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Purity》 © Taguchi Fine Art

모노크롬 회화의 전통

한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활발해진 ‘단색화(Dansaekhwa)’라 불리는 모노크롬 회화 운동이 동시대 미술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며 중요한 조류를 형성해왔다.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이 한국의 추상미술은 최근 일본의 ‘구타이(Gutai)’와 ‘모노하(Mono-ha)’와 함께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대에 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한 세대에는 서구 유학 경험을 가진 작가들도 많으며, 모노크롬 회화 역시 재료와 기법 면에서 다양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김택상은 해외 유학 경험은 없지만 동세대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사유를 심화시키며 작품의 독자성을 구축해왔다. 오늘날 그는 ‘단색화’ 제2세대를 대표하는 중심 작가로 평가된다.


자연의 흔적

김택상은 제작 과정에서 붓도 페인팅 나이프도 팔레트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특별 제작한 직사각형의 수조에 캔버스를 담근 뒤 아크릴 물감을 푼 물을 붓는다. 물은 캔버스에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증발하고, 계절과 기후에 따라 서로 다른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물을 배출하고 캔버스를 꺼내 건조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캔버스 위에 색의 층을 여러 겹 겹쳐나간다.


시간의 회화

이렇게 제작된 김택상의 작품은 물의 흔적 그 자체이며, 나무의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다. 작가가 수행하는 일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다.


자연의 색채와 빛의 표현

김택상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현상으로부터 색채를 선택한다. 석양의 붉은색, 바다와 하늘의 푸른색, 나무의 녹색, 태양의 노란색 등이다. 이 색채들이 여러 겹 쌓이면서 각 층에서 복합적으로 반사된 빛이 독특한 색을 형성한다. 이는 피부 아래 혈관이나 내부 조직의 색이 비쳐 나타나는 인간 피부의 색과도 닮아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제작되는 그의 작품은 부드럽고 온화한 색채로 덮여 있어, 보는 이에게 시간의 흐름으로 얻어지는 성숙이나 숙성의 감각을 환기하는 듯 하다.

타구치 파인 아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5년 만에 열리는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캔버스를 수조에 담글 때 불규칙한 형태의 천을 받침으로 사용해 회화에 표정을 부여하고, 오로나나 딱정벌레목이 띠는 형광색을 새로운 자연의 색으로 도입하는 등 최근 그의 작업은 한층 확장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