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b. 1989)은 한국의 모더니티가 만들어낸 사회적 풍토와 부산물을 엮어 영상, 설치, 조각, 도자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다. 특히 한국 사회에 잔존하는 기이한 대중문화와 지정학적 시간성에 주목하며, 이에 깃든 집단의 감정과 잔상을 탐구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한국 사회에 떠도는 파편적인 이미지를 수집하고 가공 편집하여 끊임없이 변신하는 변종적인 미디어와 오브제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이에 내포되어 있는 다층적 맥락과 현상을 확장하고 증폭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최윤, 〈국민 매니페스토〉, 2012-2014,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시간 25분. ©HITE Collection. Photo: 임장활.

최윤의 작업은 이동통신사들의 현란한 홍보물, 케이팝 아이돌의 유행가, 한복을 입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거리의 마네킨, 흔한 원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조잡한 벽지와 스티커 등 우리의 일상 속에 만연한 것들이지만 어딘가 의심스럽고 기이한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테면, 〈국민 매니페스토〉(2012-2014)는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국내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오른 케이팝 가사를 웅변의 형식으로 바꾼 사운드와 달력 이미지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음악이 빠진 채 가사의 웅변만이 울려 퍼지게 된 케이팝은 그 달에 해당하는 풍경사진과 함께 오버랩된다. 가령, 1월은 아이유의 ‘좋은 날’ 가사에 31장의 1월 달력 풍경 사진이 나타난다.


최윤, 〈국민 매니페스토〉, 2012-2014,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1시간 25분. ©최윤

최윤은 당시 남한 정부가 국경 부근에 대형 스피커 11개를 설치하여 북한을 향해 케이팝을 반복해서 튼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이와 동시에 서울 대부분의 거리에서는 그 달에 히트를 치고 있는 동일한 케이팝이 반복되어 재생되는 상황에 주목하였다.
 
전 지역에 걸쳐 무한히 소비되는 대중 가요는 화려한 멜로디와 그 기저에 깔린 가사(언어)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집단적인 심리를 형성한다. 이에 발맞춰 케이팝은 국내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최윤은 이러한 케이팝의 가사를 웅변조로 번역하고 벽에 걸어 놓고 매일 쳐다보는 달력의 이미지와 엮음으로써, 이를 오늘날의 국민선언문으로 기념한다.  


최윤, 〈벽 스티커-스스로 접착 할 수 있는 벽 장식〉, 2014, 월 포인트 스티커, 사진, 앨범, 가변크기 ©최윤

이와 함께 최윤은 길거리나 일반적인 가정집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테리어 시트지를 작업에 종종 등장시켜 왔다. 빨간 장미꽃, 구름, 잔디, 별 등 자연의 이미지를 밝은 색조로 담은 시트지들은 한국 곳곳에서 발견되다가 천천히 사라져갔다.
 
당시 작가는 인기를 끌었던 시트지 중에서 요소별로 분리되어 하나씩 떼어서 전체 모양을 직접 구성할 수 있는 포인트 스티커에 주목했다. 이는 서울의 지하철과 같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가짜 자연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집 앞 정원을 가꾸듯이 건물 곳곳에 각기 다른 꽃과 나무를 만들어 놓았다.


최윤, 〈벽 스티커-스스로 접착 할 수 있는 벽 장식〉, 2014, 월 포인트 스티커, 사진, 앨범, 가변크기 ©최윤

이러한 스티커에는 ‘모양대로 하나씩 떼어내 연결하여 붙이면 더욱 생기 있고, 화사한 공간으로 바뀝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작가는 이를 전시장에 비치하여 작가와 관객 모두가 나름대로의 꽃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시장을 더욱 ‘생기 있고 화사한 공간’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이처럼 최윤은 일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공공) 환경미화, 실내장식, 취미사진, 전통문화, 한류문화 등 소위 통속적이라 칭해지는 것들을 주목해 왔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과거나 미래에서 온 것 같지만 동시대의 부산물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주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로 어딘지 생경함을 자아낸다.
 
최윤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찌꺼기’라 부르며, 이들을 포착하고 이접, 재배치하면서 본래 이미지가 사용되는 방식과 이것에 투영된 사용자 개인 혹은 집단의 심리와 믿음이 무엇인지 질문해 왔다.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 ©최윤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은 이러한 작가의 질문과 함께 찌꺼기-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추적해볼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는 ‘하나코,’ ‘윤윤최,’ ‘최윤’이라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의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한 ‘윤윤최’는 이미지의 생산 및 작동 방식을 담당하며, 홈페이지에 파일을 업로드하듯 작업의 파편들을 가공 편집하여 서로 언제든 접착 가능한 상태로 전시장에 던져 놓는다.


최윤, 〈하나코와 김치오빠 외 연속재생〉, 2017, 3채널 비디오, 사운드, 29분.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 ©최윤

한편, ‘하나코’는 2015년부터 최윤의 작업에 등장하는 ‘진짜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익명의 인물이다. 여러 편의 영상이 하나의 재생 리스트로 엮인 〈하나코와 김치오빠 외 연속재생(이하 ‘하나코 연속재생’)〉(2016)에서 하나코로 추정되는 인물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무모하고 알 수 없는 행동을 지속한다.
 
