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100% REFURB SHOW》, 2012.11.01 - 2012.12.05, 가인갤러리
2012.10.29
가인갤러리

《100% REFURB SHOW》 전시전경 © 가인갤러리
평창동 가인갤러리에서 이인현 작가의 개인전 《100% REFURB SHOW》가 열립니다. 가공하지 않은 캔버스에 청색 유채물감을 사용하여 간결한 화면을 완성하는 그의 작업은 ‘회화의 지층’이라는 제목 하에서 물성과 이미지, 정면과 측면, 평면성과 즉물성 등 회화의 본질과 그 존재방식에 관한 질문과 탐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2006년 이후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동안 천착해 온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진전시킨 다양한 해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작업과정에서 나온 파지나 허드레천을 재활용하는 것은 물론 작업 테이블이나 붓, 커피잔이나 아이의 신발과 같은 ‘물건들’을 ‘작품’ 위에 덧붙임으로써 모든 작품이 다른 작품의, 모든 물건들이 다른 물건들의 새로운 역할로 ‘재생’(refurbished)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거나,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 자체를 그림의 액자처럼 사용하면서 프레임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상기시킨다거나, 제작년도가 10년 이상 차이 나는 작품들을 쌓아 올려 이미지의 문맥을 보여준다거나, ‘피처링(featuring)’의 개념을 도입해 정광호 작가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서로 중첩함으로써 매스가 결여된 조각과 두께를 가지는 회화의 물리적인 동거를 보여주는 등 다채로운 시도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에 쓰인 ‘리퍼브(refurb)’란 비교적 최근에 등재된 마케팅 용어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새롭게 하다’, ‘개조하다’라는 뜻의 ‘refurbish’의 줄임말로, 구매자의 단순변심으로 반품되거나 미세한 흠집이 있지만 실사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전시상품 혹은 단지 포장이 약간 훼손된 상품 등의 재판매를 목적으로 재포장, 새단장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신품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신품도 중고도 아닌, 재생품(再生品 = refurbished)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미술작품의 전시회는 오프닝을 하는 순간부터 ‘재고’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포장을 풀고 이미지를 대면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헌 것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람객들은 신작을 요구하고 작가들은 신작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구하겠지만,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은 이미지 과잉의 악순환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기능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지만 신품의 이미지만 없는, 다시 말해 이미지에서 새로움만을 제거한 그런 이미지를 ‘재생’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인현, 〈회화의 지층 - 再生〉, 2012, 캔버스에 유채, 40 x 120 x 10 cm © 이인현
따라서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바라는 관람객에게 어쩌면 이번 전시는 실망을 줄 지도 모릅니다. 신작이 전혀 없는, 기존 작품들의 재구성과 조합으로만 이루어지는, 100% 헌작으로 이루어지는 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오랜 기간동안 집요하게 탐구해 온 회화의 지층, 즉 회화의 본질과 그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과 탐구가 진전되어 ‘재생’에 이른 양상이 궁금하다면, 그 관람객에게 이 전시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