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온전히 상호작용하고 만물이 막힘 없이 소통한다. 위와 아래에 있는 것들이 온전히 상호작용하며 그
뜻이 하나가 된다.
- 『역경』의 태괘에 대한 해설
사람이
죽으면 역사가 된다.
조각상이 죽으면 예술이 된다.
이 죽음의 식물학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필멸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돌로 만든 얼굴이 부서져 땅에 떨어진다.
…
하지만 역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사물은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시선이 사라지면 죽는다.
- 알랭 레네, 크리스
마커, 지슬랭 클로케 감독의 영화
「조각상도 죽는다」(Statues Also Die, 1953)의 내레이터
1.
여행 가이드가 문을 밀어 열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칠흑같이 어두워서
다른 감각, 특히 방향 감각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과 폐소공포증이 더 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은 이미지일까?
눈이 적응하기 시작하자 미묘한 세계가 펼쳐졌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벽화와 조각품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나타나자 마치 동굴이 나를 삼키고 내가 쭈그러들어 동굴 안쪽에 들어와 앉은
것처럼 위쪽과 주변을 모두 아우르는 원근감이 생겼다. 감각이 계속 적응하면서 이미지의 디테일이 드러났다. 이 동굴의 벽화에는 수많은 신화 속 인물과 종교적 상징 외에도 “깨달음을
얻은 오백 명의 도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카르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서 방향으로 두루마리처럼 길게 펼쳐지는 벽화를 통해 인도 남부의 고대 코살라 왕국에서 도적들이 소란을 일으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군대에 붙잡힌 도적들은 눈을 파내는 형벌을 받는다.
도적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반쯤 옷이 벗겨져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피가 주위에 튀고 통곡하는 모습이다. 큰 고통을 당한 도적들은 야생의 숲으로 쫓겨난다. 그런 다음 이야기가
전환되어 부처가 나타나 마법의 가루를 이들의 눈에 불어넣어 시력을 회복시킨다. 도적들은 불교도로 개종한
후 산속에서 수행과 명상을 하며 결국은 모두가 깨달음을 얻는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줄곧 흥미로웠던 것은 불교의 카르마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야기 중에서 시력 상실과 회복이라는 부분과 내 신체적
경험이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내가 그 혼란스러운 어둠 속에서 일시적으로 시력 상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동굴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폭이 완전히 다를지 궁금했다. 감각이 달라졌을까? 다르게 지각했을까?
2.
나는 이번 여행이 시작될 때부터 갈라 포라스-김 작가의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당시 그는 2023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작으로 세 폭짜리 그림 <세월의 녹이
슬어가는 무게>(2023)를 막 완성한 상태였다. 세
점의 대형 드로잉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고창 고인돌 유적지의 고인돌 하나를 상상과 현실의 시점에서 그렸다. 언뜻 보기에 첫 번째 그림은 아무런 내용도 없는 단순한 칠흑 같은 이미지로 보이며, 연필의 흑연으로 여러 겹 칠한 반사적인 금속성 표면만이 그 물성을 드러낸다.
두 번째 그림은 나무와 덤불, 야생화가 고인돌을 감싸고 있는 풍경 속에 고인돌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흑백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작은 판에
‘2408’이라는 숫자와 한글 문구가 부분적으로 잡초로 가려져 있다. 마지막 그림은 세
작품 중 유일하게 다채로운 색이 들어간 작품이며, 괴상한 영역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이 없이 얼룩덜룩하고 다양한 패턴이 추상적인 드로잉 같기도 하고 유기적인 미시 세계를
표현한 렌더링 같기도 하다.
작가가 밝힌 의도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의 동일한 고인돌에 대해 세 가지 다른 관점을 추측하고 가정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두 개 이상의 직립 돌이 수평 석판을 받치고 있는 고대 거석 구조물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무덤이나 묘실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유적은 민무늬토기 시대(기원전 1500년 경부터 300년 경까지 지속)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440여 개의 고인돌이 약 100㎢의 면적에 흩어져 있다. 2000년에 화순, 강화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각각 2주, 2개월, 4개월에 걸쳐 완성한 포라스-김 작가의 작품에서 검은색 드로잉은
이 고인돌 밑 땅속에 묻혔을 법한 죽은 사람의 시점을, 색연필과 밀랍 드로잉은 자연의 시점을, 추상적으로 보이는 색 패턴은 곤충과 동물 및 수천 년 동안 돌에 붙어 자라는 이끼의 시점에서 묘사한 것이며, 풍경 속 고인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인간의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덮여 있는 번호판은 실제로 이 공원에서 2408호 고인돌의
번호를 표시하는 유네스코의 라벨이다.
