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thesis of Boundary》 전시전경 © 티나킴 갤러리

티나킴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홍석 개인전 《Antithesis of Boundary》는 개인적·역사적·예술적 차원의 거대 서사가 해체되고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구가 생산한 거대 서사를 비판했던 탈식민주의 담론의 영향을 받은 김홍석의 ‘대항 신화(counter-myth)’는 허구화된 역사 서사에서 출발하여 점차 예술 창작 과정 자체에 대한 미묘한 질문으로 발전해왔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가 지적 재산권, 검열, 그리고 창작 과정에서의 불안정한 노동 분업을 가로지르며 작업해야 하는 동시대 미술의 복잡한 지형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번 전시는 공동체, 소통, 공유된 이상이라는 강제된 개념 위에 구축된 관계미학의 전제를 비판적으로 되묻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당나귀〉(2008)다. 푹신한 녹색 소파 위에 몸을 기대고 한 손으로 커다란 머리를 괴고 있는 당나귀 탈의 인물이 등장한다. 얼핏 보면 이 장면은 미국 플로리다의 어떤 호텔에서 열리는 퍼리(furry) 모임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 옆에 정성스럽게 필기체로 쓰인 텍스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인물은 한국에서 온 불법 이주 노동자 제임스 김(James Kim)으로, 시간당 6달러를 받고 당나귀 탈을 쓴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력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탈 속에서 태연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 인물은 관람자가 지니고 있던 환상의 공간을 침범한다. 이 당나귀는 전시장 전체에 일종의 장애물 코스처럼 배치된 ‘경계와 반대항’의 연쇄를 시작하는 지점이 된다.

김홍석은 “경계는 언제나 존재하며, 나는 소통의 형식보다 사람들 사이의 경계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Antithesis of Boundary》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대인 관계의 문제들에서 출발했다. 트랜스베스타이트, 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주변화를 다루려는 시도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복잡한 윤리적 상황과 마주했다.

위험한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내부적 저항과 사회적 규범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혹은 예술 역시 명확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가? 예컨대 〈피켓〉(2004)에서는 20대 여성들의 속옷을 수집해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로 판매했다. 또 〈6자 회담〉(2005)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자 회담 참가국의 국가를 부르게 했다. 이러한 작업은 자칫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물 탈을 쓴 외국인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가상의 ‘퍼포먼스 시리즈’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김홍석의 작업에는 주요 역사적 사건들도 장난스럽게 변주된다. 2004년 토탈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설치작업 〈마라의 적〉는 프랑스 혁명가 장폴 마라의 사후 세계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붉게 칠해진 유리 상자 옆의 설명문에는 그 안에 담긴 것이 마라의 피이며, 그것을 마라의 암살 이후 단두대에서 처형된 또 다른 혁명가 조르주 당통이 보관했다는 설정이 제시된다. 서구 역사 속 혁명과 위기의 순간들을 재구성하는 이러한 서사와 함께, 그의 작업에는 한국 미술의 역사적 맥락—특히 민중미술이 만들어낸 미학적 헤게모니—에 대한 반응도 등장한다.

민중미술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등장한 ‘민중의 미술’로, 군사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폭로하기 위해 사실주의적이고 거친 미학을 사용했다. 걸개그림과 벽화는 민중을 영웅적 존재로 부각시키는 새로운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냈다. 김홍석이 서울대학교에 재학하던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당시 학생들은 운동권이 조직한 시위와 파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으로서 나는 시위와 파업 속에서 수동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찾아야 했다. 사실 이러한 대립적 이분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매우 편리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민중미술은 민주화와 1990년대 후반 경제 자유화 이후 상당한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좌우의 대립적 이분법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공공의 공백〉(2006-2008)은 공공 기념비가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정치적 현실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다양한 공공 기념물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16점의 드로잉과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윤리의 탑’에서는 사회적 낙오자나 마약 중독자들이 3만 원을 받고 탑 꼭대기에 올라 한 시간 동안 서 있도록 제안한다. 작가는 이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논란이 결국 윤리적 문제 해결과 자선 활동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승리 광장’은 한 국가가 개인의 만족이 역사적 진보의 결과라고 믿도록 사람들을 완전히 프로그래밍했을 때만 건설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들은 한국 정부가 1995년 건물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공공미술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던 정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김홍석의 프로젝트들은 공공 조형물의 조건을 충족하기보다, 사회적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이처럼 역사와 사회 문제를 다루던 그의 작업은 최근 동시대 미술 자체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는 차용 미술에 대한 비평적 논의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뒤틀어 ‘오차용(mis-appropriation)’의 과정을 만들어낸다. 작품 구상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그는 예술가를 독창적 생산자나 기원의 지점으로 간주하는 관념에 저항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당나귀〉는 사실 이전 작업 〈브레멘 음악대〉(2006-2007)의 파생물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다시 산티아고 시에라의 노동 착취 작업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냉소적 작품을 연상시키는 혼종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예술가가 ‘1등’이 되기를 선언하기보다 오히려 ‘2등’의 위치에 머무르는 태도 속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READ—Francis Alys p38,39 (Re-enactments)〉(2008-2009)은 프란시스 알리스의 카탈로그 페이지를 잘라 액자에 넣고, 그 이미지를 다른 화가에게 다시 그리게 한 뒤, 그 그림을 다시 레진 조각으로 주조한 작업이다. 이 과정은 원작의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이미지가 기호로 변형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그 결과는 우스꽝스럽고도 매혹적인 동시에, 원작의 내용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여준다.

김홍석의 작업은 명확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선언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냉소적인 작업들은 윤리적 판단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윤리적 판단은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루어지는 ‘무관심한 관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입장을 미리 취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세계를 둘로 나누게 된다. 예술이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 속에서도 그가 계속 작업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어쩌면 예술에서 경계란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