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찌르고 꿰매는,'
우한나는 모빌 구조의 설치 조각 (Floating Well, 2022)을 시도하므로
작업에서 안고 가야하는 양가적인 조건들의 동등한 상태에서 내적 갈등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숙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성과 감성, 좌뇌적 사고와 우뇌적 사고의 영역에 생각들을 토스하는
과정에서 선택의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그것이 곧 자아 혹은 알터 에고의 모양새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양극단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자아들은 자신을 투영하는 신체기관
혹은 양성의 신체를 떠오르게 하는 구조로 구현하면서 본능적으로 서로 비등해야만 한다는 관성같은 것에 놓이게 된다.
결국에는 작가가 처한 자기 모순의 과정들은 신체로부터 파생된 각기 다른 형태와 무게의 부산물에 의해 즉흥적으로 포착한 실루엣의 거울과
마주보면서 투영된다.
반면에, 작가가 납득의 시간들을 거치기
위해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우한나의 시선은 객관화되어
오롯이 자신과 관객의 상만 담을 수 있는 거울 부조 조각(See Me Again, 2022)과 마주하게
된다. 모양자로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 외곽선을 여러 차례 긋고, 수정을
통해 우연치 않게 만들어낸 심장 모양의 거울 조각은 우리의 의식 깊숙이 고정된 페르소나와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자아들을 들여다보도록 한다(Show You, 2022). 본 전시에서 기존 작업과 화려하게 사용되었던 색을 제거하고 다양한 천의 질감과
광도에 집중한 무채색 덩어리의 표면은, 그간 미숙하고 시끄러웠던 오합지졸의 미묘한 차이들을 더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싱크 카리나'
아티스트 자신과 페르소나를 분리된 아바타로 동등하게 선보이는 걸그룹 에스파는 그동안
NCT와 더불어 이동훈의 조각적 실천의 소재 안에 있었다. 이동훈은 아이돌의 안무를 해체하여
특정 동작의 구간을 독립된 조각 안에서 연속성 있게 박제하고, 목조각 형식에서 부각될 수 있는 조각적
특성을 의상의 주름, 소재, 패턴 중심으로 선택해왔다. 작가는 아티스트십과 불가분의 관계인 페르소나를 작가 자신을 향한 내면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이돌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갖는 아티스트십의 본질적인 특성에 주목하므로 제 삼자의 태도로 페르소나를
구현한다. 다른 그룹과 다르게 네 명의 멤버에서 파생된 각각의 가상 아바타를 창조한 에스파는 2020년을 기점으로 ‘SYNK, KARINA’의 티저 영상을 통해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을 소개했다. 이동훈이 선택한 카리나 전신상(Savage1,
2022)과 마주보고 있는 아이-카리나(ae-KARINA)
전신상(Savage 2, 2022)은 둘의 퍼포먼스를 통해 실존 인물과 아바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묵직한 덩어리감과 날카롭게 깎은 파편화된 목조각의 속성 위에 의상의 패턴과 움직이는
동작을 거칠게 채색한 느릅나무의 질감은 분리된 페르소나를 구분 짓기 어렵다. 여기서 의상의 차이를 아는
관객만이 둘을 구분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은 팔 동작만 움직이는 정적인 검정 하반신의 실제 카리나와
역동적인 안무를 포착한 아이-카리나 사이에서 링크되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자아와 자아의 아바타가 때로는 함께, 때로는 분리되어, 메타버스에서 실존 관객층을 집결하거나 현실 세계에
가상의 혼성적 존재를 소화하는 구조는, 우리에게 여덟 명을 동등하게 바라보기를 강조하고자 하는 대중문화
산업의 태도에 기반한다. 결국,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지했던
시공의 감각이 교묘하게 아바타와 환경이 연동하는 어색함과 함께 자아와 페르소나의 간극이 오작동하는 감각을 수용하게 되는 유기적인 산업 구조에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날 닮은 너, 널
닮은 나'
“한 알의 모래알”처럼 모래 한 알 속에 축적된 시간을 바라보며 주어진 일상을
잔잔하게 기록해왔던 정이지는 인물을 둘러싼 주변에 시선을 두어왔다. 종종 작가의 회화에 등장했던 인물들은
무심하게 보면 자화상 같으나 자신이 닮고 싶은 닮은 이를 먼발치서 그린 것이다. 그동안 인물 주변을
조심스럽게 우회했던 기록들이 작가가 안고 있었던 정체성의 묵은 고민과 갈등의 태도라 한다면, 그에 부응했던
무심한 듯 그곳에 머물러 있던 몇몇 인물화는 부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렇듯, 자신을 당당하게 마주보기를 회피했던 길 잃은 자아의 경직된 태도와 감각들은 오히려 작가 스스로의 고립을 불러
일으키면서 어떤 벽에 봉착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닮아가고자 했던
사고의 흐름은 이번 전시에서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인 어떤 공식을 그의 회화 안에서 만들어낸다. 화면을 과감하게 분절된 시간 안에서 크롭한 ‘컷-업(Cut-up)’과 두 가지 크기의 캔버스 네 점에 동일 인물이
반복적으로 묘사된 방식은 인물에 집중적으로 몰입하도록 한다. 이처럼,
작가가 차용한 카툰 프레임과 영화적 기법이 페르소나를 향한 자아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시키면서, 작가의