여기서 포토리얼리즘과 추상은 대립되지 않는다. 기존의 미술사적 시각 분석 용어로 설명하면, 컬러 드로잉과 검은색 드로잉은 모두 형식적으로 추상적이다. 하지만
포라스-김의 작품에서 이들은 우리에게 무형으로 경험되는 ‘존재’를 ‘사실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비구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온전히 접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보완하려 시도한다. 나란히 전시된 세 점의 드로잉은 다양한 공간적, 시간적, 경험적 차원이 얽혀 있는 세 가지 현실을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상상이지만 허구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사람의 인식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인식되지 않은 부분을 사실로
입증할 수 없을 뿐이다.
포라스-김은 이전에도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도시에 있던 피라미드 안의 어둠을 재현한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의 도굴된 구덩이에서 보이는 두 개의 별> (2019), 영국박물관 소장품인 4,500년 된 이집트 석관
내부를 묘사한 <마스타바 풍경>(2022) 등
고고학 유물이나 유적지를 탐구하는 다른 시리즈에서도 검은 드로잉과 유사한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제목과
크기가 다르고 자세히 보아야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연필 자국을 제외하면 흑연으로 그린 이 작품들은 거의 동일하게 보인다. 유머러스하게도 포라스-김은 고인돌 무덤 아래, 피라미드나 석관 안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혹은 우리가 죽었다면
우리 자신)이 어떤 장면을 볼지 함께 상상해 보도록 초대했다. 나아가, 역사를 기록하고 지식을 구성할 때 어둠은 인간 인식의 한계와 제약을 묘사하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사각지대를
가시화한다. 이 세 개의 검은 드로잉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중심이 되어 포라스-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연결한다. 이 작품들은 고대 영혼의 주체성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다른 경험과 현실의 다공성(porosity)과
다양성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끌어내는 정신적 풍경 또는 입구의 역할을 한다.
초기의 일부 작품에서 포라스-김은 예술적 제스처를 사용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고 시각을 다른 형태의 지각 감각, 특히 서구의 고전적 틀과 유럽의 근대성을 벗어난 방식으로 형성, 기록, 유통되는 지식으로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휘파람과 언어의 변형>(2012) 프로젝트를 위해 포라스-김은 멕시코 사포텍 원주민이 사용하는 멸종 위기의 성조 언어 사포텍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담은 비닐
레코드를 제작했다. 오악사카에서 유래한 사포텍어는 최근까지 문서 기록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다. 사포텍어는 성조가 강한 언어로, 단어의 내용이 말의 억양에 일부
포함되어 있어 음색만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휘파람으로 단어를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포텍어가
세계 유일의 휘파람 언어는 아니지만,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에 대한 저항 전략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원주민들은 휘파람으로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대화를 음악적인 표현으로 위장했다. 포라스-김은 자신이 직접 휘파람 부는 소리를 녹음하고 나아가 그
소리를 음표로 변환했다. 이와 유사하게, <근육의 기억>(2017)은 음악이나 리듬, 외부의 단서 없이 한국 전통춤을
시도하는 무용수의 실루엣을 기록한 영상 작품이다. 반복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형성된 근육의 기억은 지식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그릇이 된다. 매번 다른 무용수가 다른 체형과 해부학적 구조, 안무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연기하고 움직이면서 특정 지식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조정된다. 여러 면에서 이와 유사하게, 구전 전통을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얼굴의 움직임과 혀와 입술을 비틀고, 접고, 치아를 건드리고, 침을 모으는 촉각을 통해 개별적인 근육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휘파람과 언어의 변형>, <근육의 기억>은
모두 집단적 역사와 비물질적 기록에 내재된 개인적 경험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3.
