈크고 작은 선〉, 2021, 캔버스에 유채, 112.3x162.3cm ©홍세진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화면 속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루는 낯선 조합과 구성 또한 작가의 청각 환경과 닮아 있다. 작가는 20여 년간 청각 보조장치를 사용하면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이 나온 기기로 교체할 때마다 소리의 환경이 업데이트되어 새로운 소리들을 획득했다고 말한다. 세월의 변화에 따른 보청기 기술의 발달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작가는 ‘소리에 채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철 장치를 통해 귀를 변형하고 확장한 작가에게 있어서 소리는 마치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조작이 가능한 정보이자 재료처럼 인식되어 왔다. 소리를 채널로, 환경을 소리뿐 아니라 여러 감각의 다채널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면 홍세진이 구축한 복잡하고 때로는 부조리해 보이는 화면의 구성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홍세진, 〈나무에게 물 주는 법〉, 2021, 캔버스에 유채, 162.3x130.2cm ©홍세진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잡지나 인쇄물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함께 놓고, 겹치거나 잘라내어 화면을 구성한다. 그 결과, 물탱크가 기대어선 건물 안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심어지고, 철근 재료가 벽에 기대어선 실내 바닥에 텔레비전이 나란히 놓이는 등 익숙한 사물들이 이질적으로 조합된 낯선 화면이 만들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감의 투명도, 물감의 흘림, 덮음, 긁어냄 등을 통한 세부적인 질감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형상 뿐만 아니라 질료적으로도 다양한 ‘채널’의 분리와 조화를 포착해내며,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차갑고 낯선 감각에 부여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탐구해 나간다.


홍세진, 〈도형 풍경〉, 2021, 캔버스에 유채, 181.8x227.3cm ©홍세진

또한,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 연작 ‘도형 풍경’에서 작가는 사물을 구성하는 개성적 특징들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단순한 도형 등의 생략된 형태로 그려냈다.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감각 정보와 실제 소리 정보 사이의 간극을 회화로 채워가던 작가는, 청력 보조기술의 발전이 이 확실한 거리감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스스로 그려내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홍세진은 두 정보 사이는 여백이 아닌 접힘, 즉 주름으로, 소실되거나 생략된 언어들이 그 겹 사이에 들어차 있다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언어들을 포착해 도형이나 단순한 선의 이미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직선》 전시 전경(SeMA 창고, 2023) ©서울시립미술관

최근 작업에서 홍세진은 더욱 평면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SeMA 창고에서 열린 개인전 《일렁이는 직선》에서 작가는 자연에서 비롯된 유기체와 공장에서 쓰이는 인공적인 기계 사물이 모여 만들어진 이질적인 풍경의 모습을 도형의 형태로 변환하고 질감 기법을 덧대어 평면성을 강조한 회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홍세진, 〈도는 선〉, 2023, 캔버스에 유채, 45x45cm ©홍세진

이러한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이미지들을 콜라주 한 뒤 관심도의 이완과 긴장을 통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평면성을 보다 강조하고 즉흥성을 통한 우연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또한, 최근 회화에서는 긁어내는 표현들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개별 소리의 다양성을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시각화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홍세진, 〈Triangular Wave〉, 2024, 캔버스에 유채, 180x165cm ©홍세진

이렇듯 홍세진의 회화는 감각의 순간성, 불확실성, 오류 가능성 등 그 ‘빈 공간’을 상상하고, 그 속에 가려진 언어들을 드러낸다. 작가는 그러한 감각의 어긋남과 틈새에서 “말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보이는 언어의 존재”를 찾아내고, 그만의 감각으로 색을 입히고 형태를 재구성하여 자유롭게 표현해 나간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 속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감각-인식-존재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감각을 지각하는 신체 언어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감각하여 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홍세진, 작가 노트) 


홍세진 작가 ©키아프 서울

홍세진은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과 석사 졸업 후 동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개인전으로는 《교차점》(보안1942, 서울, 2024), 《일렁이는 직선》(SeMA 창고, 서울, 2023), 《잡힐 듯 말 듯》(갤러리밈, 서울, 2022), 《숨은 언어들》(OCI미술관,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그녀가 결코 쓰지 않은 시처럼》(초이앤초이 갤러리 쾰른, 쾰른, 2025), 《프리즘》(상업화랑, 서울, 2025), 《몸-짓하다》(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4), 《튜링테스트》(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2), 《Gravity Shower》(N/A, 서울, 2021), 《무무 (MUMU)》(플랫폼엘, 서울,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홍세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등 주요 레지던시를 거쳤으며, 2025년에는 ‘키아프 하이라이트’ 세미파이널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