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주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영상을 위주로 작업하며 가사 노동, 돌봄 노동 등
인간의 신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잠’을 키워드로 몸을 재운다. 울사
소재로 된 두 점의 설치 작업과 연계된 사진 작업, 그리고 세 점의 드로잉. 전시의 출품작은 최근 퍼포먼스 형식으로 몸을 앞세운 행보와 차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신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들은 생리혈, 분비물
등 여성 신체가 남기는 자취를 상기시키며 공간을 비집는다. 전시장 중앙에 〈진실된 이야기1: 냉(冷)〉(2022)이라는 표제를 가진 작업이 놓여있다. 작은 불꽃을 얹은 듯
보이는 형상은 차가운 여성의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자국을 표현한 것이다. 신체의 분비물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일종의 증상이다. 증상이 우리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외부와 신체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라고 할 때 조영주는 일견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물질들에서 저항성을 발견한다. 활성화된
신체의 활동으로부터 생산된 물질들은 일종의 증상으로서 신체가 받아들이는 자극에 대한 투쟁의 표상인 것이다. 조영주는
증상으로 발현되는 외부 자극의 원인을 추적하기보다 그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미지
위에 자신의 몸을 올려두면서 사진 작업 〈진실된 이야기1: 온(溫)〉(2022)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신체를 노출한다. 작가를 포함한 세 여성의 신체는 일말의 섹슈얼리티도 노출하지 않으며 피부와 피부가 맞닿을 때 감각되는 온기를
전한다. 바닥에 깔린 흔적 위에 노출된 몸, 카메라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과 꼿꼿한 자세는 차가운 공기와 부딪히며 긴장감을 부여한다. 전시장 벽에 설치된 〈풀 타임-더블: 10월 9일〉(2022)은 날짜와 시간을 의미하는 그래프로, 출산 이후 수십 개월간
작성한 육아일지 중 24시간, 단 하루를 기호화한 작품이다. 2019년도에 제작한 작품을 울사 소재로 출력한 이 작품에는 아기의 수유와 배변, 수면에 대한 기록이 담겼다. 작업은 잠들지 못하는 밤과 낮의 반복을
상기시키며 노동하는 몸과 쉬는 몸의 굴곡을 가시화 한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물, 매일 수행하는 신체적 노동. 두 작가는 평범한 사물과 지루한 움직임을 하나의 장면으로 불러들인다. 하얀
구조물 형태의 설치 작업인 조영주의 〈휴먼가르텐〉(2021)은 라이브 퍼포먼스 〈인간은 버섯처럼 솟아나지
않는다〉(2021), 영상 〈꼼 빠니〉(2021), 라이브
퍼포먼스 〈노란 벤자민과의 동거〉(2022), 영상 〈콜레레〉(2022)
등에서 신체의 배경으로 연출되었다. 이안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체의 장소가 되었던 〈휴먼가르텐〉을
자신의 작업 재료로 삼는다. 지금까지 〈휴먼가르텐〉이 인간의 움직임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이안리의 시선으로 독립된 조각의 위상을 부여 받은 채 사물의 무대로 사용된다. 매번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성격으로 제 쓰임을 찾는 조영주의 하얀 구조물은 이안리에게 불완전한 사물이자 온전한 형상을 붙잡지 못한 임시적인 조각이다. 이안리의 〈시계태엽 오렌지 1, 2, 3〉(2023)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구조물의 뒤집힌 커버(cover)다. 인조 가죽 소재 커버로 된 구조물의 일부는 건조된 산호, 마른 오렌지와
레몬 등의 사물 아래로 뒤집힌 채 내피를 드러내고 있다. 잠기지 않은 외피 사이로 파란 스펀지, 가려져 있던 봉제 자국, 그리고 공업용 제품임을 알리는 표기가 노출된다. 인조 가죽에서 천으로 뒤바뀐 구조물의 재질은 한 사물에서 가려져 있던 이면을 보여주고, 사물을 보호하고 가리기 위해 제작된 덥개의 용도를 전복시킨다. 안과
밖이 뒤집히면서 사물은 외부로부터 취약해지고 하얗게 더러워진다.
이쯤에서 전시가 앞세운 ‘잠'이라는
단어를 다시 가져와본다. 꿈이라는 정신현상을 안내하는 상태인 자는 행위는 외부 세계와 나의 거리를 확보하는
조건이 된다. 무의식적 활동이라고 여겨지는 꿈은 개인의 상징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서 한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투영한다. 이때 꿈은 의식적 활동을 반영한다기보다 몸에 각인된 기억의 발현으로서
의식이 누락한 장면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안리와 조영주는 꿈의 양상으로 현실을 투사하기보다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현실의 장소에서 꿈의 장면을 찾는다. 애초에 실체를 붙잡거나 원형을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사물의
잃어버린 면면, 휘발된 신체의 움직임. 이미 상실해버려 되찾을
수 없는 정체 없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생활의 흔적, 사물의
자취를 추적하는 일종의 고고학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작가는 꿈이 현실의 지각 대상을 근원으로 삼는 것처럼 현실의 대상에서 상상의 기원을 찾는다. 모든 게 가상의 장소로 변환되는 오늘 세계에서 피부가 감각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들에 주목하며 사라져버린 물질의
흔적을 이미지로 남겨두는 것이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어제, 유물처럼
죽어버린 오늘, 비누처럼 사라지는 내일. 생산과 소비의 순환
속에서 두 작가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지금의 시간이 맺지 못한 열매를 매만지며 오늘을 지켜내기 위한 장면을 꿈꾼다.
이안리(1985년생, 한국)는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 DNAP를 졸업하고, 동미술학교에서 DNSAP를 졸업하였다. 개인전으로 《이안리의 살구 바》(드로잉 스페이스 살구, 2018); 《네. 다섯 개의 거울》(드로잉 스페이스 살구, 2016) 을 개최하였다.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2); 스페이스 소, 서울 (2021); 하이트컬렉션, 서울 (2020); 제주현대미술관,
제주 (2018); 성북예술창작센터, 서울 (2017) 등 국내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조영주(1978년생, 한국)는 성균관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사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 조형예술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학, 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DNAP와 DNSEP 학위를 수여받았다. 개인전으로 《오계(五季)》(서울로 미디어캔버스, 2020); 《코튼 시대》(대안공간 루프, 2020); 《젤리비 부인의 돋보기》(플레이스막 레이저, 2019); 《가볍게 우울한 에피소드》(코너아트 스페이스, 2013) 등을 개최하였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22); 경기도미술관, 안산
(2022);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22);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21);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21);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2022, 2021, 2021); 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202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 서울 (2018) 등이 있다. 2020년 제20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 등 입주 작가로 다수
참여하였다. 현재 조영주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송은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 서서울, 부산현대미술관 등 국내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