포라스-김의 작업은 서구 인식론과 식민지적 프로젝트의 인간 중심적 경험과 인류세적
입장에 일관되게 도전한다. 이를 위해 그는 인간이 아닌 사물과 인간의 유해, 먼지, 박테리아, 곰팡이
같은 색다른 개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 또는 불연속성의) 관계”1를 뒤흔들고 풀어내기 위해 사물을 “질서화”한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강력한 인류학적 충동을 담고 있으며, “인류가 발명한
자연과의 매개 체계로서 문화 또는 문화들…은 기술 능력, 언어, 상징적 활동, 생물학적 유산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집단적 결집
능력을 포함한다”는2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포라스-김이 자연과 협업하는 방식은 단순히
비인간적인 의식을 낭만화하거나 인간적 현실을 도피하는 통로로 기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의 인류학적
관점에 좌우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는 분류 체계, 과학적 패러다임, 기술적 매개, 미적
형식, 종교적 신념 등으로 자연을 대상화하는 문화적 암호화 장치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신체, 사물, 환경에
대한 예술적 조작과 재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조의 이해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서구 인식론이 강요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더욱 결정적으로는, 자연물과 사회적
존재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데 사용되는 개념적 도구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바이옴, 빗물, 주변 습도 등 포라스-김이 협업을 위해 ‘초대’하는 ‘자연 요소’는 물론 항상 존재해 왔다.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수많은 곰팡이, 박테리아, 기타 미생물들은 우리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이들은 손님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주인이다. 현재 작업 중인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 시리즈(2022년까지
진행)에서 포라스-김은 영국박물관 수장고에서 수집한 곰팡이
포자를 세균 배양액에 적신 모슬린 천에 증식시키고 아크릴 진열장에 넣어 번식하도록 유도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솜털이 있는 회색-갈색-녹색의 곰팡이 포자가
서서히 자라나면서 텅 빈 천을 풍성한 미시적 세계로 변화시키며 살아있는 그림으로 만든다. 이는 미술관의
보존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으로, 포라스-김이 이야기하듯,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곰팡이 포자가 소장품을
갉아먹었다.”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의 흥미로운 의견을 고려해보자. 그는 미래의 외계인 발굴자들은, 우리가 거대한 공룡 골격을 쥬라기 시대를 대표하여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식으로 인간을 복원하고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대신,
아직 태어나거나 도래하지 않은 탐험가들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이고 기능적이며 복잡한
생태계를 유지해 온)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바이옴과 미생물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3 포라스-김의 접근 방식은 잘라시에비치의
명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로 보이지만 종종 편향되고 무지한 관념을 구축하기 위해 무시되고
생략 혹은 경시되는 삶을 인정하고자 한다. 2억 년 전 최상위 포식자 공룡이 사라졌을 때 그랬듯이 혹은
미래에 인간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살아 있는 태피스트리 안에 새로운 색과 구성을 선보일 것이다. 작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공간 안에서 곰팡이를 다시 자라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사물들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잘라시에비치는 아직 인간을 사라지게 놓아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미래의 발굴자들이
경외감과 존경심을 갖기를, 지구의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류의 유골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기를
바란다. 포라스-김과 협업한 국립광주박물관의 신원 미확인
유골 2구를 비롯해 오늘날 박물관 소장품에는 인간 유해가 적지 않다.
수백 년 전 난파선에서 발견된 이 유골은 신창동43이라는 분류 코드로만 식별되는 연구 대상으로, 인간성이 박탈된 채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왔다. 이러한 제도적 관행에
흥미와 문제의식을 느낀 포라스-김은 이 유물들의 권리를 죽은 자들의 몸이 가지는 권리로 돌려놓으려 한다. 그는 많은 문화와 우주론에서 “죽은 후에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당사자의 특권이 돼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박물관은 언제든지 인류의 존재를 인식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4 포라스-김은 무늬를
만들어 영혼과 소통하는 주술 행위인 ‘네크로맨시’를 사용하여
고인에게 자신들의 유해가 박물관이 아닌 어디에 묻히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네크로맨시는 종이 마블링 기법을
통해 이루어지며, 종이를 물그릇에 담근 다음, 물에 잠긴
종이에 잉크를 떨어뜨려 줄무늬와 소용돌이를 만든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2022)에 보이는 결과 이미지는 작가가 지형을 도표화한 ‘잠재적
풍경’을 보여준다. 비록 이미지가 추상적이고 죽은 자의 소망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포라스-김은 의례적인
절차를 구성하여 그들의 사후 세계를 존중할 수 있다.
