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poster © Komplex Gallery

수연, 정이지의 2인전 《비누향》은 두 사람에게서 나는 같은 향, 친밀감과 편안함을 둘러싼 시간과 관계를 은유한다. 매일 두 손에 닿아 만져지고 또 닳아가는 비누, 이 사물의 물리적 외양이 사라질 때 그 향은 사물을 만지고 사용한 사람의 손과 몸으로 자리를 옮겨 간다. 생활의 한편을 구성하는 사물로써 비누, 누군가의 하루 동선 속에서 그 몸에 매일의 잔향을 남기는 비누의 은은한 개입처럼, 보이지 않는 시간과 향, 관계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을 보살피고 지지한다.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내밀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비누향’이 지닌 직관적이고 동시에 은유적인 의미들이 수연, 정이지의 작업에 녹아든다. 수연과 정이지는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비누향’을 작업의 주요한 인상으로 머금고서,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친밀감 그리고 애착에 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전개한다. 함께 보낸 공통의 시간과 생활 감각, 감정선들은 두 사람의 작업 곳곳에 모습을 비추며, 전면에 드러나기도 한 겹 뒤 숨어 놓이기도 한다. 

먼저 정이지가 그리는 사물과 사람에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가령 잔과 초, 비누와 냅킨, 가까운 사람의 얼굴이나 형체가 그의 그림에 반복해 등장한다. 정이지가 그리고자 결정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의 생활 일부를 구성하거나 그에게 영향 또는 감응을 가져다 주는 것들이다. 이 영향과 감응은 강렬한 감정이나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반짝이는 사물들에 있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위치할 법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 향한다. 정이지의 그림이 편안한 이유는 그 때문인데, 이는 그의 삶이 가볍고 단순해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하는 곳, 제 마음을 두고자 하는 곳이 편안함 속에 있기에 그렇다.

이 편안함의 고리는 정이지의 정물 작업 뿐 아니라 인물 작업에서도 감지된다. 《비누향》에서 선보이는 신작 〈안녕〉, 〈별자리〉, 〈Pupa〉에 얼굴과 형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모두 동일한 사람, 수연이다. 낯선 존재가 아닌 줄곧 자신의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친밀한 사람들을 그려온 정이지는 이번에도 질릴 새 없이 한 사람을 제 마음에 새기듯 화면에 새긴다. 애정 어린 시선, 그가 느끼는 감정과 느낌, 관계의 밀도와 내밀함 같은 것들이 정이지의 인물화 주변을 공기처럼 둘러싼다. 그의 그림 속 편안한 상태로 멈춘 사물과 인물로 구성된 장면들은 당연하다는 듯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아닌, 그가 삶의 부침 속에서도 자신의 일상으로 지켜내고 싶었던 순간들이다. 일상의 편안함은 삶에서 자연스럽다는 듯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지켜내는 일에 가깝다.

한편 수연은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일치하게 대응’하는 의미로 ‘조응’하는 형상들을 자주 그려 왔다. 수연은 나란히, 앞뒤로, 포개어 두 형상/사물/이미지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조응의 구도를 만든다. 가령 겹쳐진 두 개의 동그라미,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별,  두 마리의 새 그리고 나비 등 수연은 형상을 둘로 배열하기를 즐기는데, 아마 그것이 그에게 자연스럽고 마땅한 배치이자 구성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모눈종이 드로잉 연작’은 36장의 모눈종이 위로 이미지와 색을 천천히 쌓아나간 과정의 작업으로, 종이들이 제 몸의 끝을 서로 맞대고 줄지어 크고 작은 하나의 장면들을 구현한다.

36개의 개별 이름을 가진 이 드로잉 시리즈는 하나의 이미지와 그에 상응하는 각 제목을 하나씩 눈으로 맞춰 보며 읽게 하는데, 이 과정은 마치 어린 아이가 사물을 인식하고 말을 익히기 시작할 무렵, 그림과 단어를 결합하며 언어를 배워가는 일과 닮아 있다. 그건 어쩌면 수연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순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순수의 이미지들은 물에 녹아 손에 스며드는 비누의 향처럼, 자연스럽게 수연의 작업들이 놓인 공간에 퍼져 나간다. 이 일은 옥사 천에 바느질한 작업 〈Songs without Words〉의 제목을 따라 말 없이 그저 자연스럽다는 듯 이미 벌어지고 있다. 

《비누향》은 간과하기 쉬운 매일의 삶에 놓인 반복되는 시간과 가까운 관계, 간직해야 할 감정들을 다룬다. 그리고 이에 따라 오는 상태로써 자연스러움, 편안함 그리고 친밀함에 대하여. 이 단어들이 가진 가뿐하게 아름다운 의미와 모양새는 실제 삶에서 저절로 발생할 일 없고, 자신의 삶에 맞닥뜨린 매일의 문제들의 가지를 쳐내고, 힘써 살아내고, 하루하루 제 일상과 마음을 지켜나갈 때 한순간 빛처럼 혹은 좋은 향을 들이마실 때의 짧은 호흡처럼 찰나로 찾아든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건 이 빛과 향을 감지하고 제 삶에 두려는 의지, 자신의 삶에 밝은 빛과 좋은 향이 깃들 거라는 어쩌면 그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