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Two Hours)》 전시전경 © 티나 킴 갤러리

《두 시간(Two Hours)》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약 10여 년의 시간 동안 제작·발표된 박이소, 정서영, 김범 세 작가의 작업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세 작가가 유사한 감수성을 공유하며 동료적 관계를 형성하던 시기로, 본 전시는 이 시기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동시대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성·부상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연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작업들을 소개한다.

“두 시간”은 박이소가 2002년에 제작한 동명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비디오 작업은 약 두 시간 동안 태양의 움직임을 기록한 영상으로, 배경에 들리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일상적인 소리를 통해 이 시간이 이른 저녁 무렵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는, 그러나 아직 밤은 아닌 하루의 경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작업의 주제는 다소 모호해 보일 수 있으나, 이 작품은 유동하는 특정한 시간을 경험하는 감각의 구체성을 보여주며, 작가의 시선을 기묘하게 응축하거나 의도적인 무위(無爲)의 상태로 정지시키는 힘을 지닌다. 이처럼 집요하게 불확실성의 심연을 응시하는 태도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세 작가가 한국 사회와 미술 제도의 여러 국면과 씨름해 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날카로운 사유와 시간이라는 냉혹한 현실과의 끈질긴 대면은 박이소, 정서영, 김범의 초기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토대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박이소와 김범은 미국으로, 정서영은 독일로 건너가 학업과 작업을 이어갔으며, 1990년대 중반 세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서울로 귀국했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되던 미술의 흐름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당시 서구 미술계에서 이루어지던 특정한 예술적 실천들에 대해 동시대적인 이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국 이후 이들은 서구의 주류 미술 양식을 우월한 기준으로 단순 이식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이들의 작업은 언제나 자신이 속한 장소에서 무엇이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회의 특수성과 복합성을 인식하고, 이를 각자의 예술 언어로 변형·전환하는 과정은 이들에게 핵심적인 과제였다.

박이소는 뉴욕 체류 시절 미국 사회 속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관련된 작업에 주목했다. 귀국 이후 2004년 작고하기까지 그는 이를 산업화되고 상품화된 사회를 허무적 유머로 풍자하는 작업으로 확장하는 한편, 그러한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존재들의 시적 덧없음과 존재론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그는 또한 동시대 비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1990년대 한국 사회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깊이 매혹되어 있던 상황과, 한국 특유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수용된 근대성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Art Drawing’(1997), ‘Beginnings’(2000)과 같은 전사 드로잉 연작, 그리고 〈Avant-garde〉(1997), 〈월드 의자〉(2001) 등의 작업에서 그는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질문하며, ‘미술사’ 혹은 ‘국제성’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 불가능성을 성찰한다. 전반적으로 박이소, 정서영, 김범은 후기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도시적 환경과 건설 현장, 제조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물과 건축의 표면성과 물질성을 자신들만의 미학적 특질로 전유하며, 조각·오브제·설치·드로잉·비디오를 넘나드는 실험을 지속했다.

김범은 반기념비적 태도와 블랙 유머에 기반한 독창적인 사고를 통해, 소박한 재료의 선택과 제작 과정을 결합한다. 그의 최소한적이고 질서정연한 선택은 정교하게 계산된 미적 판단과 극도로 신중한 제작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정서영의 경우, 〈TV〉(1996), 〈조각적인 신부〉(1997), 〈Ghost will be better〉(2000–2005)와 같은 발견된 조각들에서 1990년대 한국의 제조업 붐 속에서 생산된 스티로폼, 장판, 목재, 합판 등의 값싼 건축 자재를 자극적인 제목의 추상성과 결합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는 그 어떤 것과도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조각적 베르나큘러리즘을 형성한다. 이 세 작가는 물질적 스펙터클이나 기념비적 조각, 노동 집약적인 제작 방식의 위계로부터 명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재료 선택과 제작·설치의 방식 자체에 비판적 태도를 내재시킨다. 이들의 재료는 사회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드러내는 기호로 기능하며, 권위주의적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치밀한 형식으로 구현한다.

이들의 작업은 또한 재치 있는 유머 감각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재료 선택과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을 통해 드러나는 이 유머는 거대 서사에 집착하는 사회를 풍자하며, 작가로서 일상 속에서 견뎌온 비합리성과 비윤리성에 도전하는 수행적 성격을 지닌다. 박이소는 문장의 문자적 의미와 그 무용한 유머의 발현을 탐구하고, 김범은 전복적이면서도 냉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유머를 구사한다. 〈나무가 된 사람, 자신의 꿈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찾다〉(1998), 〈변신술〉(1996), 〈착한 사마리아인〉(1995) 등의 작업에서 텍스트는 애니미즘적 세계를 환기하는 퍼포먼스를 촉발한다. 정서영은 조각적 상황과 물질의 미묘한 뉘앙스, 그리고 추상적 언어가 만들어내는 알레고리를 포착한다. 전시장 벽에 설치된 그의 카본 페이퍼 드로잉 연작(1996–2000)은 급속한 제조 문화 속 도시 환경에서 발견된 기능주의적 사물과 건축을 날카롭게 관찰한 목록과도 같다.

이들 작가는 한국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징후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근대 미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예술 실천을 통해 세계적 차원의 동시대성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를 제시한다. 이들의 초기 작업은 다수에게는 외면당했으나 소수의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깊은 존중을 받으며, 시간의 간극 속에서 지연된 의미로 존재해왔다. 1990년대 중·후반, 세 작가와 한국 미술 전체가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두 시간(Two Hours)》은 한 장소의 ‘동시대성’을 대립, 불화, 지연, 시간의 어긋남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안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