미술관이나 길거리 등 다양한 공공 장소에서 직립을 거부하고 기어 다니거나, 빙빙 돌며 사진을 찍으면서 방위를 흩트리는 등의 이상 행동은 매끄럽고 딱딱해 보이는 세상과 불일치를 만들고 균열을 낸다.

최윤, 〈하나코 100〉, 2017, 아크릴 전단지 꽂이, 아크릴 판, 스노우지에 프린트, 각 120x80x3 cm.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 ©최윤

이와 같은 하나코의 즉흥적인 행위들은 벽 너머 하얀 전시장에서 수많은 하나코와 도구들로 분할, 변환되어 펼쳐진다. 영상 속의 얼굴 없는 몸인 ‘하나코’는 전시장에서 ‘윤윤최’를 만나 현실의 여러 이미지로 실체화된다. 영상에서 ‘하나코’와 함께 등장했던 오브제들은 〈퍼포먼스 도구와 찌꺼기〉(2017)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에 나열되고, 기존의 〈하나코 50〉(2015)은 100명으로 늘어나 각각 100장씩 인쇄되어 벽에 진열되었다.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 ©최윤

뿐만 아니라, 최윤은 영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피카츄 인형이나 음식 모형들과 같이 조악한 물건들을 다소 변형시켜 이곳저곳에 배치하고 전시의 ‘찌꺼기’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 주변에는 마치 데이터 잔여물인 캐시 파일과 같이 지워도 남겨진 찌꺼기의 찌꺼기들이 인터넷 동영상을 흉내내는 〈SS 시리즈〉(2009-2017)에 달라 붙어 곁다리 장식으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인사하는 마네킹 〈인사봇〉(2017)이 빠른 통신 속도를 홍보하며 전시장 입구에 서 있고, 인테리어로 애용되는 완제품 이미지 〈창문그림액자〉(2017)와 〈해바라기 배경화면〉(2017)은 전시장 벽면에 부착되어 있었다.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 ©최윤

이러한 전시에서 최윤은 ‘윤윤최’를 불러와 ‘하나코’와 함께 일상에 편재하여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감춰지고 잊힌 존재들, 즉 다양한 ‘찌꺼기’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찌꺼기들은 그의 작업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고 교차되고 또 확장하게 됨으로써, 이와 연결된 현실의 다양한 지점을 상상하게 만든다.


《마음이 가는 길》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0) ©최윤. 사진: Baufoto/ 홍철기

2020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마음이 가는 길》에서 최윤은 소위 ‘한국’적이라 느껴지는 것들에 대한 집단의 태도와 감정을 다뤘다. 전시는 사무실 파티션,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 변형된 캐릭터 조형물, 오래된 주택의 전형적인 인테리어, 관공서의 게시판 등을 참조한 작업물과 여러 산업 자재들,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의 형상이 뒤엉켜 붙은 몸체들이 난무하는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음이 가는 길》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0) ©최윤. 사진: Baufoto/ 홍철기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전시장에서 ‘게시’와 ‘갱신’이라는 영역으로 묶여 배치되어 있었다. 먼저 ‘게시’는 언젠가부터 공공 장소나 생활 공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거나 붙어있는 여러 종류의 시각물을 바탕으로 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보이는 것들을 통해 작가는 이러한 일상 속에서 시각적 권력이 내면화되고 장식화되는 면면을 포착했다.
 
이러한 게시물의 벽 사이로는 최윤의 작업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들이 스스로를 갱신해가며 몸을 불려나가 사람 크기만큼 커진 ‘척추동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음이 가는 길》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0) ©최윤. 사진: Baufoto/ 홍철기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 자리잡고, 사방으로 수많은 디지털 이미지들을 흘려 보내는 영상 〈게시계시개시〉(2020)와 사운드 작업 〈호러 에로 천박 주문〉(2020)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영상과 호응하고 충돌하며 작동하는 〈호러 에로 천박 주문〉은 층간 소음 대응 음악으로 재발굴 된 노래들이 호러, 에로, 천박, 주문이라는 공통된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것에서 착안한 사운드 믹스이다.
 
작품은 잠들게 하는 음악과 잠들지 못하게 하는 음악을 동시에 재생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쉼 없이 자신을 내보이고 새롭게 고쳐야 하는 세태에 대한 피로감을 표현한다. 파티션으로 느슨하게 구획된 공간은 관객의 시선과 동선을 제한하는 동시에 제안하며, 돌고 도는 마음의 길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최윤, 〈마음이 가는 길〉, 2021, 단채널 영상, 30분 30초, 칼라, 사운드, 벽에 에어 스프레이, 유리창에 프린트 시트 ©국립현대미술관

이듬해 제작된 전시와 동명의 작품 〈마음이 가는 길〉(2021)은 전시 《마음이 가는 길》이 끝난 후 텅 빈 전시장을 여러 명의 할머니들이 배회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할머니’라는 존재는 사실 노인의 분장을 한 젊은이들로, 이들은 할머니로 부를 수 있는 이미지, 할머니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아니기도 한 것, 진위를 떠나 할머니로 발현된 기괴함을 표상한다.
 
