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해(b. 1994)는 신체라는 장소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규칙들, 그리고 이것이 발생시키는 몸의 정동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써 실험하고 탐구한다. 작가에게 몸은 기술을 통해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대상으로 존재하며, 그는 AI, 카메라, X-ray와 같은 매체적 장치를 활용해 신체를 이미지로 변환하거나 그것을 분절하고 사물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Surge Analysi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1) ©갤러리175

스스로를 “지금 시대의 신체라는 장소를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작가”라고 소개하는 장영해는 초기 작업에서 폴댄스와 페어 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를 통해 섹슈얼리티의 규칙이 생산하는 몸의 특정 행동 양식에 주목하고 이를 재구성해 왔다.  

특히 작가는 어떤 롤플레잉을 통해 몸이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이 되기도 하고, 몸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인해 몸이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남의 것이 되기도 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장영해, 〈I want to die because I want to touch aono / I want to hold aono so badly I could die〉, 2021, 단채널 영상, 14분 43초. ©장영해

예를 들어, 퍼포먼스 작업 〈I want to die because I want to touch aono / I want to hold aono so badly I could die〉(2021)은 퍼포머들의 페어 피겨 안무와 책 낭독을 통해 신체에 각인된 성차 강박적 리듬, 믿음과 지각의 긴장을 드러내며 섹슈얼리티의 관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2023년 샤워에서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 작업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은 두 퍼포머가 피아노로 연주되는 2000~2010년대 여성 팝 아티스트의 음악에 맞춰 번갈아 가며 지칠 때까지 폴 댄스를 이어가고, 중계자가 옆에서 그 자세를 중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장영해,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 2021, 퍼포먼스. ©장영해

작품의 제목은 퍼포머의 자세와 연결된다. 떨어진다(fall), 뒤집는다(invert), 훅을 건다(fronthook)처럼 동작을 설명하거나 천사(angel), 전갈(scorpion)처럼 동작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단어들로, 퍼포먼스를 보는 관객들은 실시간으로 그 동작을 제목과 맞춰보게 된다. 그러나 퍼포머의 폴댄스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행동이 풀어짐에 따라 제목과 동작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장영해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몸을 글이나 이미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해석할 때 무엇이 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고 설명한다.

장영해,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 2021, 퍼포먼스. ©장영해

그리고 이 작업에서 ‘폴댄스’라는 장르는 기존 섹슈얼리티의 재현을 전복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섹슈얼리티의 규칙 속에서 폴(pole)은 남근을 상징하며 스트리퍼가 그 주위를 도는 행위를 통해 성적인 은유를 재현해 왔다면, 긴 시간 동안 남녀 폴 댄서가 번갈아 가며 춤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남근 주위를 도는 여성의 재연이 어느 순간 전복됨으로써 주체성의 위치가 변화하게 되고, 전통적인 섹슈얼리티의 규칙이 와해되기 시작한다.

장영해, 민혜인, 〈Black Maria〉, 2023, 퍼포먼스 ©윈드밀

나아가 2023년 장영해는 작가 민혜인과 협업한 〈Black Maria〉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포르노그래피라는 사회적 규칙이 광학기구와 어떻게 만나는지 탐구하였다. 작품의 제목인 ‘Black Maria’는 1893년 토마스 에디슨과 윌리엄 K. 딕슨이 고안한 최초의 이동식 영화 스튜디오로, 본 작업은 에디슨의 블랙 마리아를 무대로 인용한다.

장영해, 민혜인, 〈Black Maria〉, 2023, 퍼포먼스 ©윈드밀

자연광 아래 야외 촬영이 주로 이루어지던 당시, 에디슨은 조명과 세트를 철저히 인위적으로 조성한 스튜디오에서 유명 보드빌 쇼와 스포츠맨, 무용수, 곡예사들의 30초 분량의 공연들을 담았다. 이러한 광학 세트에 담긴 신체들은 상영과 비지니스라는 목적 하에 포르노그래피의 규칙이 적용되는 등 자극적인 이미지들로 담겨지곤 했다.  

장영해와 민혜인은 같은 무대와 동일한 공연 시간 위에 동명의 서로 다른 공연을 동시에 그리고 각자 올렸다. 두 공연은 그들이 사용하는 인공 광원의 역할과 출처를 각기 다르게 발견하며, 블랙 마리아라는 광학 세트로부터 서로 다른 인용을 감수한다.

《Glove box》 전시 전경(얼터사이드, 2024) ©얼터사이드

한편, 2024년 얼터사이드에서 열린 개인전 《Glove box》에서 장영해는 ‘의학(醫學) 아래에 놓인 몸’을 다루면서 현대의학이 몸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를 탐구했다. 이러한 작가의 새로운 관심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취된 몸 또는 코르푸스(corpus, 몸체)에 대한 고민에서 이어진 것이었다.  

전시 제목인 ‘글로브 박스(Glove box)’는 장갑을 통해 인큐베이터 속 격리된 대상을 만질 수 있게 만든 밀폐 컨테이너를 의미한다. 장영해는 이 글로브 박스가 현대의학의 위계 안에 놓인 몸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보았다.

