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희(b. 1995)는 세대나 시대로 대표되는 시간성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과 그 감각에 연루된 공동의 이야기를 감상자의 개입으로 작동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통해 표현해 왔다. VR, 퍼포먼스,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그리고 사진과 같은 평면 매체를 활용하는 그의 작업은, 관객을 플레이어로서 개입시키며 주어진 게임적 규칙들을 체현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전시장의 현실을 공동의 알레고리로 구현한다.


상희, 〈원룸바벨〉, 2022, 인터랙티브 VR, 싱글 플레이, 15분 ©상희

상희는 관객과 조우하고, 함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에 적합한 여러 매체를 탐구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확장해 왔다. 그러한 대표적인 작업 중 하나인 인터랙티브 VR 작업 〈원룸바벨〉(2022)은 관객(플레이어)로 하여금 다이빙을 통해 심해에 자리잡은 건축물을 탐험하도록 유도한다.
 
작품의 공간은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청년들의 주거 공간을 스캔한 데이터로 만들어졌다. 플레이어는 텍스트와 사운드, 환상적인 분위기의 가상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통해 원룸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상희, 〈원룸바벨〉, 2022, 인터랙티브 VR, 싱글 플레이, 15분 ©상희

동시에, 〈원룸바벨〉의 체험은 감각적으로 정형화되기 어려운 외상의 국면을 포함하고 있다. 〈원룸바벨〉에서 ‘원룸살이’로 불리는 주거 경험은 외지에서 서울로 온 청년들, 혹은 부모에게서 독립한 청년들의 ‘타향살이’라는 집단적 기억을 구성한다.
 
상희는 경제적 제반과 겹쳐져 있는 이러한 역설이 일으키는 감각을 VR의 매체성을 경유해 다루고자 했다. 이 작업은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뉴애니메이션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같은 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국제 경쟁 부문 Venice Immersive에 초청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2023년에는 배리어프리 버전으로도 제작이 되어, 움직임에 제한이 있는 관객들이 불편함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희, 〈Worlding···〉, 2023-2024, 인터랙티브 VR,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싱글 플레이, 20분 ©상희

이듬해 선보인 또 다른 인터랙티브 VR 작업 〈Worlding···〉(2023-2024)은 비동기 온라인 게임의 양식과 더불어 VR 신체의 표층을 재방문하고자 하는 참여형 프로젝트였다. 본 프로젝트는 VR 작업과 VR 플레이의 결과물을 위한 물리적 설치로 이루어진다.


상희, 〈Worlding···〉, 2023-2024, 인터랙티브 VR,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싱글 플레이, 20분 ©상희

플레이어는 핸드 트래킹 기술이 적용된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 현실 속 지형을 맨손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이때 왜곡된 지형의 데이터는 관람객의 참여를 거치며 누적된다.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VR 플레이를 통해 공통의 지형을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작업에서 상희는 개별 플레이어의 행위 데이터를 기록할 뿐 아니라, 그 데이터를 바닥에 쌓이는 지형도와 스크린에 투영되는 지형 영상으로 출력한다.


상희, 〈Worlding···〉, 2023-2024, 인터랙티브 VR,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싱글 플레이, 20분 ©상희

VR 작업 안에서, 플레이어는 늪지에 떠오른 거대한 시신을 매장해야 하는 파수꾼의 소임을 맡는다. 플레이어는 손을 이용해서 그의 과업을 수행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실제로 신체적 피로를 경험하며, VR 신체의 노쇠와 소진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노동의 결과는 곧장 전시장 내 지형도에 반영되지 않으며 비동기 온라인 연결에 의한 시차를 수반하게 된다. 상희는 이러한 전시 구성의 작업을 통해 “실시간 매체가 가정하는 동시성의 우위를 비판적으로 재고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소진되는 신체의 상과 결부시켜 VR 신체가 갖는 껍데기의 성질을 전면에 부상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상희,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2024, 합판 구조물에 부착한 롤지, 스티커, 가변 설치 ©상희

한편, 2024년 팩션에서 열린 개인전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에서 상희는 퍼포머와 함께 TRPG(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 Table Talk Role Playing Game)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참조한 대화형 게임 작업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을 관객과 일대일로 플레이하였다.
 
대화형 게임은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게임적인 규칙을 가진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1시간 30분 남짓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플레이어가 된 관객은, 자신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움직이고 새로운 배경과 이야기를 제안하며 느슨하게 연기할 수 있다.


상희,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2024, 합판 구조물에 부착한 롤지, 스티커, 가변 설치 ©상희

게임은 인간의 도시에 ‘침투’한 흰개미에 의해 벽과 교각, 바닥이 허물어져 가는 허구적 ‘고향’을 배경으로 한다. 관객은 게임 속 캐릭터를 움직이며 지도로 도식화된 이 고향을 가로질러 간다. 이야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관객은 전시장의 가벽을 따라 설치된 지도를 스티커로 첨삭하거나 발걸음을 표시한다. 그 지도는 다시 다음의 플레이어를 위한 배경이 됨으로써, 다중의 이야기가 중첩된 지층을 만들어 나간다.


상희,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2024, 합판 구조물에 부착한 롤지, 스티커, 가변 설치 ©상희

이 게임의 지도는 일반적인 지도와 닮아 있어 보이지만, 플레이어의 위치를 확인하는 용도를 넘어서, 잠재적인 위험과 새로운 조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예측을, 그 예측에 기반한 행동을, 정서적인 반응과 개입을 상상하게 만든다. 즉, 여기서 지도는 공동의 픽션을 만들어 나가는 공동의 기반이 된다.
 