시선은 화면 밖 관찰자로 이동하게 된다. 스스로를 향한 의지의 돌파구를 중심으로, 자신과 함께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인물 주변을 어디까지 화면을 담을 것인지 매순간 선택을 해왔던 작가는, 점차 인물 자체에 무게를 두거나 장소적 특성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전시를 통해 부수적이었던 인물을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페르소나와 마주하게 된다(One Is, 2022).
'불완전한 초상의 트라우마'
개념적으로 철저히 개인성을 담보하는 자아는 페르소나를 대신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많은 부분 현실에서의 트라우마가 누적된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작가의 역할이 주어졌을 때,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나의 면모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드러나 균열의 틈을 만든다. 이처럼, 작가라는 불완전한 존재는 끝없이 작업으로써 만인들에게 자기 증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십이 갖고 있는
감정 노동을 근간에 둔다. 물론, 이 둘이 철저히 분리가
되어 완전히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은 현실과 발맞춰 갈 때 찾아오는
버거움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고충, 간신히 허들을 넘었을 때의 희열,
이후에 찾아오는 공허함,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현실과의 심리적 갈등에서
불안정한 페르소나들이 결집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혼돈의 감정들은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하고
안고 가야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정체성 사이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 도전하도록
한다. 정희승은 과거에 연극과 무대의 관점에서의 페르소나 연작과 지속적으로 이어온 사물의 초상에서 현실과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현실과 작업 사이에 줄다리기의 시간들을 공유해왔던
동료 작가들의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페르소나와 사물을 결합한 보다 내밀한 초상을 다룬다.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2020) 연작에서 추린 네 점은, 다양한
수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작가라는 존재의 자아 실현과 현실에서 찾아오는 패배의 맛 사이(행복한 루저들, 2020)의 모순과 작업과 직결되는 작가의 몸에 균형과 트라우마에 대한 감각(차가운
바닥, 2020)이 중심에 있다.
'나가며: 버틸 수
있기 위한 복수의 나'
페르소나의 원형은 ‘가면(mask)’을
의미하듯이 자아의 외부를 형성하는 다른 인격으로서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일종의 배우와 같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본래적 ‘나’에서 창작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존재는 사실상 나와 다른 성격의 캐릭터이자 또다른 복수의 페르소나들이 작업에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자아의 고유성을 안고 작업에 몰두하고 다시 빠져나오는 시간들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성과 감성 사이의 양극단에서 갈팡질팡하는 과정은 곧 균형을 잡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행위로 반복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수정이 필요한 순간 과거의 자신과 적이
되어 이를 다시 무너뜨려야 하는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마치, 보위가
카멜레온처럼 지기 스타더스트의 허물을 과감히 벗으므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살아남기’보다 ‘살아가기’에 집중해
자신의 소신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는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본질과 오류를 감지하고, 자기 부정 혹은 자기 회피의 순간들과 쉽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아와 알터 에고를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고 개인이 복수의 부캐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구조는 이 둘 사이를
갈등하며 능동적으로 남겨놓은 흔적을 형식적으로 가장 먼저 노출하기도 하면서, 자아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모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존엄성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자아-페르소나는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자아를 향한 애정과 증오, 그리고 의구심이라는 작가적 태도의 흐름을 내포하는 결정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