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루(b. 1987)는 프로젝션 맵핑 조형, 미디어 파사드, VR 등 디지털 무빙 이미지를 활용해 디지털 미디어의 시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신화, 설화, 과학기술, K-컬쳐 등 시간을 초월하는 문화적 요소들을 폭넓게 차용하여 구성한 시적인 내러티브를 기술 매체를 통해 몰입도 있게 풀어낸다.


《Yaloo House, Yes! Sebum》 전시 전경(휘슬, 2017) ©얄루

오랜 시간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며 타자의 시선이 녹아든 삶의 태도를 가진 얄루는, 유튜브와 핸드폰 스크린샷으로 이삭을 줍듯 이미지와 비디오를 습관적으로 수집한다. 작가는 수집한 정보를 디지털 세상에서 이미지를 섞고 자르고 복사하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가 수집한 이미지들은 초국가적 소비문화와 그에 따른 현상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작가는 다양한 기술적 과정을 통해 이러한 이미지들을 재조합하고 편집하여 자신만의 서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한다.


얄루, 〈얄루공원, 예스! 세범, 미용상의 문제가 있는 거대한 과일들〉, 2017, 비디오 프로젝션 맵핑 조형 ©얄루

예를 들어, 2017년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제작한 작품 〈얄루공원, 예스! 세범, 미용상의 문제가 있는 거대한 과일들〉은 3개월 동안 후쿠오카에 거주하며 포착한 ‘완벽한 표면에 대한 우리의 욕구와 그에 따른 소비주의 문화’를 발칙하고 친근한 시선으로 접근한다.
 
이 작업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작가가 거주했던 후쿠오카시 중심부의 슈퍼마켓 입구에 진열되어 있는 완벽한 겉모습의 과일과 약국에 빼곡히 배열된 미용 제품들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가상현실 플랫폼을 이용해 여드름 및 머핀 탑 같은 미용 관심사와 딸기, 사과 같은 과일을 짝지어 3D 모델을 만들고 스톱모션 애니모션을 제작했다.


얄루, 〈얄루공원, 예스! 세범, 미용상의 문제가 있는 거대한 과일들〉, 2017, 비디오 프로젝션 맵핑 조형 ©얄루

전시의 시작과 끝에는 오프닝과 클로징 세레모니 테마송이 흐르고, 각각의 과일은 특유의 향기와 사운드를 가지며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관객은 대형 과일 애니메이션 사이를 걸으며 마치 테마파크에 온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며, 전시의 말미에는 당신의 미용/과일을 점쳐주는 뽑기 기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얄루, 〈얄루 성터, 상상 고고학〉, 2018, 단일채널 비디오, 사운드, 비디오 매핑 프로젝션 ©얄루

이후 발표한 작품 〈얄루 성터, 상상 고고학〉(2018-2019)에서 얄루는 레지던시 기간 동안 경험하고 연구한 야마카사 축제(Yamakasa festival) 및 지역 전통 문화들, 약국에 배치된 현대 여성성(femininity)을 반영한 의약품과 화장품들, 캐널시티(Canal City)에 설치된 백남준의 고장 난 텔레비전 타워 작품 등을 바탕으로 상상의 유물들을 제작하였다.

얄루, 〈얄루 성터, 상상 고고학〉, 2018, 단일채널 비디오, 사운드, 비디오 매핑 프로젝션 ©얄루

가상의 역사적 유물은 비디오 프로젝션 맵핑 조형으로 제작되어 복원된 유적지인 후쿠오카성 건물 내부에 설치되었다. 관객은 성 안쪽 일렬로 위치한 방을 차례대로 걸으며 비디오 조형물을 감상하고, 작가와 관객은 기술과 상상력의 힘을 빌려 함께 개인적인 서사를 웅장한 거대 서사로 풀어나가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방에서 관객은 가상현실(VR)을 통해 가상 유적지에 들어가면서 가상 세계에서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얄루,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투라여, 슬퍼하지 말아요〉, 2020, 3채널 비디오, 사운드, 비디오 맵핑 프로젝션 조형 ©얄루

이처럼 얄루의 작업은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한다. 2019년부터 프로젝션 맵핑, 모션 센서 비디오, 애니메이션, VR 등 다양한 매체로 다루어진 ‘미역’이라는 소재 또한 작가의 어린 시절 개인적인 추억에서 출발하였다.
 
어린 시절 생일상의 상징이었던 미역국은 작가로 하여금 그것이 속한 해조류가 지구 태초의 시기인 선캄브리아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이 긴 시간을 생존해 온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했다. 또한 지구 모든 생명체 중 최초로 암수 성별 구분을 지닌 생명체가 다시마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작가는 해조류의 특징을 결합한 신인류를 예측하는 작업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투라여, 슬퍼하지 말아요》 전시 전경(플랫폼엘, 2020) ©얄루

2020년 플랫폼엘에서 열린 개인전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투라여, 슬퍼하지 말아요》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해조류와 결합하여 탄생한 새로운 인류 ‘호모 폴리넬라’의 등장을 예고한다. 호모 폴리넬라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녔으며 자체적인 광합성을 통해 모든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그에 따라 호흡기관, 소화기관, 배출기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생명체이다.
 
또한, 그들은 애정을 갈구하고 과학 장비를 이용하여 예술적 창조활동을 주로 하며, 증오, 공포, 공격성 등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한 존재로 자연을 사랑하고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 인류이다.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투라여, 슬퍼하지 말아요》 전시 전경(플랫폼엘, 2020) ©얄루

이러한 포스트휴먼 시나리오는 과학적 리서치와 표본 채집 및 관찰, 그리고 해조류센터의 해조류 전문가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전개되었으며, 시각예술-과학-문학의 다원예술의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전시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투라여, 슬퍼하지 말아요》는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센터 연구진과의 협업으로 구축한 학술적 이론을 바탕으로, 컨셉츄얼 작가 김훈예와 협업하여 미래예측형 포스트휴먼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선보인 자리였다.
 
