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상, 〈Breathing light-Jade Green〉, 2017 © 김택상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2018년 1월 5일부터 2월 24일까지 《한국의 후기 단색화》 전시가 개최된다. 현재 화단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 11명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국의 단색화의 흐름 속에서 전기 단색화 이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후기 단색화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본 전시는 리안 서울의 전시 이후 3월 8일부터 4월 14일까지 리안 대구에서 순회전을 가질 예정이다.

2014년부터 약 3년간 국내외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한국의 단색화가 최근 들어 진행의 속도와 흐름이 다소 둔화된 조짐이 보인다. 이는 특히 현재 연령이 70-80대에 속하는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언론에서는 해외의 옥션이나 유명화랑, 미술관에서 한국의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이 초청을 받거나, 옥션의 동향이나 전시와 관련된 소식을 긴급 뉴스로 다루었던 사실에 비하면 다소 주춤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처럼 전기 단색화의 위축 현상을 야기한 이유로는 여럿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은 국내외의 콜렉터, 기관, 미술품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70-80년대의 작품들이 물량적 측면에서 이젠 어느 정도 고갈될 단계에 이르지 않았는가 하는 관측이 유력하다. 초기에 단색화를 주도한 국내의 메이저 갤러리들이 1세대 작가들의 70-80년대 작품의 우수성을 선전하면서 국내외 미술계와 언론의 시선은 여기에 집중했고, 거기에 맞춰 작품 가격의 고공 상승의 열기가 형성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미술 비평계와 학계에서는 단색화의 상업적 붐에 걸맞는 담론의 부재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분위기는 실질적인 담론의 창출로 이어지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보다 건강한 한국 단색화의 형성을 위해서는 전기 단색화에 이어 후기 단색화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의 노력만으론 충분치 않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한편, 미술계의 중심부에서는 후기 단색화 작가들이 전기 단색화의 퇴조를 만회할 만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후기 단색화 작가들이란 70-80년대에 한국 미술의 현장에서 모더니즘 미술을 직접 체험했던 작가 군(群)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50-60대의 연령에 도달한 세대가 여기에 속한다. 말하자면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 벌에 해당하는 이들은 한국의 근현대화(1960 이후)의 과정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인 것이다.

이들은 유교적 생활 윤리보다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몸에 배 있으며 일본어보다는 한글과 영어의 구사가 더욱 자연스럽고 편하다. 또한 유럽과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세대가 많은 것도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특징이다. 따라서 전기 단색화 작가들처럼 예술을 수양이나 수신의 과정 혹은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표현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한국이 산업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한 70-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이들은 독자적인 재료와 매체 실험을 통해 단색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 봐야 할 이유가 있다.

차제에 리안갤러리가 개최하는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은 후기 단색화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시이다. 특히 이 전시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본격적으로 후기 단색화를 조명한 전시로는 처음이란 점에서 향후 후기 단색화의 흐름과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번 초대작가 11인의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는 다음과 같다.

김근태의 작업은 마치 면벽 수도를 하는 것처럼 무형상(無形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연관된다. 이는 형태가 없는 화면의 구축을 통해 어떤 정신세계를 드러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근태는 우선 회화의 근본 원리인 평면성을 용인하고, 여기에 일련의 행위를 가함으로써 “회화는 하나의 평면이다”라는 존재론적 명제에 충실한 작업을 행한다. 그가 그리는 것은 어떤 대상 세계의 표정이나 사물의 외관이 아니다. 그는 내면의 세계에 충실히 접근하여 마치 선사들이 선(禪)을 수행하듯이 정신의 세계를 탐색해 나간다.

김이수의 작품은 수평선 혹은 지평선을 연상시킨다. 얇은 단색의 띠들이 중첩되어 이루어지는 화면은 보는 자의 마음을 지극히 평정한 상태로 이끈다. 이를 위해 김이수는 주로 가로로 된 색의 면들을 무수히 중첩시켜 계조의 화면을 창출한다. 그것은 바다의 수평선을 연상시킨다. 저 먼 곳에 존재하는 수평선은 그러나 기실 수평선이 아니라 마음이 그려내는 관념인 것이다.

김택상의 단색 화면은 미묘한 뉘앙스의 색의 자취들로 이루어진다. 그는 캔버스나 종이를 펼쳐놓고 그 위에 물게 푼 아크릴 물감을 넓은 붓으로 칠해 서서히 말린다. 김택상은 마른 종이에 다시 물감을 칠하고 이 과정은 수없이 반복된다. 가을에 나무 위에 매달린 홍시나 잔잔한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김택상의 그림은 보는 자에게 깊은 관조의 세계로 이끈다. 김택상의 작품은 자연에 다가가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김춘수는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이 묻은 손으로 캔버스 전체를 누비게 되는데 이 때 몸은 정신의 작용에 따라 특유의 리듬을 타게 된다. 작업에 깊이 빠져들수록 몸의 역동성이 더해지면서 정신적인 법열감이 찾아온다. 김춘수의 작업은 무엇보다 ‘몸성’이 두드러진 몸의 예술이다.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며, 신체를 통해 언어 이전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원초적 몸짓이다.

