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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태양의 신. 그 밖에도 의술, 궁술, 음악, 시에 능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뛰어난 신탁을 보여주는 예언의 신.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예언한 것도 아폴로를 모시는 델포이의 신탁이었다. 아폴로는 태양을 운행하여 세계에 질서 있는 리듬을 부여하고, 인간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시간이라는 관념에 감각할 수 있는 실체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는 신탁에 의지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도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간의 달 착륙을 포함한 미국의 우주 프로젝트부터 한국의 인공색소를 넣은 포도당 덩어리 불량식품까지.

1961년 시작한 아폴로 프로젝트가 달에 착륙을 성공한 것은 1969년 여름 아폴로 11호를 통해서였다. 추억의 불량식품 아폴로 역시 같은 해인 1969년에 그 영향을 받아 같은 이름으로 출시했다. 전시《apollo》에 작업을 선보인 두 작가의 한 세대 이전 사건들이지만, 이 세대 역시 그 일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난 시간은 계속 반복해서 돌아오기 때문이다. 역사로, 기억으로, 복고로, 노스탤지어로, 트라우마로.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방법을 통해서, 때로는 어떤 사물에 담겨서, 그리고 예술이라는 형식에 매개되어서.
수많은 방법이 모두 다르지만, 언제나 과거는 균질하게 소환되지 않는다. 기억은 항상 그 자신보다 더 큰 망각을 품고 있다. 그것을 사물에 담아 두었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시간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은 기억과 망각 사이, 노스탤지어와 트라우마 사이, 그리고 사건과 반복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렇게 발생하는 반복은 이전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될 수 없다. 반복은 생성한다. 두 작가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반복 역시 사물을 찌그러뜨리거나, 터질 듯 균열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입체를 납작하게 만들어 내려는 쪽과 평면을 다면적으로 파열시키는 쪽의 어긋난 욕망은 서로를 변형시키고 있다.

신종민은 입체적인 대상을 납작한 면들로 재구성한다. 고전적인 로우 폴리곤 모델링을 연상시키는 그의 방법론은 평면과 입체라는 구분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작업에는 조각의 역사, 컴퓨터 그래픽의 역사와 같은 거대한 것과 사소하고 사적인, 심지어 정확하지도 않은 기억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오래된 자동차나 휴게소 간식 같은 대상들이 다루어지면서 지난 시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불려 온다. 문제는 그것들이 찢어질듯 해진 상태로, 곳곳에 구멍이 뚫려 텅 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형태로, 납작하게 열화된 양태로 다시 매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사와 문화사의 복잡한 역학 속에서 지난 시간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여기에 놓인다. 그러한 변형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매개되어 있는 다층적인 조건을 상상하게 된다.

이영욱의 작업에서 하나의 대상은 분열되고 또 중첩된다. 균열과 팽창, 반복을 통해 대상은 파열될 것처럼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화면은 언제나 질서 있는 형식을 갖춘다.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수이자 단수인 대상은 질서와 혼란을 함께 가지고 있다. 파열적으로 긴 작업의 제목과 이미지를 함께 보면, 내밀한 서사가 감지되기도 한다. 그것은 대체로 사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가끔은 뒤러의 산토끼 같이 미술사적 대상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지난 시간은 기억, 추억, 트라우마, 역사 등 이름을 달리하며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 그리고 단수와 복수 사이를 오가며 소환된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토끼는 미술사적인 대상이면서 동시대 미술의 대상이고, 뒤러의 토끼이면서 이영욱의 토끼이고, 그곳에 담기는 이야기도 뒤러의 알레고리이면서 동시에 이영욱의 알레고리가 되는 것이다.

기하학적 납작함과 유기적 팽창을 오가는 두 작가의 교차는, 누르는 힘과 솟아오르는 힘의 작용과 반작용을 발생시키며 다채로운 힘의 관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조각이나 회화라는 각각의 조건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 의도하지 않은 글리치와 치밀하게 의도한 배치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것들. 아폴로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혼란이 만나며 비로소 드러나는 것 등등. 우리는 항상 질서를 통해서 질서에서 벗어난 것을, 형식을 통해서 형식 바깥을 비로소 감각할 수 있게 된다.

신체를 분열적으로 재배치해 만든 폭주족 오토바이처럼, 기하학적 평면을 조각조각 기워 맞춘 실물 크기의 자동차처럼. 보기 위한 것이 아닌 눈, 먹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입, 기관 없는 신체와 신체 없는 기관을 오가면서. 맨정신의 아폴로와 취한 디오니소스 사이에서. 친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우리가 여기《apollo》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예언이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과거, 규칙이 야기한 파열, 무언가 작동시키려다 발생한 글리치, 성공을 위해 수행된 실패, 우주선과 불량식품, 그리고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필연적인 겹침이 아닐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