즉, 여기서 ‘할머니’는 가속화된 사회의 흐름 안에서 금새 철 지난 것으로 여겨지며 남겨진 찌꺼기들이 의인화된 것으로 보인다. 최윤은 이러한 존재를 통해 ‘끝없이 다시 고쳐 새로이 내보이는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최윤, 〈3성TV은하46” (배경 음악: 비트코인과 블랙홀)〉, 2023-2024, 여러 소킹 시간을 적용하여 구운 도자, 구리 전선, 동전, 각종 쇠붙이, 금속 산화물 (도자 자문: 마리안느 페이넨부르크), 실시간으로 변주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사운드 (음원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프로그래밍: 김동진, 이상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한편, 최윤의 근작인 〈3성TV은하46” (배경 음악: 비트코인과 블랙홀)〉(2024)은 삼성전자가 ‘세 개의 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은하계’라는 뜻의 ‘갤럭시’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는 것에서 착안하여 제작되었다. 6개의 패널은 각종 쇠붙이와 구리 전선, 동전을 금속 산화물과 함께 검은 흙에 구워 주조한 텔레비전인 셈이다.
 
산화아연과 석영 등이 만나 일정 온도에서 잠시 그 온도에 머무는 ‘소킹 시간(soaking hour)’ 동안 결정(結晶)은 생기고 자라난다. 패널들은 쌍을 지어 이 담금 시간을 다르게 설정한 것으로, 서로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지금의 사회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헤아리는 대신 수많은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며 ‘스크린 타임’에 빠져든다. 최윤은 텔레비전 화면 뒤에서 신호를 보내는 광물들을 떠올리며 지표면과 멀리 떨어져 있는, 아주 깊은 지하와 우주의 시간으로 무빙 이미지에 접근한다.


최윤, 〈3성TV은하46” (배경 음악: 비트코인과 블랙홀)〉, 2023-2024, 여러 소킹 시간을 적용하여 구운 도자, 구리 전선, 동전, 각종 쇠붙이, 금속 산화물 (도자 자문: 마리안느 페이넨부르크), 실시간으로 변주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사운드 (음원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프로그래밍: 김동진, 이상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이와 쌍을 이루는 〈(배경 음악: 비트코인과 블랙홀)〉은 웹상에서 전시 기간 동안 스트리밍된다. 일련의 지연된 시간을 동반한 데이터들을 여러 잡음으로 수신하는 관객은 일정 시간 동안의 머묾을 행하며 어떤 세계로 접속할 것인가를 결정(決定) 하게 된다.
 
산화된 전선과 녹은 동전이 박힌 가짜 텔레비전인 이 작품은 마치 물신주의의 반대편에 놓인 청동거울과 같은 주술적 오브제인 동시에, 먼 거리의 정보를 빛이 아닌 암흑으로 제시하며 가늠하기 힘든 굉대함을 담아보려는 시도다.


최윤, 〈마음〉, 2020, 인형, 구슬 줄, 흡착 고무, SCY가 올린 사진, 시트에 프린트, 가변크기 ©최윤. 사진: Baufoto/ 홍철기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 속에서 그리워하거나, 선망하던 것들은 어느새 시답지 않은 농담처럼 하찮고 철 지난 것들이 되어 버린다. 이는 찌꺼기가 되어 사회에 축적되고, 어느 순간 웃음과 공포를 주는 존재가 된다. 최윤은 이렇게 남겨진 아련하고 초라한 찌꺼기들을 모으고 엮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

 ”찌꺼기는 생산과 소비에 딸려 나와 남은 것이지만, 버리기 힘들고 버려도 다시 생기며, 점점 불어나기에 난감한 존재입니다. 날이 갈수록 찌꺼기와 찌꺼기가 아닌 것의 구분조차 희미해지고요. 제가 다루는 이상하게 변이된 동시대 풍경은 사람들 마음에 이와 같은 감정의 찌꺼기가 쌓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최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1》 인터뷰 중) 


최윤 작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최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하였다. 개인전으로는 《더 라운지(The Lounge)》(캄-라뮤트 아트센터, 로잔, 스위스, 2023), 《빛의 속도로 뛰는데 몸은 거북이가 된다》(럭스(LUX), 런던, 2022), 《막다른 길 걷기》(두산갤러리 뉴욕, 뉴욕, 2020), 《마음이 가는 길》(두산갤러리 서울, 서울, 2020),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스페이스, 서울, 2017)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아득한 오늘》(국제갤러리, 서울, 2025),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리움미술관, 서울, 2024), 부산비엔날레 2024 《어둠에서 보기》(부산근현대역사관, 부산, 2024),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3), 《펑키-펑션》(대구미술관, 대구, 2022),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최윤은 유럽도자연구센터(오이스터베이크, 네덜란드, 2023), 라익스 아카데미(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21-2023), 금천예술공장(서울, 2021), 두산레지던시 뉴욕(뉴욕, 미국, 2020)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서울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