어쩌면 추상적인 이미지는 다른 종류의 길 찾기 도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경험적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다른 척도나 영역의 의식에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고인돌에 대한 자연의 시각을
담은 <세월의 녹이 슬어가는 무게>의 컬러 드로잉과
유사하게,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은
인간의 경험으로는 상상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방식으로 작은 유기체와 생명체가 상호작용하고 번성하는 소우주의 풍경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가장 통제된 보존 조건에서도 유기체의 유해는 곤충을 통해서나, 박테리아나
균류의 성장 또는 점진적인 화학적 분해와 산화의 영향으로 인해 박물관이나 기타 보관 시설에서 계속 분해된다. 어쩌면
고인의 영혼은 박물관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호수, 바위, 토양, 그리고 수많은 지층과 유기물과 무기물, 생물과 무생물이 겹겹이 쌓인
곳에서 쉬며 진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
서양 인식론이 강요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재협상하기 위해 포라스-김이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는 종종 현대 과학 기술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이해를 거부한
채) 미신, 비합리성 또는 원시성으로 성급하게 비난해 온
관행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한다. 포라스-김은 죽은 자와의 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것 외에도 증발, 습기, 흙, 먼지 등 작가가 “기관 내에 물리적, 비유적으로 갇혀 있는”5 것으로 간주하는
다른 ‘영혼’을 소환하고,
기관의 큐레이터와 보존전문가와 협력하여 의례와 예식을 기획하는 등 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유익한
환경’을 조성하여 박물관 유물의 영적 생명을 회복하고 억압된 마술적 힘과 능력을 일깨우는 작업을 한다.
포라스-김은 <신호 예보>(2021-진행
중)에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예언 같은 과정을 설정했다. 제습기가
전시 공간에서 주변의 물을 빨아들이고, 물이 고이고 응축되면서 천장에 매달린 흑연 가루를 담은 삼베
시트를 통과해 바닥에 놓인 빈 캔버스 패널에 떨어지면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예언으로서의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동아시아
수묵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때로는 즉흥적이고 유동적이며, 때로는 혼란스럽고 활기찬 텍스트 같은 깊이와
먹물의 겹침은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갤러리든 역사적인 수도원이 미술관으로 바뀐 곳이든 특정 장소에 대한 예언을 드러낸다.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2021)에서 작가는 동굴이
밀집한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신성한 동굴 치첸이사 세노테 발굴의 험난한 역사를 들여다본다.
마야인들은 이 천연 동굴을 세속 세계와 저승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마야의 비와 천둥의 신 차크가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곳으로 믿었으며, 이곳은 비의 신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의례에 따라 시신과 장례용품을 매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20세기 초 고고학 발굴의 일환으로 동굴을 준설하고 유물과 유해들을 수습하여 하버드대학교의 피바디 고고학 민속학
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 작업에서 포라스-김은 (고고학 발굴 시 유물이 제거된 빈 공간을 다시 채우는 데 사용되는) 나무에서
추출한 수지인 코팔을 피바디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채취한 먼지와 혼합하여 직사각형 조각이나 큐브를 만들기도 한다.
플랫폼이나 받침대 위에 놓인 이 오브제에는 매일 의식적인 절차를 통해 수집된 빗물을 뿌리는데, 그
형식과 참여자는 전시 기관에서 해석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조각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제물로
바쳐진 유물 및 유해와 마야 문명의 비의 신을 다시 만나게 한다.
5.