남춘모 작품의 사물성(objecthood)은 ‘만드는’ 행위에서 온다. 그리는 행위가 아닌, 만드는 행위 속에 그의 작품의 사물성이 깃들어 있다. 그리는 행위가 범할 수밖에 없는 모사(copy)의 숙명에서 벗어나 사물을 만드는 행위야말로 사물이 세계에 존재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가 천에 직접 색을 칠하지 않고 염색기법을 동원한다든가, 준비된 나무틀에 염색된 천을 깔고 폴리에스테르를 반복적으로 칠해 떠내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 등은 가능한 한 사물이 사물이게끔 하는, 다시 말해서 의식의 투사를 가능한 한 막자는 의도로 읽혀진다. 색의 중성성과 사물의 중성성의 만남은 사물이 지닌 세계의 투명성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요건이다. 신체를 어떠한 의식의 조작 없이 투명하게 열어놓는 것이야말로 생(生)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법관의 작품은 인과론적 독재의 논리에서 벗어나 상대론적 관계성에 입각해 정신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태도와 관련된다. 그의 그림에는 무수한 빗금들이 존재한다. 가로와 세로로 겹쳐진(+) 무수한 선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화면 위에 공존한다. 그렇게 해서 기왕에 그려진 선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선들이 자리 잡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들은 다시 화면 바닥으로 가라앉고 다시 새로운 선들이 나타난다. 이 선들의 공존은 융화(融和)의 세계를 이루며, 세계는 다시 반복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법관의 그림은 따라서 완성이 아니라 오로지 완성을 지향할 뿐이다.

이배는 오랜 기간 파라핀과 숯으로 작업을 해 왔다. 숯은 천연의 재료로서 나무를 태워서 얻어지는 만큼 자연의 본질적인 원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배는 파라핀 위에 숯가루를 용제에 섞어 마치 상감을 하듯 새겨 넣거나 혹은 숯 자체를 오브제로 삼아 큰 자루에 넣어 거대한 양괴를 보여주는 설치작품도 시도하고 있다. 숯을 작은 크기로 잘라 캔버스에 무수히 붙이는 이배의 단색 작품은 일종의 오브제 회화이다.

이진우의 단색화에서 한국 단색화의 일반적인 특징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우직할 정도로 숯이 놓인 한지를 끊임없이 쇠솔로 두드리는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작업이 끝나고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마치 공동묘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검거나 회색, 혹은 푸른 기미가 감도는 한지의 표면은 그 안에 축적된 우툴두툴하며 크고 작은 숯 덩어리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물질적 효과로 인해 무채색으로 덮여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거나 회색, 혹은 푸른 기미가 감도는 작품의 두꺼운 층은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리만치 묵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 특유의 아우라가 감도는 장엄한 분위기가 이진우 단색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승택의 ‘무제-컬러’ 연작은 마지막으로 과정을 거쳐 회색, 갈색, 검정 등 주로 무채색의 마감된다. 표면은 연한 파스텔 톤의 무광택을 띠게 되며, 관객은 눈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일한 물체, 즉 ‘몸’을 보게 된다. 양태는 각기 다르지만 장승택의 작업 역시 김춘수의 경우처럼 ‘몸성’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무수히 반복되는 스프레이 작업이 주는 극한적 상황을 통해 몸은 고되지만 정신은 모종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획득된다.

최근 들어서 전영희는 이제까지 사용해 오던 회색에서 떠나 푸른색의 천연 염료인 쪽을 사용하고 있다. 근작들은 선과 면을 중심으로 전작에 비해 더 단순화되고 절제된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적 실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 분할의 문제와 캔버스 표면에 색이 침투하면서 발생하는 색의 깊이와 그것이 주는 색의 느낌, 즉 색감과 관련된다. 한편으로는 재료의 질감(物性)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색의 침투에 많은 신경을 쓰는 전영희의 이번 작업은 또 다른 변화를 예측케 한다.

천광엽의 단색화 작품은 초기에는 점자를 연상시키는 점(dot)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은 선적인 요소로 발전했으며, 결국은 무수한 점들이 선이 되고 선이 중첩돼 면이 되는 평면의 논리 위에 형성되었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작은 점들이 정착되고 이를 샌드페이퍼로 갈아낸 뒤 다시 물감을 바르고 갈아내는 반복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미세한 점이 반복되면서 형성되는 질서의 세계가 천광엽 작품의 특징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