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미디어를 주요 매체로 활용하는 박경근은 〈청계천 메들리〉(2010)를 통해 전근대와 근대가 착종된 채 진행된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청계천 일대의 공장과 그곳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함축적으로 풀어내었다. 또한, 〈철의 꿈〉(2014)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가 배를 연상시킨다는 점에 착안하여 반구대 암각화 인근에 위치한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포항제철과 현대조선소를 철의 관점에서 다루며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 예술의 기원, 신화, 그리고 그것과 연동되어 진행되어 나간 한국의 근현대사를 탐색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작가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스케일의 자동차 공장의 빛과 공기, 로봇들의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웅장함과 역동성을 〈1.6초〉(2016)에서 담아내거나, 한국 남성이라면 대부분 경험한 군대문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군대: 60만의 초상〉(2016) 등을 제작하였다. 이들 작업에서 작가는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남성 중심적 사회시스템을 철, 자동차, 군대 등을 통해 표상함으로써 한국의 남성중심 문화와 그것이 표상된 스펙터클한 영상 이면의 사회를 반추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한편, 최근 박경근이 새롭게 선보인 작품은 이전 시기의 작업들과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라는 면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것에 다가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천국의 계단〉(2016)이라 명명된 이 작품은 전시 개막 당일 공간 전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퍼포먼스에 대한 실시간 영상과 기존에 촬영한 영상을 함께 상영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연전 공전의 히트를 쳤던 TV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천국의 계단’을 차용한 이 작업은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인 4명의 인물들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 방식에 주목하며, 그러한 관계의 방식을 유형화시켜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수동성과 적극성, 한 발 먼저 손을 내미는 몸짓과 머뭇거림, 기쁨과 후회 등… 관계맺기 과정에서 노정되는 감정이 4명의 무용수들의 만남과 헤어짐, 엇갈리듯 스쳐지나가는 일상적인 몸동작과 표정을 통해 표현된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이러한 퍼포먼스 영상을 드러냄에 있어 기존에 촬영된 영상과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서의 장면을 스크린에 교차하여 투사시킴으로써, 관객에게 장소적·시간적 혼란을 초래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작가는 현장 촬영된 실시간 영상을 프로젝션함에 있어서도 투사된 영상이 다시금 카메라 렌즈에 잡혀 또 다시 스크린에 투사되게 만드는 촬영과 프로젝션 사이에 우리의 눈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시간의 차이를 이용한 미러링 효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한 공간 속에 버무려 놓는다. 지금 막 지나가버린 순간과 바로 지금, 그리고 또 금방 다가올 미래가 한 화면의 프레임 속에 녹아들어감으로써,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동시적이면서도 비동시적인 분절된 시간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의 화면 속에서 분절되며 되풀이되고 섞여버리는 시간의 순서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걸린 디지털시계처럼 연속적이지만 분절되어 있으며, 분절되어 있지만 또 연속된 흐름으로 다가온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한 화면과 공간 속에 공존하도록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가시화 한 것이며, 이러한 분절은 어쩌면 화면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퍼포먼스하고 있는 인물들 간의 어긋난 관계를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절된 관계 역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이곳과 저곳, 그때와 지금의 구분을 무화시켜 나간다. 〈천국의 계단〉에서 보여준 이와 같은 문제인식은 그의 전작인 〈시공간 기계〉(2015)에서의 문제의식을 이은 것으로 이들 작품은 다큐멘터리 영상작업에서 출발한 박경근이 점차 영화의 문맥과 미술의 문맥을 성공적으로 넘나들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