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소진(b. 1993)은 촬영자의 몸과 카메라라는 장치, 촬영 대상과 장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만들어 내는 관계의 장면들을 포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가시적인 현상과 기술 이면에 잠재된 다양한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긴장감, 변화의 징조를 영상,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룬다.


곽소진, 〈Bent〉, 2020, 2채널 비디오 설치, 8분 11초 ©인사미술공간

영화와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작업을 시작한 곽소진은 2020년부터 구체적인 현장 리서치와 수행적 촬영을 기반으로 한 다매체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체와 신체가 결합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협력과 제약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비가시적인 협상의 과정을 감각할 수 있도록 다매체적인 작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때 작가는 다매체적인 작업 안에서 매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어떠한 효과를 발생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는 매체와 매체 간의 이동과 순환적인 구조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도끼와 모조 머리들》 전시 전경(인사미술공간, 2020) ©인사미술공간

예를 들어, 2020년 인미공 창작소에 입주해 김솔이, 김무영 작가와 협업하여 선보인 전시 《도끼와 모조 머리들》에서는 각기 다른 매체를 활용한 서로의 작업이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서로의 질문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과 부유물들에 주목하였다.
 
영상, 퍼포먼스,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에 집중해온 세 명의 작가는 각 매체의 고유 언어와 익숙한 감각을 기꺼이 타자의 시선과 예술적 실행에 내맡기고, 시간의 축적으로 쌓이는 변이의 과정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과 새로운 부산물의 양립적 거리 안에서 서로를 탄력적 관계 안에 위치시킨다.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를 경유한 작업이 현재 머무는 지점, 그리고 '전시'로 귀결되는 상태 이전에 유실된 시간성과 창작의 과정이 결과물로 이르는 경로를 열어 보여주는 자리였다.


《도끼와 모조 머리들》 전시 전경(인사미술공간, 2020) ©인사미술공간

작가들의 신체와 사유를 경유한 각 매체별 교환, 혹은 교란 방식을 좀 더 살펴보면, 세 작가 개별 작업은 작업의 큰 윤곽이나 방향이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멸해야 하거나, 이를 위한 위협 안에서 가치가 드러나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협업 방식에서 환기되는 어떤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공통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김무영의 퍼포먼스 연출과 곽소진의 촬영자의 태도가 역전되면서 새롭게 맺는 관계성, 이 둘이 제시한 이미지들이 김솔이의 물질 실험으로 확장되는 방식 등을 통해 세 작업의 교환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본 전시를 통해 세 명의 문제의식이 하나의 작업적 결과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산물로 형성된 결과 안에서 어떻게 서로의 '매체 친화적 노하우'가 다른 시선으로 인해 포기되는지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곽소진, 〈검은 새 검은색〉, 2021, 2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FHD, 스테레오 사운드, 24분 22초 ©곽소진

한편, 이듬해 TINC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곽소진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작품 〈검은 새 검은색〉(2021)을 선보였다. 영상은 칠흑 같은 어둠 속 까마귀 떼의 자취를 담아내며 검은색에 얽힌 다층적 시선을 제시한다.  

곽소진은 어두운 밤 도심 한복판에 출몰한 검은 까마귀 떼의 모습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속에 까마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도시의 밤보다 어두운 까마귀의 검은색은 밤과 동일한 계조 안으로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검은색만이 눈앞에 가득했다. 까마귀를 보기 위해서는 검은색을 통과해야만 했고, 검은색을 보기 위해서는 검은색을 의심해야 했다.


《검은 새 검은색》 전시 전경(TINC, 2021) ©곽소진

전시는 까마귀를 중심으로 놓기도 하고 배경으로 삼기도 하면서 검은색의 뜻과 형태를 긴밀하게 뒤섞는다. 영상 〈검은 새 검은색〉은 서로 다른 시공의 차원에 놓인 네 개의 시퀀스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겹쳐내며 비선형적인 서사를 묘하게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검은 새 검은색》 전시 전경(TINC, 2021) ©곽소진

네 개의 시퀀스 중 인쇄소의 인쇄 공정 위에 속도감 있게 가로지르는 검은색과 흰색의 움직임은, 하늘 위에 흩어진 까마귀의 장면과 함께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감각적으로 상기시킨다. 또한 영상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는 루프 안에서 전개되며, 결론을 향하기 보다 각각에 다가올 시퀀스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시 공간에서 영상과 함께 설치된 붉은 창은 영상 안에 등장하는 붉은색 암등과 연동되어 화면과 화면 바깥에 물리적인 시공간의 경계 또한 모호하게 만든다.  


《oh-my-god-this-is-terrible-please-don’t-stop》 전시 전경(문래예술공장, 2022) ©곽소진

그리고 이듬해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개인전 《oh-my-god-this-is-terrible-please-don’t-stop》에서 곽소진은 BDSM의 관계적 긴장감을 참조하여 카메라와 신체의 협의 과정 속에서 노출되거나 의도적으로 감춰지는 매체적 특성에 대해 다루었다.  

전시 제목은 ‘이건 너무 끔찍해 (그러나/그러니) 멈추지 마’라는 뜻으로, 이는 ‘죽을 만큼 좋아’라고 의역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죽을 만큼 좋지만, 진짜로 죽지 않는 지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멈추는 지점에서 대한 상호 간의 교감과 합의가 중요한 것이다.