《Glove box》 전시 전경(얼터사이드, 2024) ©얼터사이드

장영해는 격리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인 글로브 박스를 현대의학에 대한 은유로 삼으며, 그 통제 하에 놓인 마취된 몸이나 죽은 몸의 이미지를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지, 실제 죽은 몸을 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꾸려진 전시 《Glove box》에서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부서지거나 무너지는 와중에 포착된 신체와 물건 등으로, 본래의 작품 형태가 아닌 보이지 않는 작용들이 이미 일어나 버린 이후의 풍경이었다. 가령, 그 안에서는 고양이의 형상이 계속해서 무너지고(〈Cat〉), 현실의 벌레는 3D 렌더링 이미지로 열화되었다가 되살아나길 반복한다(〈Insect looping video)〉. 

장영해, 〈Ray〉, 2024, 단채널 영상, 컬러&흑백, 스테레오, 13분. ©NeMAF

영상 작품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 1S34008AP, F010122011964, .04. 0*8. 5mm〉에서는 죽은 몸이, 혹은 그렇다고 가정된 비가시적인 존재가 스크린 밖 카메라의 몸체를 통해 시점의 주체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영상은 심폐소생술의 긴박하고도 격한 움직임과 화장된 유골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일상적인 동작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동시에, 비신체로서 유해에 남겨져 있는 티타늄 치아의 행적을 되짚어가듯 수술 당시의 현장을 복기하는 가운데 구강 속 가득 고인 붉은 피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편, 또 다른 영상 작품 〈Ray〉는 술에 취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편의 감정적인 소동극을 다루며 욕망의 구조를 그 몸 내부를 비추는 X-ray 이미지와 교차한다.

장영해, 〈3〉, 2024, 퍼포먼스 ©장영해

이후 2024년 LDK(구 대사관저)라는 공간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작업 〈3〉에서 작가는 미국 경찰에서 통용되는 ‘21피트 규칙’을 경유하여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와 현상들 사이 거리(감)의 문제를 다루었다.  

장영해는 이 퍼포먼스에서 한밤중 텅 빈 저택을 무대로 삼으며, 그 공간에 촬영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집안을 오후 3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창밖에서 야구공과 같은 작은 구체가 시속 100km/h가 넘는 속도로 들어오는 장면을 연출하였는데, 그 물체가 방바닥에 떨어지며 훼손되는 순간 그 정체가 레몬임을 냄새로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장영해, 〈3〉, 2024, 퍼포먼스 ©장영해

시간대를 바꾸는 인공 조명, 야구공을 가장한 레몬과 냄새로써 그 정체가 시차를 두고 드러나게 되는 상황, 한밤중 빈 저택이라는 설정 등은 현실과 허구, 그리고 동시대에 벌어지는 학살과 폭력을 포함한 여러 시차를 가진 사건들이 뒤섞이는 불확실한 시간대의 조건들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실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이 작업은 2025년 아르코 대극장의 블랙박스 공간으로 옮겨지게 된다. 샤막과 조명을 이용해 극장을 거대한 창문처럼 차용하며, 현실과 허구 사이를 맴도는 환영을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장영해, 〈annie, cobalt〉, 2025, 옴니버스 필름,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4분, 《두산아트랩 전시 2025》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두산아트센터

그리고 2025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두산아트랩 전시 2025》에 출품한 신작들에서 장영해는 첨단 미디어와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신체의 생명력이 감각적으로 무뎌지고 왜곡되는 양상을 살핀다. 

예를 들어, 영상 작품 〈annie, cobalt〉(2025)에서 장영해는 전쟁이 미디어 환경에서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학살 현장이 골프장으로 덮여 버린 현실을 통해 폭력이 비일상적 충격에서 벗어나 익숙한 환경으로 스며드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그리고, 또 다른 신작 〈blur, blur〉(2025)는 평균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AI 기술이 인간의 구체적인 감정과 몸짓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탐구하며, 기술이 초래한 현대적 ‘바디 호러(body horror)’를 들여다본다.

장영해, 〈blur, blur〉, 2025,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0분, 《두산아트랩 전시 2025》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두산아트센터

이렇듯 장영해는 사회적 규칙, 기술 환경, 미디어를 통과하며 변화하는 신체의 물리적 성질과 위치를 다양한 매체로 탐구해 왔다. 이러한 다층적인 구조와 맥락이 얽혀 다변화하는 장소로서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실험해 온 그의 작업은, 그러한 신체를 둘러싼 폭력과 욕망이 오늘날 어떻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왔는지 그 구조를 상상하고 탐구하게 만든다.

 ”영상을 통해 몸이 이미지로 변하는 것처럼 다양한 미디엄(매체)들을 거쳐서 몸이 다른 물리성을 가지게 되는 순간들에 주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섹슈얼리티’나 ‘마취’같은, 몸을 둘러싼 사회적인 규칙에 대한 관심으로도 연결되고요. 몸이 인격이자 사물인 순간들이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장영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인터뷰 중) 


장영해 작가 ©2025 아르코데이

장영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에서 인터미디어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는 《21feet》(LDK, 서울, 2024), 《Glove box》(얼터사이드, 서울, 2024), 《????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 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샤워, 서울, 2023), 《Surge analysis》(갤러리175, 서울, 2021)이 있다. 

또한 작가는 《두산아트랩 전시 2025》(두산갤러리, 서울, 2025),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국제갤러리, 서울, 2025), 제25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홍대 KT&G 상상마당 시네마/스위트, 상상마당 갤러리, 서울, 2025),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등 다수의 단체전 및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