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얻은 인위적인 개념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도는 전통 종교무용의 형식으로도 이어졌다. 전시장 2층에 자리한 〈백팔신중도무〉(2023)는 백화점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종교 의식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작업이다. 우리가 상품을 구입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이 일상의
공간에서 무용가가 행복을 향한 몸의 언어를 펼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행해지는 이 종교 의식은
언어와 움직임 사이의 미끄러짐3, 대상과 무대의 부조화4 등
복합적인 충돌이 전면에 드러내고 만다. 영상을 감도는 어색함과 낯섦은 실재와 관습적 사고 사이의 틈을
벌리는 열쇳말이 된다. 5
지민석은
초상화와 경전, 의식이 아우라(초월적 울림)를 이루는 ≪백팔신중도≫를
종교 ‘놀이’ 공간이라 부른다. 전시 기간 동안 상업화랑 을지로점은 108개의 신을 위한 ‘제단'이자 SF적 상상이
허용되는 관객의 ‘놀이 공간'이 된다. 지민석은 자신이 선행한 놀이의 결과물들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관객을 초대한다.
제례악처럼 차분히 흐르는 〈백팔신중도악〉(2023), 느리고 유연한 움직임의 〈백팔신중도무〉(2023)는 “백팔신중도"의
교리를 시각을 넘어 청각과 촉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다. 공간을 아우르는 선율,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름 없는 이의 몸짓, 나부끼는 108신의 초상화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전통
종교의 문법이 촉발하는 현재와 동떨어진 감각은 지금이라는 시간성마저 흔든다. 날짜와 시간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다. 작가의 동시대적인 성찰로 채워진 시공간은 오히려 보는 이에게 무시간성의
단서를 제공한다. 지민석은 일상에서 멀어진 시공간을 마련하여 초상화와 경전, 의식이라는 놀이법을 펼쳐두고 자유로운 관찰 놀이에 앞장선다. 한껏
분주한 서울의 중심부에서 펼쳐질 우리들(작가-관객)의 종교 놀이는 자발적이며 재미있고, 공정하며 감각적인 형식을 취한다.
《백팔신중도》에서 ‘도'는 ‘道(길 도)’를 쓴다. 이
전시는 작가가 제시하는 행복으로 향하는 여러 길 중 하나로서의 전시이다. 작가는 그가 깨우친 본질을
직접 발화하기보다는 낯선 표현과 소리들로 은유함으로써 그 길의 가능성만을 제시할 뿐이다.
“한번 숨을 내쉬니 현묘한 연기가 길게 뻗어 나간다. 연기는 이내 사라지지만, 한번 연기를 본 사람 속에서는
영원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도가 이러하다." -말보로(79)-
지민석이
제시하는 놀이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기와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상으로 되돌아간
관객이 만물을 자유로운 관찰의 대상으로 볼 수 있기를, 즐거운 놀이의 대상으로 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익숙한 이름(코카콜라, 스타벅스, 샤넬 등)에 기대어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
/ 최고은(독립기획자)
1. 2020년에 《DOPA +
Project : The Cosmic Race》(Palacio de la Autonomía, 멕시코)에서 4개의 글로벌 브랜드(코카콜라, 스타벅스, 맥도날드, 캠밸수프)를 신격화한 작품 〈우주적 신들〉(2020)을 전시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에 개최한 개인전 《신중도》(삼각산시민청, 한국)에서는 25점의
초상화를 선보였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완성된 〈백팔신중도〉를 펼친다.
2. 이 중 71신 필립스의
말씀은 “덥수룩한 것"으로 시작한다. 필자가 필립스라는 이름을 보고 떠올린 것이 믹서기인 반면, 작가는
생각은 자연스레 면도기에 가닿은 듯하다. 아니면 애초에 71신은
필립스라는 브랜드명이 아니라 그의 세면대 근처에 놓인 면도기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일상의 것'을 새롭게 보는 일에는 국가, 성별,
나이, 주거형태 등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영향을 미친다.
지민석 작가는 108개의 신을 선정하는 과정에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3. “Cinco, cuatro, tres, dos.”라는 스페인어로 시작해
동양 종교의 무용이 이어진다.
4. 소매가 긴 흰 장삼을 입고 가면을 쓴 이가 백화점을 무대로 종교
의식을 행한다.
5. 예를 들어, 전통적인
가면무는 과장과 풍자, 패러디의 내러티브를 가지지만 〈백팔신중도무〉의 움직임은 그것과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