곽소진, 〈Tapping, Scratching, Tracing ♥no talking♥〉, 2022, 싱글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FHD, 스테레오 사운드, 10분 30초 ©곽소진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 사물의 위치와 특성으로 인해 형성되는 시선의 위계와 규칙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본 전시에서 영상과 퍼포먼스, 설치 조각을 통해 시선의 거리와 위계가 뭉개지는 순간을 상상하였다.  

이를 위해 그가 참조한 것은 BDSM의 관계적 긴장감 속에서 만들어지는,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의 ‘멈춤’과 ‘합의,’ ‘합의된 비합의’이다. 이 합의는 일반적인 권력 중립이 아닌, 서로 보충하는 관계에서 불평등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곽소진, 〈Tapping, Scratching, Tracing ♥no talking♥〉, 2022, 싱글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FHD, 스테레오 사운드, 10분 30초 ©곽소진

가령, 영상 작품 〈Tapping, Scratching, Tracing ♥no talking♥〉(2022)은 카메라 탭핑 ASMR이라는 장르를 모방하며 전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영상 속의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매우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손톱으로 할퀴고 두드린다. 렌즈의 흠집이 깊어질수록 이미지는 고조되고, 카메라 렌즈와 촬영 대상의 물리적 접촉은 ASMR 사운드가 되어 이미지를 감상하는 관객의 자율 감각을 직접적으로 타격한다.
 
전시는 경계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어둠 속에 묻혀야만 하는 사물과 부서짐을 자처하는 카메라 렌즈가 기록한 영상을 통해, 카메라 렌즈의 가장자리, 손끝과 발끝, 


곽소진, 〈휘-판〉, 2024, 영상, 사운드, 23분 ©곽소진

이처럼 곽소진은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경계 사이에서 잠재되어 있는 관계의 장면들을 포착해 왔다. 2024년에 발표한 영상 작품 〈휘-판〉에서 작가는 축산업자들에 의해 유기된 후 급격하게 개체수가 증가한 야생 사슴들이 안마도 주민들의 인구수를 초과하게 된 현상을 포착한다.
 
영상은 검정을 이용하여 사슴과 인간의 영역이 뒤섞인 기묘한 공존의 풍경을 담아낸다. ‘여기’와 ‘저 너머’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어둠은, 생태적 (불)균형을 통해 기존의 경계가 휘어지고 재편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안의 깊은 밤, 낮의 반대편에 거주하는 야행성 카메라와 야행성 공동체의 응시는 우리에게 연루된, 우리 이후를 마주보도록 하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한다

《Cloud to Ground》 전시 전경(리플레이스 한남, 2025) ©곽소진

그리고 최근 개인전 《Cloud to Ground》에서 곽소진은 ‘낙뢰’의 형성 과정을 관계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며, 관객을 어두운 하늘을 걷는 밤 산책자의 길로 초대하였다.  

그에 따르면, 전류는 어디에나 흐르지만 낙뢰는 어디에나 퍼져 있는 전류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얽히며 순간적인 관계의 형상을 이루는 장면이다. 그러나 대기에 그려진 관계의 형상은 생성 즉시 소멸하고 만다. 즉, 연결은 매번 고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종국에는 사라지기에, 반복과 재현이 불가능하다.

《Cloud to Ground》 전시 전경(리플레이스 한남, 2025) ©곽소진

전시에서 곽소진은 이러한 낙뢰의 과정을 참조하며, 고정되고 선형적인 시간의 개념과 정반대의 흐름을 따르는 경로들을 제시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관객은 밤 산책자가 되어, 연결과 단절, 응답과 침묵, 얽힘의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발생하는, 찰나와 같은 관계적인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곽소진, 〈만지기, 구름에서 땅까지〉, 2025,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30초 ©곽소진

이렇듯 곽소진의 작업은 생태와 역사, 미디어의 관계망 속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을 탐구한 작가의 질문에서 출발해 기술과 몸, 사물과 감각이 서로 얽히며 드러나는 살아 있는 관계의 장면들을 포착해 왔다. 사물과 장치, 신체 사이를 경유하는 그의 작업은 객관적이거나 가시적인 것 이면에 자리한 다층적인 감각과 감정들을 시각화하며, 그러한 순간을 관객의 몸으로써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우연한 목격은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 연결된 사물과 생태, 역사, 미디어와 접촉하고, 그 일부로 휩쓸리며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객관적인 정보나 논리적 서사 보다는, 가시적인 현상과 기술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적인 긴장감과 ‘사건’ 돌출 전 일어나는 변화의 흔적과 징조를 담아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곽소진, 퍼블릭아트)


곽소진 작가 ©W코리아

곽소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과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미술원에서 인터미디어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Cloud to Ground》(리플레이스 한남, 서울, 2025), 《oh-my-god-this-is-terrible-please-don’t-stop》(문래예술공장, 서울, 2022), 《검은 새 검은색》(TINC, 서울, 2021), 《도끼와 모조머리들》(인사미술공간, 서울, 2020)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국제갤러리, 서울, 2025), 《초록 전율》(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5), 《숲》(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5), 《옵/신포커스》(아트스페이스 3, 서울, 2024), 《프리즈 필름 2023》(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3), 《#2》(두산갤러리,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곽소진은 2024년 ‘한국 시슬리 젊은 작가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