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 〈무제 (친숙한 고통 #11)〉,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317 x 221 cm © 김범

“내 작업에는 유머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개 비관주의와 부조리가 깔려 있다.”
—김범

김범은 의미, 학습, 이해에 관한 질문들을 유머러스하고도 불손한 태도로 다룬다. 그는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이 지적이고 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조리함은 바람직한 인간의 특성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우리의 운명의 일부일 수 있다.”

김범은 교육 제도와 다양한 정보 유통 방식이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고 확산시키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탐구하지만, 대개 깊은 부조리적 시선을 통해 접근한다. 예를 들어 설치 연작인 '교육된 사물들'(2010)에서는 작가가 바위나 다른 무생물에게 한국 시를 가르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애니미즘적 세계관을 암시하는 다정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이디어와 언어 자체를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아 온 동시대 작가 세대의 일원인 김범은, 특정한 작가적 스타일을 고수하려 하기보다는 다양한 매체와 재료, 방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절충적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수십 년 동안 회화에서 멀어져 있던 그는 2008년 '친숙한 고통' 연작을 통해 다시 회화로 돌아왔으며, 이 연작에는 〈무제 (친숙한 고통 #11)〉이 포함된다. 이 회화들은 노동집약적이며 어두운 유머를 지닌다. 작가는 거의 강박에 가까운 방식으로 캔버스를 조금씩 풀어가며 미로를 확장해 나가는데, 작은 구획 단위로 작업을 이어가며 정교한 미로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들을 그리는 과정은 김범에게 거의 비합리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는 캔버스를 구획별로 다시 찾아가며 작업을 이어가는데, 오늘날이라면 보통 프린터로 출력했을 법한—포토샵으로 먼저 설계된 흑백 미로를 만들어내는—작업을 직접 손으로 수행한다. 수행하는 노동과 그에 부여된 과제가 어딘가 어긋나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태도는 김범 작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미로 회화는 시각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고 퍼즐을 푸는 행위이기도 하다. 거대한 퍼즐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마주하는 문제와 사건, 질문들의 은유이다.” 김범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복잡한 도전과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시사한다.

References