작품은 이러한 지도를 경유해서 생성되는 이야기를 주목하며, 이 지도를 생성해내는 과정 자체가 미학적인 경험이 되도록 만든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 2024, 아이트래킹을 사용하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싱글 플레이 ©상희

같은 해 선보인 작품 〈언리얼리스트의 유럽〉(2024)은 아이트래킹을 사용하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상희는 팬데믹과 기후 위기로 해외 여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미래를 상상하고, 그러한 시공간에서 판매되는 메타버스 관광상품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을 구상했다.
 
언리얼리스트는 이 상품을 만든 가상의 회사로, 시간과 돈에 쫓기는 21세기의 관광 경험을 정확하게 고증하고 각색하여 메타버스에 옮겨 놓았다고 여행 상품을 홍보한다.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은 초점이 맞지 않는 유럽의 길목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며 자신의 시선이 닿는 곳을 페달을 밟아 촬영한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 2024, 아이트래킹을 사용하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싱글 플레이 ©상희

아이트래커는 관객의 눈이 바라보는 곳을 표시하는데, 아이트래커와 상호작용하는 관객은 의식적으로 어떠한 지점을 바라보도록 안구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일의 어려움에 되려 부딪히게 된다. 관객은 또렷해 졌다가 다시 불분명해지기를 반복하는 유럽의 이미지들을 눈으로 좇아가며 자기만의 유럽을 발견해 나가는 시각적 여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이미지는 엽서의 형태로 출력되어 전시장을 점점 채우게 된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 2024, 아이트래킹을 사용하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싱글 플레이 ©상희

한국에서 해외 여행, 특히 유럽 여행은 대체할 수 없으며 선망할 만한 경험으로서 표상되어 왔다. 그러한 기대와 함께 여행하는 관광객은 흘러가는 풍경을 경험으로서 붙들기 위한 몸짓들을 취하게 된다. 작가는 본 작업이 “이러한 몸짓을 인터페이스와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행위’의 차원에서 부감하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한다.


상희, 〈유랑의 발맞춤〉, 2025,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한 플레이, 구조물과 컨트롤러, 가변 크기 ©상희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 참여한 상희는, 본 전시에서 새로운 인터랙티브 작업 〈유랑의 발맞춤〉(2025)을 선보였다. VR의 개념을 확장한 신작 〈유랑의 발맞춤〉에서 관객은 워킹 시뮬레이션 게임 형식을 통해 함께 “이동(행진)”하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 작업은 관객이 나와 타인의 상대적인 속도에 대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관객은 플레이어가 되어 자신만의 방랑자 캐릭터를 선택하고, 물리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캐릭터의 걷는 속도를 조절한다.


상희, 〈유랑의 발맞춤〉, 2025,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한 플레이, 구조물과 컨트롤러, 가변 크기 ©상희

게임 속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속도를 조절해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 작품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누군가와 동행하기/안 하기와 같은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건네는 대신 속도라는 개념을 통해 어떠한 캐릭터와 발을 맞춰 걸을 것인지를 보다 느슨한 시점에서 선택하게 만든다.
 
게임이 끝난 뒤에는 누구와 동행하였으며 어떤 속도를 유지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리더보드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 확인할 수 있다. 이 여정을 통해 관객은 동행, 동반 여행, 행진처럼 타인과 함께 이동하는 감각의 다양한 층위를 마주하게 된다.


상희, 〈유랑의 발맞춤〉, 2025,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한 플레이, 구조물과 컨트롤러, 가변 크기 ©상희

이처럼 상희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작업을 실험해 오며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같이 만들어 나가고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정서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의 신체성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지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관객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는 경험의 공동은 일회적인 체험에서 머물지 않고 전시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현실 안에 지층처럼 쌓여간다. 이는 관객이 명료히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계속해서 다중의 경험에 연루되고,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점점 더 타인과의 연결이 느슨해 지고 개인의 경계가 뚜렷해 지는 동시대의 상황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타인과 발맞춰 살아가고 어딘가를 함께 바라본다는 감각을 되살린다.


상희, 〈유랑의 발맞춤〉, 2025,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한 플레이, 구조물과 컨트롤러, 가변 크기 ©상희

 ”모험을 진행하는 와중에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물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가게 되는 길은 달라질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무엇일지는 모험을 시작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며, 그 결과물의 표면과 요철이 어떠한 촉감인지는 모험을 끝마치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그것이 작업에서 즐거움이자 어려움일 것이며, 낯설고 만만치 않은 조우에 대한 감정적 반응일 것이다.”    (상희, 에세이 「길잃기의 즐거움」(K-Arts 46호)에서 발췌) 


상희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상희는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멀티미디어영상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언리얼리스트의 유럽》(공간형7, 서울, 2024),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텔지어의 벌레들》(팩션, 서울, 2024), 《Worlding···》(시청각 랩, 서울, 2023)이 있다.
 
또한 그는 《ISEA 2025》(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박물관, 서울, 2025),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팩언팩》(토탈미술관, 서울, 2024), 《헤테로포니: 10년의 연주》(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4), 《빅브라더 블록체인》(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4), 《Who Owns the Truth?》(POSTCITY, 린츠, 오스트리아,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상희는 2023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New Animation 부문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상희는 내러티브 디자이너 상훈과 2023년부터 ‘교각들’이라는 이름의 아티스트 콜렉티브를 운영해 오고 있으며, 2024년에는 교각들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