지구화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Vladimir Vernadsky)는 생명
자체를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베르나드스키는 심오한 지질학적 시공간에서 이야기하며, 포라스-김의 작업은 이를 반영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자연적 시간, 경험적 시간, 죽음의
시간, 영적 시간, 부패의 시간, 박물관의 시간, 역사적 시간이 서로 얽히고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예술적 구성이 되어 간다. 한편으로 포라스-김은 본질적으로
개념 예술가이기는 하지만 결코 기존의 개념주의자가 아니다. 번뜩이는 통찰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개념적인
제스처에 불과한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고도로 연구에 기반한 포라스-김의 작업은 연구 주제를 단순히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대신 과정과 재료가 매우 중요하며, 주제, 매체, 주변 인프라, 참여자 및 관객 안에 미학의 정치가 내재되어 있어
작업의 복잡성과 깊이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연필과 흑연을 이용한 드로잉을 핵심 매체로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다. 작가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미술 재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대로 결과물은 스케치, 습작, 특히 ‘전통적인’ 유화에 대한 반항으로 존재하며, 이는 잠재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고려할 때 거창하고 대단한
예술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6 포라스-김은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종이와 연필 드로잉을 수단으로 연습하며 드로잉 소재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드로잉은 대부분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묘사 대상의 원래 스케일과 유사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을
통해 포라스-김은 소재의 균열과 패턴의 작고 독특한 디테일을 관찰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상대적인 대상의 크기이든, 공들여 오랜 시간 작업하며
반복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때의 신체적인 지구력이든) 특정한 한계에 도달하며 이를 시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포라스-김의 드로잉 과정은 수행적이 된다. 즉 드로잉 과정이 하나의 의례가 되는데, 마치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에서 빗물을 뿌리는 것과 유사하게,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대상을 위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재구성한다.
6.
당연하게도, 포라스-김이 역사적 유물뿐만
아니라 박물관 및 기관 운영의 다양한 측면에 통찰력 있고 재치 있게 관여한 점을 고려할 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 대부분은 과거와 현재 진행 중인 식민주의를 감안하는 시대에 유물의 송환과 그것이 박물관학, 문화유산, 정책 결정 면에서 가지는 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1953년 프랑스 고전 영화 「조각상도 죽는다」는 이러한 문제를 처음으로 널리 유포되는
형식으로 알렸으며,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감독 알랭 레네(Alain Resnais),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지슬랭 클로케(Ghislain Cloquets)는
아프리카의 의례용 유물 및 영적 유물을 수집한 유럽 박물관의 렌즈를 통해 식민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영화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의 검열을 받아 1964년까지 프랑스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포라스-김은 이 영화와 많은 감성을 공유하는데, 특히 역사적 유물이 본래, 어쩌면 더욱 중요하게, 의례용 사물과 영적인 사물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분명히
오늘날 박물관 관행은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유산, 즉, 식민지
시대의 특정 기술과 서구 기관들에 내재된 인식론에 속하는 낡은 구조를 반영하며 실제로 지속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반환이란 유물을 물리적으로 원소장처나 원산지로 돌려보내는 지리적 의미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포라스-김은 이것이 사실과 거리가 멀고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정체성
회복, 법적이고 윤리적인 체계의 재구성, 역사적 부당함과
식민지 착취, 문화 제국주의를 바로잡는 화해, 역사 다시
쓰기 등으로 단순한 지리적 국경과 민족국가 정치를 넘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개념적 구조를 만들고 수행적 반복과 지속을 통해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둘러싼
문화적 규범, 정체성,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일상과, 주체와 통합되어 경계를 넘나들고 삶과 죽음을
연결하며 다양성을 열어준다.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고비 사막에서 천 년 역사의 모가오 동굴을 거닐면서 포라스-김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 Michel Foucault, The Order of Things (London:
Routledge, 1975), 412.
2 Philippe Descola, The Ecology of Others, trans. Geneviève
Godbout and Benjamin P. Luley (Chicago: Prickly Paradigm Press, 2013), 35.
3 Jan Zalasiewicz, The Earth After Us: What Legacy will
humans leave in the rock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191-218.
4 데프네 아야스, 「갈라
포라스-김, 우리를 구속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도피」, 제13회 광주비엔날레,
https://13thgwangjubiennale.org/ko/artists/gala-porras-kim/.
5 A terminal escape from the place that binds us,
Commonwealth and Council, November 6 – December 18, 2021,
https://commonwealthandcouncil.com/exhibitions/a-terminal-escape-from-the-place-that-binds-us/press.
6 갈라 포라스-김, 줌(zoom)을 통해 이루어진 필자의 대화, 202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