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5년은 한국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처음으로 세계사의 중심 무대에 진입하면서 동시대성을 획득한 시기였다. 우리는 절대적 가난, 냉전 하의 이념 갈등과 정치적 탄압, 산업화 과정의 부정적인 증후들, 냉전의 대립적 가치관 그리고 거품 경제에 이어 장기적인 경기 침체 현상을 겪어왔다. 이런 과정에서는 중요한 가치들이 전도되고 원칙들은 도외시되고 피할 수 없이 많은 중요한 일들이 분절, 망각, 왜곡되곤 한다. 미술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이 전시는 미술이 이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여주었는지, 혹은 시대를 문제 삼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1960-1970년대는 추상, 개념미술, 해프닝 등 ‘예술적 전위’의 시대였던 반면, 1980년대는 시대에 맞선 격렬한 정치적 저항 즉, ‘정치적 전위’의 시대였다. 예술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결합되어본 적이 없고, 양쪽이 만나 전시가 이뤄진 적도 없다. 그만큼 ‘예술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 이 양 노선은 서로에게 소원했고 심지어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대립적이기도 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1990년대 미술이 탄생했고, 특히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전지구화의 물결을 경험하면서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비록 동시대를 산다고 해도 모두가 각자이고 늘 다른 감각의 선들로 이뤄진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사실 60·70년대와 80년대 작가들은 특정한 이념 운동 안에서 결속하고, 90년대 후반 되면 모두가 흩어졌다. 역사는 각 시대마다 표지판을 달아 마법을 추방하고 무리들로 묶어버리지만 모두는 각양각색의 개별자다. 이들 각자는 햇살이다. 햇살은 동질적이지 않다. 공통의 태양도 없다. 햇살을 단순히 입자 운동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미래파의 욕망을 반영한다. 언어의 의미는 차이에서 발생한다. 서울-부산을 잇는 단선적 궤도 위를 매시간 오고 가는 정기 열차라고 해도 운전자, 역무원, 승객이 다르다.
그와 같이 이 전시는 역사보다 생성의 관점에서 한국미술사의 연속성을 파기해 버리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어떻게 갖게 할 것이냐, 어떤 조망으로 전시 풍경을 만들 것이냐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그것은 개인의 기억 작용을 통해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부분은 활동하고 어떤 부분은 비생산적이고 또 어떤 부분은 태만하고 어떤 부분은 과장되어 있고, 심지어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선별적이고 해석적, 적용된 스토리 형식으로 짜여진 요소들과 잡다한 요소들이 모인 불투명한 집합 사이의 이동할 수 있는 경계를 만든다. 관객들이 그것을 오해하여 누구에게나 속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저장 기억, 즉 ‘한국 미술의 기억’을 들이미는 비평적 행위는 사전에 고려된 의미가 기정을 고정하려 드는 것이므로 최소한 나에게도 그것을 거부할 권한은 있게 마련이다.
전시 공간은 작지만 땅 속으로 들어갈수록 넓고 동굴처럼 되어 있어 서로가 공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시에 나는 풍부한 기억의 공간, 열려진 공간, 기억의 지대를 들어가서 죽은 자와 산 자, 모르는 자들 끼리 만나는 현재형 상황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내부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연속과 불연속의 사이에서 진동하며 교차하는 것이다. 목적은 역사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성을 적극적으로 단절시키는 일이다. 전시를 오픈한 후에 보니까 1층은 뱀들이 각기 꿈틀거리는 메두사의 머리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바람이 흔들리는 가지들, 잎사귀 같기도 하다.
지하의 중간층은 나무의 굵은 줄기지만 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하나의 축이 아니라 몇 개의 갈래들을 교차시켰다. 지하 맨 아래층은 땅 속 뿌리이다. 그것이 힘찬 느낌을 주길 원했다. 미술관 바깥은 ‘비역사’의 열려진 세계로 설정했다. 열려진 세계와 역사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작업의 경계 턱에 안규철의 재활용된 문짝으로 된 집이 있고, 뜰에는 이미 놓여져 있는 조각들을 다른 컨텍스트로 바꿔버리는 개념들, 옥상에는 오아시스 그룹의 유목민 집과 카페가 있고, 이중근의 깃발은 새로운 떠남을 암시하는 것이다. 장차 전개될 무언가를 향해 진군해 가는 큰 배는 학익진의 형태로 깃발을 펼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작품, 자료를 나열하거나 단선적인 진화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1990년대 말에 들어와 비로소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식되기 시작한 ‘시간의 폭발력’이라는 이질적 요소들의 동시 공존의 의미를 우리 미술의 역사에 적용시킨 전시이다. 따라서 역사 회고나 재평가를 위한 전시가 아니다. 즉 과거 역사를 증명하거나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1960년대부터 45년간 빛을 발한 예술을 ‘기념’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을 창작해 온 미술가들 가운데에는 전혀 이름을 얻지 못했던 작가들이 있으며 많은 작가들이 비주류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이 전시에는 한국 미술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작가들이 대거 초대되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 담론으로 인정되어 온 앵포르멜에서 모노크롬에 이르는 상투적인 양식화 과정을 제외시켰다.
전시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활력’(vitality)이었다. 신선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감각적으로 명확히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점은 특히 중요한 데, 작품이나 전시는 의견들을 모아 적당히 살을 붙이는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 관객과 프로 작가들이 대화, 토론해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술을 추방하고 미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한 이벤트 광고가 대신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거기에는 새로운 활력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인위적인 조작’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나의 태양》 전시는 과거의 작업들이 지금, 여기서 살아서 움직이도록 활력의 생산, 맥락의 부여, 작품들 간에 파생되는 상호 대화의 설정, 그리고 작가, 비평가, 증인들의 구술(口述) 영상 기록물, 고증 자료들을 배치하여 관객들의 이해를 도모하고 전시장 자체에 에너지를 불어 넣도록 하였다. 또한 오프닝 날에는 한국의 개념미술을 주도한 S.T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였던 이건용, 성능경이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