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더 라운지(The Lounge)》, 2023.11.11 – 2024.01.07, 캄-라뮤트 아트센터, 로잔, 스위스
2023.11.11
오리아느 에므리 & 장-롤도프 페터
전시 전경, 《더 라운지》 최윤 개인전, 캄-라뮤트 아트센터(CALM –
Centre d’Art La Meute), 로잔, 2023 © 최윤
캄-라뮤트 아트센터는 스위스에서의 첫 개인전을
위해 한국 작가 최윤(1989년생)을 초대한다. 그의 작업은 서울, 뉴욕, 런던, 함부르크,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여러 도시에서 소개되어 왔다. 작가는 부조리한 사회정치적 현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집단적 믿음과 몽상을 추적한다. 동시대 사회의 하이브리드한 시간성에 관심을 두며, 이는 작업에서
종종 다체(多體) 존재로 나타나 동시대의 심리 지형을 가시화한다. 최윤은 이러한 흐름을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설치로 다룬다.
움직이는
이미지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번 전시 《더 라운지》처럼 항상 전면에 놓이진 않는다. ‘라운지’는 휴식이나 대기를 위해 설계된, 그 자체를 목적지로 삼지 않는 ‘비장소’로, 특유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응집성이 부재함으로써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주며, 장식은 ‘기다림’이나 ‘휴식’에 대한 대중적 관념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이용자는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움직임이 늘어져 있는 이 공간-시간으로 들어선다. 이는 동시에 스크린이자 거리 두기 장치이며, 흡연 허용 구역 같은 곳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가까우면서도 먼
장면을 목격한다. 이러한 생각과 캄-라뮤트 아트센터의 건축을
고려하여, 작가는 서로 구분되면서 연결된 두 개의 영역을 구상했다. 전시
공간에서는 이 ‘몸들’이 시간이 정지된 듯 보이거나, 반대로 너무 빨리 움직여 우리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반면 카페
뒤 루프(Café du Loup)는 활기차고 따뜻하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번 전시에는 캄-라뮤트 아트센터를 위해
특별히 구상된 두 개의 연작이 소개된다. 첫 번째는 전시장 프렌치 윈도와 입구 오른편의 금속 판 세
점에 보이는 회화적 작업이며, 두 번째는 주로 목재와 세라믹으로 구성된 조각 연작이다. 두 연작은 2021~2023년 암스테르담 라이크스아카데미(Rijksakademie) 레지던시 기간에 시작되었다. 이들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전시 공간의 사회적·지리적 위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카페 뒤 루프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 에코-네이버후드라는
입지, 그리고 스위스라는 맥락이 작가로 하여금 이번 신작에서 자연에 관한 측면을 보다 전면화하도록 이끌었다. 자연은 작가의 작업에서 노골적으로 등장하기보다 저류(底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번에는 주변 동네와 국가의 지형, 풍경이 그 측면을 끌어올리게 했다.
전시 전경, 《더 라운지》 최윤 개인전, 캄-라뮤트 아트센터(CALM –
Centre d’Art La Meute), 로잔, 2023 © 최윤
공간에 흩어져 놓인 이 ‘몸’들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젊음과 노년, 과거와 미래, 인간과
비인간—이 같은 질문들은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열린 채 남겨진다. 각자는
스스로 의견과 상상을 구축할 수 있다. 이 조각 연작은 에코-네이버후드
자체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조각에 쓰인 목재는 암스테르담 외곽의 신축 주택 건설을 앞두고 콘크리트로
덮이기 직전, 한 뒤뜰에서 구해 온 것이다. 지리는 다르지만, 우리가 서 있는 이 플렌-뒤-루프(Plaines-du-Loup) 부지의 개발 맥락과 유사하다.
이 장소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작가가 ‘몸’이라 부르는 이 존재들은 과거의 유물인 동시에 정체불명의 하이브리드 존재다. 자연적
요소로 구성되면서도 세라믹의 속성과 얼굴을 지닌다. 흙과의 연결이 강하고, 흙을 구워 만드는 과정과 맞물린 불과의 연루 또한 그러하다. 이
몸들은 한국에서 여전히 혼종적 방식으로 실천되는 애니미즘적 사유와 무속과도 공명한다. 수호신이거나 영험한
존재로 여겨지는 고목처럼, 이 존재들은 인간이 자연에 투사하는 관계를 드러낸다. 라텍스 마스크로 본을 뜬 할머니의 얼굴은 그러한 ‘지식’의 은유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금속 위에 그린 회화와 전시장
유리문을 덮고 있는 회화가 있다. 이 그림들은 추상적이면서도, 표면에
찍힌 유화 물감의 자국이 만들어내는 패턴을 통해 ‘산수(山水)’로 알려진 한국 전통 풍경의 물결 무늬와 산봉우리를 변주한다. 작가가
종종 호응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1447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전통적 모델에서 출발해, 자신의 작업 전반에 가로놓인 ‘혼돈’의 주제와 궤를 같이하며,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환기하는 방향으로 이를 비튼다.
우리가 서구 근대 추상회화와 민족중심적으로 결부시켜
온 이 모티프들은 서울의 낡고 대중적 주거에서 주변 습기로 인해 발생하는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흑색
균류’의 확산을 또한 가리킨다. 향수와 우울 사이에서, 최윤은 이상 사회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심층적으로 성찰하며 그 균열과 잔상,
작동 메커니즘—다시 말해, 동전의 이면—을 보여준다.
오리아느 에므리 & 장-롤도프 페터 (Oriane Emery & Jean-Rodolphe
P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