얄루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구축한 새로운 인류인 ‘호모 폴리넬라’의 서사를 VR, 프로젝션 맵핑, 각종 디지털 프린팅 등 다양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의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유쾌한 SF적 서사의 감각적 공간 안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얄루, 〈피클 시티 다이브 Ver.2022〉, 2022, 3D 애니메이션, VR, 조명, 접히고 펴지는 향로, 사다리, 쇠파이프, pvc, 커튼레일 ©얄루

해양 식물인 미역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2020년부터 이어져 온 ‘호모 폴리넬라’ 프로젝트와 더불어, 신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구성한 심해 속 수중도시에 대한 이야기 ‘피클 시티’(2022-) 시리즈로 확장되었다. ‘피클 시티’가 제시하는 도시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안정적인 도시에 대한 인식을 깨트린다.
 
이곳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하게 흐려지며, 식물과 동물이 결합된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이미지가 뒤섞인다. 이러한 이미지는 다양한 상상 속 동물이 등장하는 백제금동대향로, 제주신화에서 전해지는 서천꽃밭 등 전통 설화와 무속 신앙 속 요소를 차용한 것으로, 미역과 다시마, 갯민숭달팽이 등에 대한 기존의 관심사에 결합해 미지의 영역인 심해에서 새로운 도시를 구성한다.


얄루, 〈피클 시티 다이브〉, 2023, VR, 90초 ©얄루

이러한 가상의 심해 도시는 인류의 다양한 역사와 거점이 뒤섞인 공간인 동시에,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가령, 홍콩과 도쿄, 서울 등 인구밀집도가 높은 아시아 도시에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건물과 같은 건축 구조물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신체 기관이 단순화되고 특정 기관만이 발달한 생명체, 해조류, 물가의 모래들이 특정 성분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만들어낸 결석인 고곳트(gogotte) 등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며 도시 구조체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화려한 빛을 낸다.


얄루, 〈피클 시티〉, 2023, 단채널 비디오, 구조물, 컬러, 사운드, 4분 40초 ©얄루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물 속은 우주만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두려움과 경외가 뒤섞인,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인간/비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생태계는 우리에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인호 오프닝 넘버》 전시 전경(미학관, 2024) ©미학관

한편 최근 얄루가 진행하고 있는 ‘신인호’(2024-) 프로젝트는 작가의 1938년생 외할머니와 동아시아 여성 해적 정이소를 바탕으로 창조한 가상의 캐릭터 ‘신인호’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86세 할머니인 ‘신인호’는 해적선의 선장이자 K-pop 아이돌이라는 다소 엉뚱한 설정을 갖고 있지만, 그의 서사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Shininho Destiny》 전시 전경(836M, 2024-2025) ©얄루

그러나 이때 ‘신인호’ 개인의 역사는 주류에서 이탈한 대안적 서사로 그려진다. 현실에서 할머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이 서사 안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고, 다른 모든 종족들을 지휘하고 이끄는, 신인류를 향해 나아가는 수장으로 등장한다.
 
기억과 재현이 뒤섞인 동시에, 기존의 인식에 균열을 내는 ‘신인호’라는 인물의 대안적 서사는 단일한 역사 쓰기를 벗어난 유동적인 아카이브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시점에서 주체로서 단단히 발 디딜 수 있는 조건들을 검토하게 만든다.  


얄루, 〈신인호 월드 투어〉, 2024, 커스텀데칼, 4채널 사운드, 홀로그램, 애니메이션, 텍스트, 300x300x300cm ©얄루

얄루는 이러한 ‘신인호’라는 인물의 여정을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여 공상적으로 그려낸다. 예를 들어, 2024년 송은에서 열린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신인호 월드 투어〉는 해적이자 K-pop 아이돌인 신인호의 해양 어드벤처를 애니메이션, 조형, 사운드, 텍스트의 형식을 경유해 풀어나가며, 내러티브에 시각적인 생동감을 더한다.
 
이처럼 얄루의 작업은 화려한 시각 이미지와 여러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우리의 감각을 유희적으로 자극하는 동시에, 현실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가 속한 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며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얄루 작가 ©836M

얄루는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SAIC)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개인전으로는 《신인호 도킹》(RIP space,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5), 《신인호 오프닝 넘버》(미학관, 서울, 2024), 《얄루》(경기도미술관, 안산, 2024), 《Wicked Ocean》(Elektra Gallery, 몬트리올, 캐나다, 2023), 《호모 폴리넬라 더 랩: 짜라투스트라여 슬퍼하지 말아요》(플랫폼엘,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백남준, 김실비, 얄루, 한우리: Positive Feedback》(갤러리 BHAK, 서울, 2024), 퓨처 미디어 페스티벌(타이완 컨템포러리 컬쳐 랩(C-Lab), 타이베이, 2024), 《가이아의 도시》(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3), 《두산아트랩 전시 2023》(두산갤러리,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이력으로는 경기도미술관 & IBK기업은행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2024), 1st H/ART AveNew  현대퓨처넷 마디어아트 프로젝트 공모전(2023) 등이 있으며, 836M(샌프란시스코, 미국, 2024), Pier 2(가오슝, 대만, 2024), 현대자동차 ZER0NE(서울, 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크리에이터스 인 랩(광주, 2019)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